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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빛 -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임재희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9월
평점 :
"비극 이후 살아가는 우리들을 비추는 따스한 불빛"
임재희의 <세 개의 빛> 을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1012/pimg_7526911564046698.jpg)
“개인적·사회적 비극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
비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추는 작지만 따스한 불빛”
- 제 1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 -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 소식을 접할 때면 예전에 읽었는 던 책 한 권이 생각이 난다. 그것은 바로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다. 1999년 4월에 발생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총기난사사건에 대해 쓴 이야기이다.
요즘에도 뉴스에서 우리는 총기난사사건 소식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해자가 한국인인 경우에는 왠지 마음이 너무 불편해진다. 그 먼 미국 땅에 가서 왜 그 한국인은 총을 쏘며 죄없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끝내 그 자신도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가. 그는 사회부적응자인 소시오패스거나 폭력적 성향이 심한 사이코패스인가?
이 책 『세 개의 빛』 속에서도 총기난사사건이 등장한다. 2017년 4월 16일 버지니아공대에서 한국인 유학생에 의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다. 이 책은 두 주인공 노아와 은영이 뉴스에서 그 총기난사사건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한다. 그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입양아인 노아와 한국계 미국인 1.5세인 은영은 알지 못하는 혼란과 절망을 느낀다.
같은 동양인이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괴로워한다. 특히 노아는 어렸을 때 양아버지가 총으로 양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을 겪었고 그 뉴스로 인해 그때의 공포와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깊은 우울에 빠지고 그 절망감과 고통에 헤어나지 못한다. 끝내는 싸늘한 주검으로 짦은 생을 마감한다. 이에 노아의 여자친구인 은영은 노아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힘겨워하다가 노아의 흔적과 기록을 찾으로 한국으로 향하게 된다.
노아가 남자아이-1이라는 어떠한 존재감과 의미도 없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은영은 친구 현진의 도움으로 노아가 입양될 당시에 운영된 입양 기관을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흑인과 아시아인의 혼혈로 미국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리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리사와 현진의 도움으로 은영은 노아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 되고 비로소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노아라는 이름 외에 동아라는 아름답고 의미있는 이름이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은영은 노아의 기록과 삶의 흔적을 쫓으면서 진정한 애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진정한 애도는 슬퍼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삶의 흔적과 발자취를 따라 살아생전 그를 추억하고 그의 뜻을 기리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한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마음 편하게 좋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마음 속에서도 떠나보내는 것이리라.
은영이 노아를 위해 현진과 함께 '남자아이-1, 노아, 동아' 라는 이 세 가지 이름으로 된 등을 달고 그의 길을 밝혀주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비록 노아의 죽음은 안타깝고 비극적일 수 있지만, 그를 사랑하고 추억하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기에 그 죽음은 더이상 슬프지 않다.
또한 노아와 리사처럼 한국전쟁과 같은 시대적 비극에 의해 희생되고 힘든 사람들을 살았던 사람들에 생각해본다. 정든 고국을 떠나 낯선 이국땅으로 이민을 가야했던 은영의 가족이나, 실향민인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현진이 겪었던 삶의 고난들, 또한 버려졌다는 상처와 함께 파양 후 입양된 노아의 삶, 유년의 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리사의 삶 그들 모두의 삶이 시대가 낳은 비극적 결과인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해온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민자, 입양인, 여성, 흑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해석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그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의 결을 천천히 공을 들여 보여준다. 작가는 그들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면서 점차 화해와 회복의 길을 나아가야 함을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이제야 뭔가 다 본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내 등 뒤에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가끔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희미한 총성처럼 나와 함께 살아갈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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