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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정온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평점 :
"엄마의 자살을 막기 위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 "
정온샘의 < 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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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만 더 거기 있었어도 우리 여기 못 왔어요.
하드웨어가 너무 불안정해요. 이제 다신 하지…….’ "
- 제 1회 K-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예전부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영화, 드라마, 소설의 주요 소재였다. <백투더 퓨처>라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하드웨어와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시간여행의 목적이 자살을 방지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생활고에 지쳐서 삶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30분' 전의 과거로 가서 그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다면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는가.
이 책 『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에서는 타임리프를 소재로 하여 과거로의 시간 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과거의 시간 여행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면 2030년 미래 사회에서는 자살 방지를 위한 목적만으로 시간 여행을 허용하였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생계 유지가 어려워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삶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경우가 있고 해가 거듭할수록 이런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미래 사회에서는 자살 또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명 '이지은 법'이라는 이름의 자살 방지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았던 한 40대 여성인 이지은이라는 한 개인이 자살했다. 그리고 그 여성의 사고 직후 대한민국에서는 자살 방지법, 속칭 '이지은 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지은' 이라는 여성은 등장인물 회영의 엄마였다.
이 자살 방지법, 즉 이지은 법 덕분에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판을 받고 자살은 도의적으로나 법적으로 엄격한 금기 사항이 된다. 소위 말해서 2030년 대한민국에서는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조차 희영이 근무하는 생명보호처 TF팀이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자살을 막고 있다. 즉 자살예방 TF팀의 업무는 비밀리에 개발된 타임머신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한 대상자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작 회영은 엄마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을까. 40대의 미혼모로 힘들게 딸 회영이를 길러온 그녀는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마 생활고에 지치고 힘들어서일까. 회영은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엄마가 죽기 전 과거로 이동한다. 자산이 그동안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자살을 막아보고자 과거로 이동한 것처럼, 회영은 엄마의 과거로 이동해 엄마를 살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회영은 엄마를 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이지은 법의 존재 여부는 회영 엄마 이지은의 죽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 리프에도 지켜야할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미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지은의 생사 여부는 이지은 법의 제정과 실행 자체와 관련이 있다.
저도 이렇게 냉정하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지은 님의 사망은 생명 보호법 제정에 계기가 된 일이예요. 그 사고가 사라진다면 생명보호처도 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른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는 누구도 예측도 불가능해요.
-p.88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는 회영은 엄마의 죽음 이후 3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스마트워치와 비슷한 인공지능인 D가 마치 엄마처럼 자신을 챙겨주고 아껴주어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도한 죽은 엄마의 친구인 생명보호처 처방 수경의 배려로 생명보호처에 자살 예방 TF팀에 특별채용되어 일하게 된다.
아직도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엄마를 구하고 싶은 회영은 근무를 마치고 사적으로 하드웨어를 사용해서 엄마의 죽음 발생 10년 전, 마지막으로는 3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매일 같은 꿈을 꾼다. 3년째 반복되는 꿈이라면 익숙해질 법한데, 이 악몽은 도무지 그렇지가 않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엄마. 고개를 푹 숙인 엄마의 정수리는 외로운 등을 닮았 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옮겨 다가가려 하지만 나는서 있는 그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할 수 있는건 수평선에 닿기를 바라며 물수제비를 뜨듯이 외마디 말을 건네는 것뿐.
“엄마, 괜찮아?”
혹시 울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고개 숙인 엄마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애써보았다. 하지만 내 팔과 다리는 모두 남의 것인 듯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엄마가 바로 앞에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서서히 가슴이 갑갑해지고 순간, 물속에 빠진 듯 숨이 가빠왔다.
-p. 7~8
회영이는 자신이 아무리 엄마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만, 결코 막을 수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 대학생이었던 어린 엄마를 만나게 된다. 회영의 엄마는 회영이가 30년 후 자신이 낳은 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회영을 대학 선배로 착각한다. 회영은 엄마의 죽음의 원인이 '민호'라고 하는 자신의 아빠를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30년 전 대학생이었던 엄마가 자신의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회영은 여전히 죽은 엄마를 그리워했고 그 따뜻한 온기를 느끼지도 못했지만, 하드웨어 덕분에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영은 어린 엄마에게 자신이 그녀의 딸이라는 것을 밝힐 수 없지만 엄마와의 만남을 통해 엄마의 온기를 느낀다. 그동안 잘 몰랐던 엄마의 어린 모습을 보게 되고, 엄마의 생각이나 행동 등을 보면서 엄마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회영은 엄마와의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과거는 바뀔 수 없고 그로 인해 엄마의 죽음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드웨어 사적 사용으로 징계를 받은 회영은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회영은 개발 담당자인 이선의 도움을 받아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30년 전 과거로 타임리프를 한다. 회영은 자신이 죽으면, 즉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엄마가 미래에 자살을 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30년 전 과거로 이동해서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과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칫 잘못 행동한다면 미래조차 불안정하고 불투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 회영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과거로 돌아간 회영의 자살은 과연 성공할 것인지, 과거로 간 회영의 잘못된 행동으로 미래가 바뀌는 것은 아닐지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살이라는 무겁고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소재를 시간 여행이라는 SF 요소를 사용해서 재미있고 흥미롭게 구성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뚜렷한 자살 방지책이 없는 우리나라 현실 속에서 이지은 법과 같은 자살 방지법은 어쩌면 필요한 원칙일지도 모른다. '인간답게 죽을 자유'가 더 소중한가 아니면 '인간의 생명'이 더 소중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작가는 자칫 무겁고 예민한 문제인 자살문제 주변 인물들의 개성있는 캐릭터와 타임리프라는 SF 요소가 잘 결합하여 의미있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탄생시켰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아마 독자 심사위원 및 내외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또한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회영을 통해 주변인의 자살로 인하여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심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엄마의 자살이라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한 등장인물 회영이가 어떻게 나중에 홀로서기를 하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지도 이 책 『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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