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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평점 :
"폐허 속에서도 선한 본성의 삶을 추구한 사람"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의 <라우루스> 를 읽고

“삶은 신성한 것이다.”
-러시아의 움베르트 에코라 불리는 예브게니 보톨라스킨이
세계문학사에 더한 장엄한 고전 -
구원한 연민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가능한가? 도스토옙스키 작가의 소설 『백치』를 읽으며 유로지브이와 같이 타락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했던 주인공 미쉬킨 공작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결국 미쉬킨이 가진 연민과 구원의 마음은 나스타샤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미쉬킨 공작 또한 그 절망감과 고통에 못 이겨 백치가 되어 떠나게 되는 결말 속에서 결국 인간은 신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구원은 어려운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 『라우루스』는 폐허 속에서도 선한 본성을 추구하며 의사에서 성자로의 길을 걸어간 '라우루스'의 일대기이다. 15세기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당시에는 페스트가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아르게니 또한 어렸을 때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게 되면서 할아버지인 흐리스토포르에게 약초술과 의술을 배웠다. 하지만, 그의 의술로도 그의 아내와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그의 속죄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된다.
“자네는 앞으로 힘든 여정을 겪게 될 것이네. 자네 사랑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니 말일세. 아르세니, 이제 모든 것은 자네 사랑의 힘에 달려 있을 거라네. 물론 자네 기도의 힘 역시 중요하다네.”
-p. 143
비록 자신의 아내와 아이는 죽이지 못했지만, 그는 제대로 된 약과 치료도 없었던 그 중세 시기에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서 생명을 구해준다. 의사로서 그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준다. 그는 아르게니 라는 본래 이름을 버리고 '우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거룩한 바보 성자인 유로지브이가 되어 자기희생과 고행의 길을 간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 자들을 치료하듯이, 그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거룩한 신앙으로 치유와 이적을 보이게 되고, 그의 명성이 알려짐에 따라 몸이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절름발이들 등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단순히 그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러시아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까지 그를 찾아온다.
그렇게 치유와 이적의 역사를 보인 의사 아르게니이자 유로지브이 우스틴은 암브로조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게 된다. 암브로조는 미래를 예언하고 세계의 종말을 기다려왔던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데, 아르세니는 치유를 통한 희생과 구원이 아닌 보다 더 거룩하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기꺼이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 나선 것이다. 이제 단순히 아르세니는 의사나 성자가 아닌 세상의 종말에 대해 준비하고 예언하는 수도자인 것이다. 하지만 성지순례 길은 고행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서 시작된 그의 연민과 속죄의 마음이 더욱더 커져 인류애적인 사랑과 구원으로 확대되었음을 그가 의사에서 수도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자신의 선한 행동과 자기 희생과 봉사를 통해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살아서 구원받지 못한 자신의 아내 우스티나와 아이를 구원하고자 한다.
그런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복종은 그의 예루살렘 순례 이후 더 커져서 그는 드디어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 '라우루스'가 된다. 이제는 약초나 의술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그는 치유의 능력을 보여준다.
"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서로 닮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이름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네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중략) 저는 서로 다른 시대에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p. 494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아르게니,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라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 삶을 살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모자이크처럼 흩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사로서의 아르게니의 삶도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수도자 라우루스 또한 모두 그 자신이고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가 결국 라우루스라는 이름으로 수도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르게니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구원과 속죄의 서사가 비록 아내와 아이에 대한 속죄에서 시작하였지만, 결국 그는 러시아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안아줄 수 있는 성자로 거듭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의사인 아르게니가 성자 라우루스가 되기까지 과정을 통해 절망과 폐허 속에서도 자신의 선한 본성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으로 구원과 자기희생의 길을 간 한 인간의 삶을 조망할 수 있었다. 감동적인 서사, 인간에 대한 구원, 자기희생, 속죄 등을 통해 삶의 신비와 인간의 선한 본성과 연민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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