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품절



"푸른 그림 속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들"

이현아 <여름 피부>를 읽고




"내 안의 고독과 불안에 위로를 건네는 푸른 그림에 대하여"

-유년, 여름우울고독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들-

 

우리는 흔히 '블루' 계통의 색들은 차가운 느낌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파란 바닷물처럼 차갑고 시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에드워드 호퍼, 호아킨 소로야, 조지아 오키프 등과 같은 세기의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 만나는 '블루'는 가장 따뜻한 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블루는 감정과도 관련이 있는데, 주로 '블루'라는 의미는 우울, 고독, 불안 등의 감정과도 연관이 된다. 이처럼 '파란' , 즉 블루는 우리를 시원하게 하기도 하고 따뜻함을 느끼게도, 우울함, 고독을 하는 참으로 신비롭고 매혹적인 색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여름의 피부』에서 저자는 푸른 그림을 통해 유년, 여름, 우울, 고독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푸름은 손안에 쥘 수 없는 색이다. 하지만 시선을 멀리 해서 높이 가져간다면 어디에서나 우리는 푸름을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산, 거리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늘과 바다. 그 너머의 수평선과 지평선 속에서 우리는 푸름을 보지만 우리가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난다.

 

푸름은 여기와 거기의 사이에, 그 거리 속에 존재하며, 바라보고 가까워지려는 시도 속에서만 유효하다.

-p. 14

 

저자는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면서 취재차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닐 때에도 그림을 곁에 두었다. 그림을 바라보고 모으는 것을 꾸준히 한 저자는 퇴사할 때쯤 그녀 자신이 모은 그림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저자는 그림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이 책 속에 담아 그녀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푸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년기 시절, 여름이라는 계절, 우울과 고독 속에서 저자는 '푸름'을 만난다. 유년기 새파랗게 어렸던 그 시절 속에는, 유년기에 겪었던 상실, 그리움, 애도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유년기의 추억과 함께 저자는 화가의 인생과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 전봇대 켜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 일 속에서 저자는 푸름을 익혔다. 전봇대에 서서 불을 밝히는 법, 바라보는 법,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 속에서 기뻐하고, 안도하고, 슬퍼하고, 기대하고, 외로워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푸름 속에서 일어나고, 내 안에도 있음을 느낀다. 

에드바르 뭉크, 발튀스, 루시안 프로이드, 호아킨 소로야, 루치타 우르타도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푸름을 발견하고 그 푸름은 그들의 인생과도 연관되어 있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푸른 기운을 감지한다. 그것은 자신 안으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자의 시선에서 비롯한다. 앞이 아니라 뒤로 발걸음을 디딜 때 생기는 약간의 공간과 그늘, 그 물러남의 태도가 발하는 색,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블루다.

-p. 94-

 

아마 블루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름일지 모른다. 여름의 색으로 블루는 청량감, 홀가분함, 뜨거움과 서늘함의 대치가 푸른 그림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루치타 우르타. 피에르 보나르, 에이미 베넷 등의 그림을 통해 푸름을 느낄 수가 있다.


“여름에는 새로운 단어를 껴안을 수 있는 몸을 갖게 된다. 여름이 나를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것이든 안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간지럽히도록 내버려둔다. 눈꺼풀 위로, 손톱 아래로, 등줄기로, 양 뺨으로.”

-p. 76, 여름 ‘여름의 피부’ 중에서

 

블루는 또한 '우울'과도 연관이 된다. 사람의 몸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인 죽음이나 병, 멍, 그리고 우울은 푸른 색과 통하고 그래서 흔히 우울한 감정을 푸른 색이 상징해왔다. 저자 또한 과거 우울증을 앓았고 그런 저자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에게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참 내달리다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나에게서 달아난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나밖에 없는 풍경은 폐허나 다름없다.”

-p. 157, 우울 ‘나에게서 달아난 자’ 중에서
 

우리가 불안하다고 해서, 우울하다고 해서 계속 도망다닌다면, 결국 도망치고 있는 것은 그 불안하고 우울한 상황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도망자의 자리가 우리 자신의 자리인 것이다. 

 
푸름, 즉 블루는 고독, 비밀과 은둔과도 통한다. 조지 클라우슨의 <애도하는 젊은이>를 통해 상실, 애도, 고독의 감정을 느낀다. 황량한 땅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서, 울고 있는 모습에서 자기만의 어둠을 느리고 고통스럽게 더듬어가고 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 과도한 슬픔이나 숨가쁜 헐떡임은 느껴지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고통을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의 사람의 등을 만지고, 쓸어내리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 사람 스스로가 상실감을 극복하고 다시 이 세계를 걷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푸른 그림을 통해 유년기의 추억, 여름의 상큼함과 신선함을, 우울과 고독감을 느끼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블루' 라고 하는 색을 공통된 주제로 하여, 색에서 연관되는 이미지, 푸름에 얽힌 저자의 경험, 유명 화가들의 작품 속에 담긴 푸름의 의미 등을 '푸름'과 관련하여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불안과 고독을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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