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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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흔적을 통해 삶을 되돌아본다  "

 

마에카와 호마레의 <흔적을 지워드립니다>를 읽고 




"안녕하세요.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입니다."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을 통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 -

 

 

벽지 하나 없이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텅빈 방, 마치 아직 공사중인 아파트 현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방은 이미 지어져서 누군가가 조금 전까지 살다가 간 방이다. 이것이 바로 죽은 자의 흔적이자, 그림자이다. 내가 특수청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청소>를 통해서이다. 그 책을 읽기 전에는 특수청소에 대해서도, 특수청소를 하는 김완 작가님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었다. 그 책을 통해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청소하면서 작가가 느끼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 공감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었다. 죽음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다. 

 

이 책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또한 특수청소 전문회사인 '데드모닝'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죽은 자의 흔적을 청소하면서 느끼고 깨닫게 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준다.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의 사장인 사사가와와 알바생으로 고용된 와타루가 특수청소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감동과 따뜻함을 주고 있다. 5개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삶에 대한 깨달음과 깊은 감동을 준다. 

 

삶의 목표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던 20대 젊은 청년 와타루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오게 된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날, 와타루는 술집에서 사사가와를 만나서 함께 술도 마시면서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착잡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사사가와의 우연한 만남은 이후에 와타루가 특수청소 전문회사인 데드모닝에서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특수청소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사가와와 함께 처음 특수청소를 하러 나간 날, 와타루는 충격을 받고 밀려오는 메스꺼움에 구토를 하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만다. 이것이 처음 그가 마주하게 된 죽은 자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 역한 냄새와 무수한 파리와 구더기의 모습, 부패한 체액으로 변색된  이부자리 이면에 존재했던 죽은 자의 삶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초밥이 먹고 싶다던 좁은 방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고독사한 한 노인, 등산화 속에 유서를 숨겨두고 목을 매고 자살한 한 회사원, 환상통에 걸린 형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매일 아침 전신 거울을 닦았던 동생,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하고 싶었으나 교통사고로 안카깝게 죽은 한 남자, 생활고에 지쳐 어린 딸과 함께 욕조에서 동반자살한 한 엄마의 사연까지 어느 죽음 하나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다. 그 죽음의 현장들은 너무나 처참하고 끔찍하지만 와타루는 그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의 흔적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난 이 사람이 어떤 인생들을 살아왔는지 몰라. 하지만 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삶의 흔적과 죽음만은 기억할 수 있지."

-p. 66

 

" 남은 흔적은 지울 수 있죠. 하지만 누군가 살았던 나날은 지울 수 없어요,"

-p. 332

 

세상에는 다양한 죽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선택한 사연들이 너무 다르다. 그리고 죽은 자는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특수청소업자와 데드모닝과 같은 특수청소회사들은 그 흔적들을 지우는 일을 한다. 하지만 사사가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특수청소를 통해 죽은 자의 마지막 삶의 흔적과 그들의 죽음은 기억된다. 사사가와나 김완 작가 같은 특수청소업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기억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죽은 자의 흔적을 마주하면서 죽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남은 가족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죽은 아들의 등산화를 끝내 받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도 1년 동안 죽은 연인의 유품을 정리하지 못한 한 여인의 마음에도 공감이 간다. 아무리 죽은 자의 유품을 정리하고 그들의 방과 집을 정리해도 그 흔적과 그 기억은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버리라고 했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 신발을 집에 가져가면 정말인 거잖아. 그 애가 죽은 게 현실이 되잖아..."

-p.116

 

죽은 자의 흔적과 그림자, 그 흔적을 지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삶에 대한 의미에 대해 깨닫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이 죽은 자들의 흔적들에 대한 정리는 죽은 할머니의 모습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심하던 와타루의 마음과, 죽은 딸에 대한 죄책감과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사사가와의 마음에 따뜻함과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 이야기는 사사가와의 죽은 딸 요코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고 아직도 딸아이의 죽음의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사가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딸의 죽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사사가와는 아직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항상 상복을 입고 회사의 창문에 암막 커튼을 쳐서 어두움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 자신이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고, 그들의 삶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정작 자신의 슬픔과 그 미련은 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이 죽음을 다룬 다른 책들보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이유는 죽음을 통해 등장인물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그 전자사전에 의지하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기만 했던 말들,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시시한 삶이 소중한 나날로 변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 330

 

" 결국 죽음은 '점'인 거야. 반대로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도 그냥 '점'인 거지. 중요한 건 그 '점'과 '점'을 묶은 '선'이야. 즉 살아 있는 순간을 하나하나 거듭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야. 하지만 나는 요코의 죽음에 뭔가 의미를 찾고 싶어서 그 작은 '점'을 계속 혼자 바라보고 있었어."

"...오늘 그게 변한 거에요?"

"응. 이제야 계속 쳐다보던 그 점에서 해방된 것 같아."

사사가와는 담배에 천천히 불을 붙였다.

"게다가 아사이가 암막 커튼을 떼어준 덕분에 상쾌한 아침이었고."

-p. 337-338

 

죽음은 이처럼 삶을 바꾸기도 한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해파리 같은 삶을 살겠다는 와타루의 삶도, 죽은 딸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두운 그늘 속의 삶을 계속해온 사사가와의 삶도 바꾼 것처럼 말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삶을 보고 그들의 억울한 희생과 미처 피어보지 못한 마래에 펼쳐졌을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비록 그들은 죽었지만, 여전히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과 마음은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묵직한 책임감과 의무를 주는 듯하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통해 다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은 죽고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말이다.

 

이 책 『흔적을 지워드립니다』을 통해 죽음과 그로 인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하루 지친 일상을 살고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감동적인 책이었다. 

우리 사회 속에서 안타깝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살고 싶었던 하루를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야하기에 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들 눈에 지워야 하는 흔적이더라도, 우리는 기억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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