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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이별과 죽음에 대한 따뜻한 위로 "
가키야 미우의 <시어머니 유품정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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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품정리'라는 의식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묻다 "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를 떠올리게 하는 이별에 죽음에 대한 따뜻한 위로-
내가 처음 죽은 자도 흔적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나서이다. 그동안 나는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죽고 난 이후 죽은 자의 흔적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고독사, 자살 등 외롭고 쓸쓸하게 죽음을 택한 이들의 흔적을 청소하는 일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죽은 이의 유품을 정리해 줄 가족도 하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해주는 일을 했다. 그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해, 죽음을 위한 준비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 책 『시어머니 유품정리』 또한 죽은 이의 흔적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유품을 직접 정리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시어머니의 삶에 대해 깨닫게 되고 비로소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홀로 살던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오십 중반의 며느리 모토코는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에 그녀는 스무 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라 유품 정리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고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집안 곳곳에서 쏟아져나오는 각종 물건들에 충격을 금하지 못한다. 평소 과거의 추억을 중요시하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달리 며느리는 평소 물건을 깔끔하게 잘 정리하고 필요없으면 미련없이 버리는 성격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암투병으로 돌아가셨지만, 평소 살아 생전에 깔끔하게 유품정리를 해서 반지 하나만 그녀에게 남겨놓았다. 그런 자신의 친정어머니와 비교하면서 남편의 초등학교 교과서, 시아버지의 40년 치 월급 봉투 다발, 시아버지의 우표수집첩, 50권이 넘는 앨범, 옷장 가득 들어있는 옷들, 유통기한이 넘은 식료품들은 도저히 이해불가능하고 처리불능한 양이다. 요즘같이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 시대에 있어서 시어머니의 물건들은 거의 남겨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수준이다.
처음에 그녀는 이렇게 처치곤란할 정도의 물건들을 남긴 시어미니의 무책임한 태도에 짜증을 내면서 반지 외에 다른 유품을 남기지 않은 자신의 친정어머니를 비교하여 칭찬한다. 유품정리를 깔끔하게 해서 거의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자신의 어머니의 사려깊음에 감탄을 한다. 천 만원 가량의 유품정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유품정리를 하지만 정말 엄두가 나지 않고 정리 속도는 속도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낑낑거리며 고생을 하던 그녀에게 옆집에 사는 사나에를 비롯한 아파트 이웃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시어니의 친절하고 배려깊고 인정넘쳤던 모습을 알게 되고 나서 조금씩 시어머니에 대한 불신과 원망을 조금씩 풀게 된다. 벽장 속에서 발견된 시어머니의 일기를 통해 시어머님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게 되며 시어머니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 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반면 유품정리를 깔끔하게 한 친정 어머니의 사려깊음을 칭찬했던 그녀는 아무 것도 어머니가 남기지 않아 함께 한 추억도 기억나지 않음을 느낀다.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남은 자식들 걱정을 해서 그런지 그녀의 어머니는 반지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게 모조리 정리하고 처분해버렸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평소 정리 잘하는 친정어머니에 대해 약간 쓸쓸함과 허무함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보단 인간적이고 따스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시어머니가 살아 있던 증거가 여기저기 있었다. 인간은 평소의 일상 속에 이렇게도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다.
그에 비해..., 저기 어머니. 반지 하나만 달랑 남겨진 광경은 몇 번을 떠올려도 쓸쓸해요.
-p. 290
그녀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간 두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고 진정으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두 여성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진솔한 그녀들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제각각이네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건 남들과 비교하는 걸 싫어하셔씾요.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p. 308
이 책 『시어머니 유품정리』 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유품정리는 필연적일지 모른다. 아직 나에게 그런 경험은 없지만, 죽은 이의 유품을 정리함으로써, 물건에 깃든 추억을 되살려보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의 친정어머니처럼 유품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추억이 깃든 물건들 몇 개쯤은 남겨도 좋을 것 같다. 그 물건들을 통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추억할 수 있을 테니깐.
일상을 살면서 삶과 죽음의 순간을 보게 된다. 이제는 죽음에 대한 준비뿐만 아니라 죽은 후의 자신의 흔적에 대한 정리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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