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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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기 대륙에서 펼쳐지는 가족과 사랑의 서사시 "

 

위화의< 원청 >을 읽고 



"이건 아직 시작도 되지 않고 끝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허삼관 매혈기>, <인생>, <제 7일> 이후 8년 만에 나온 위화 작가의 신작-

 

 

평소 중국 소설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고 중국 작가에 대해 잘 몰랐던 나를 중국 문학의 세계로 인도해준 작가가 한 명 있다. 그 작가는 바로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알게 된 '위화 '이다. 위화는 살아가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매혈로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위화는 절망적이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히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허삼관 매혈기>, <인생> , <제 7일> 등 대부분의 그의 작품 속에서 그려왔다.

 

이 책 『원청』에서도 마찬가지로  끝없는 여정 길 위에 선 한 인간의 고단하고 절망스러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청'이라는 아무도 모르고 들어본 적도 없는 미지의 도시를 향해 길을 떠나는 린샹푸의 고달픈 여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위화는 그 여정은 청나라로 대변되는 구시대가 저물고 중화민국이라는 새 시대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대격변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위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중국의 역사와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맞아 고고분고투하는 민중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인생>에서는 1950년 대약진운동을 배경으로,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기를, <형제>에서는 자본주의 중국사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화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역사와 시대적 흐름 속에서 민중들이 그 역경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히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원청>의 지리적 배경은 중국의 시진이며 역사적 배경은 청나라 시대가 끝나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신해혁명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동안 민중들의 삶은 어땠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토비에 의한 환란과 북양군과 국민혁명군과의 싸움, 전쟁으로 인해 민중들은 배고픔에 허덕이고 제대로 입고 벗고 자고 할 수 없는 가난한 경제 형편으로 인한 생계 유지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대격변기 속에 린샹푸, 천융량, 구이민, 샤오메이 등의 삶을 보여준다. 어렸을 때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린샹푸는 황허 북쪽의 농촌에서 지주의 아들로 살아간다. 부모의 유산으로 받은 전답 덕분에 먹고 사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나이가 먹도록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린샹푸에게 아창과 샤오메이가 찾아오면서 어둠뿐인 그의 외로운 삶에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자신이 오빠라고 말하며 자신이 떠나있는 동안 동생 샤오메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아창은 떠나버린다. 샤오메이와 같은 집에 살게 된 린샹푸는 샤오메이의 착한 마음과 아름답고 청초한 외모에 반해 샤오메이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선녀와 나뭇꾼의 이야기처럼 선녀의 옷을 보여주자 선녀가 떠나버렸듯이,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온 금괴를 샤오메이에게 보여주자, 샤오메이는 금괴 조금 훔쳐서 도망가버린다. 금괴와 샤오메이 둘다 잃어버리고 다시 혼자가 된 린샹푸는 절망적이고 비통한 나날을 보낸다. 시간이 흘러 린샹푸가 그녀의 모습을 잃어버릴 즈음, 갑자기 샤오메이가 돌아온다. 뱃 속에 린샹푸의 아이를 품은 채로 말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몇 달이 어느 날 또다시 떠나버리고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과 딸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그녀를 찾으러 린샹푸는 끝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아창이 말했던 그 '원청' 이라는 도시를 목적지로 삼은 채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원청이라는 도시를 찾을 수 없었다. 원청은 찾을 수 없는 도시이자, 존재하는 않는 도시인 것이다.

 

 힘겹게 원청을 찾아 헤매다 결국 린샹푸는 '시진'이라는 도시에 정착하게 된다. 시진이 원청이 아니지만, 왠지 원청과 비슷한 곳일거라는 생각에 시진에 살게 되지만, 뒷부분 샤오메이의 이야기를 통해 시진이 곧 원청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러나 꿈에도 시진에 샤오메이가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몰랐던  린샹푸는 시진에서 딸과 함께 제 2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린샹푸는 의형제나 다름없는 천융량을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며 시진에서 살아가게 된다. 아마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린샹푸와 딸 린바이자는 건강하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을지 모른다. 단순히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천융량의 가족은 린샹푸와 그의 딸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보살펴 주었다. 

"아들은 둘이지만 딸은 하나뿐이니깐' 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들이 납치되게 한 천융량의 아내 리메이렌을 통해 천융량 가족들이 린샹푸와 그의 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천융량 가족 못지않게 린샹푸가 시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 있다. 그 인물은 바로 시진의 상인회 회장이며, 훗날 조직되는 시진 민병단장인 '구이민'이다. 그는 시진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지도자이다. 토비의 약탈과 횡포로부터 시진의 주민들을 지켜내고 그들을 보호하고자 앞장서서 민병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글 속에 묘사된 토비의 잔혹하고 악랄한 약탈과 횡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참혹하게 살해하는 그들의 잔인함과 극악무도한 횡포가 치가 떨리고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 횡포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 린샹푸가 무참히 살해되고 구이민 또한 납치되어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은 너무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민중들은 나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렇게 무참하고 억울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린샹푸는 그렇게 허무하고 억울하게 죽어가야만 했을까.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구이민을 구하고 더 나아가 시진을 토비의 횡포와 살육으로부터 구해냈다. 죽기 전에 고향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린샹푸는 결국 죽어서 그의 고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레 속 관 속에서 잠시나마 샤오메이를 아주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수레가 우연히 샤오메이의 묘비 앞을 지나갔을 때 말이다. 결국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결국 죽어서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계속 책을 읽으면서 샤오메이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했는데, 샤오메이 또한 시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니 정말 충격적이고 놀라웠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만날 수없는 운명이었던 것일까.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일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필연이었을까.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과 운명을 보며 생각해본다.

 

작품의 대부분은 린샹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뒷부분에 수록된 <또 하나의 이야기>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샤오메이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어떻게 아창과 함께 린샹푸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왜 샤오메이가 린샹푸를 떠났는지, 왜 그동안 샤오메이와 린샹푸가 만날 수 없었는지 책 뒷부분에 수록된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대격변기 속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해 끝없는 여정을 떠났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딸을 지키고 사랑하는 그의 마음, 자신을 떠나버린 여인을 찾아 헤매는 그리움,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픔, 결국 죽음으로 끝나버린 비극 이 모든 것들을 위화는 이 책  『원청』 속에 담아놓았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라고 말이다. 원청처럼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상상에 의해 그 미지의 조각을 맞추어 퍼즐을 완성해간다. 아마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이 책 원청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을지 모른다.

 

이 책  『원청』을 통해 청말민국 격변기 시대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역사의 주인은 이처럼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과 가족을 소중히 지키며 살아온 민중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전작인 <허삼관 매혈기>, <인생>, <제 7일> 과 마찬가지로  정말 '위화적인' 순간들이 느껴지고 거장의 힘이 느껴졌다. 5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긴장감과 궁금증 때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다.

위화의 8년 만에 나온 신작이며 위대한 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책 『원청』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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