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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의 색깔이 짙은 다양하고 색다른 이야기들 "
에쿠니 가오리의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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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버드나무가 아름다워요. 보러 올래요?"
-『반짝반짝 빛나는』 그 10년 후 이야기가 수록된 에쿠니 가오리 특별 컬렉션-
에쿠니 가오리가 그려내는 사랑은 평범한 사랑이 아닌 조금은 특별한 사랑이다. 오랫동안 사랑이란 주제로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가 이번에도 우리에게 색다른 사랑 이야기들을 가지고 찾아왔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내와 호모인 남편, 남편의 동성애 애인과의 기묘한 동거를 통한 세 사람의 미묘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을 통해 색다르고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동성애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사랑이 어느정도 용인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은 낯설고 불편한 내용이었을 수도 있다. 쇼코와 무츠키 부부와 무츠키의 동성애인인 곤과의 동거는 그 이후에도 계속 되었을까. 쇼코는 무츠키와 이혼했을까. 무츠키는 곤과 함께 살게 되었을까 등 여러 궁금증을 남긴 채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쇼코, 무츠키, 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이 책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에쿠니 가오리가 1989년에서 2003년 사이에 쓴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작품집이며, 이 속에는 문예지 데뷔작인 『포물선』, 가장 에쿠니 가오리다운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선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재난의 전말』 등 9편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실려 있다. 특히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의 후일담인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에서는 10년 동안 궁금했던 쇼코와 무츠키, 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는 9편의 단편 작품들 속에서도 평범하지 않은 사랑 속에 깃든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에 의해 소외당하고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사랑도 그들에게는 반짝 반짝 빛나는 사랑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자는 사랑뿐만 아니라, 연인과의 이별과 바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또한 벼룩에 물리고 나서 세상이 달라지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나 신문에 실린 부고를 보고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특이한 부부의 이야기, 일 년에 한 번씩 만나 장을 보는 세 여자의 이야기 등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가 말한 사랑 이외에 색다르고 낯선 소재의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9편의 단편들 중 가장 에쿠니 가오리다운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선잠』과 이 책의 제목이기기도 하고 쇼코와 무츠키, 곤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의 후일담인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먼저 『선잠』 작품은 히나코라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는 유부남인 고스케와 반년을 동거하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18살 소년인 토오루와 만나고 있다. 그 소년은 고스케 집에 신문배달을 하던 중에 만나게 되었다. 그 소년은 그녀와 고스케가 함께 한 반 년 동안의 유일한 증인이기도 했다.
히나코는 고스케와 헤어졌음에도 그를 못잊고 생각한다. 천장이 되고, 침대가 되기도 하며 침대 옆 작은 스탠드가 되어서 잠든 고스케 씨의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또한 밤마다 하얀 뱀이 나를 옭아매는 악몽을 꾸며 잠을 설치기도 한다. 질투라는 하얀 뱀은 나를 옭아매고 시달리게 만들어 뺨은 홀쭉해지고 눈이 퀭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꿈일지도 모르고 꿈이 아닌 현실일지도 모른다. 고스케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과 질투가 강하여 그녀의 영혼이 유체이탈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내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 어둠 속을 떠돌다 고스케 씨의 침실로 숨어드는 것이다. 꿈이 아니다. 그건 현실이다.
-「선잠」중에서-
이 정도면 정말 집착과 미련 수준이고 그런 사랑에 대한 집착은 그녀 자신을 미쳐버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얀 뱀이 밤마다 그녀 자신을 옭아매듯이 질투는 상대를 옭아매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 질투로 인해 그녀 자신이 옴싹달싹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녀 자신도 이런 미련과 집착, 질투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고스케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렇게 그와 이별을 하고 나니 선잠처럼 그녀 자신을 혼돈스럽게 만들었던 그해 여름이 끝나가고 벼이삭이 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마도 히나코는 사랑의 열병을 앓던 그 해 여름을 무사히 잘 보내고 고스케를 잊고 토오루와의 새로운 사랑을 하며 가을을 맞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치 세상에 있는 세 종류의 인간 중에서 선량과 불량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종류의 인간이 되어서 말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인간과 불량한 인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간.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은 미치도록 선량을 동경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불량에 이끌리고, 그리하여 결국, 선량과 불량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평생 선량을 동경하고 불량에 이끌리면서 살아간다.
-「선잠」중에서
가장 궁금증을 자아냈던 쇼코, 무츠키, 곤의 10년 후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에쿠니 가오리는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주된 사랑은 그들의 사랑이 아닌 치나미와 로의 사랑이다.
쇼코는 여전히 무츠키와 부부이며 그렇게 10년이 지나도록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무츠키의 동성연인이었던 곤에게는 새로운 연인이 나타났고 그들은 사귀는 중이다. 그 연인은 치나미의 남동생인 우라베이다. 치나미가 남동생과 함께 신칸센 열차를 타고 미술관으로 가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남동생이 게이이며 그 남동생의 동성연인은 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동생과 함께 간 '게이 살롱'에서 지금의 두 번째 남편인 '로'를 만나게 되고 결혼하게 되었다. 작품은 치나미와 로의 시점에서 각자의 시선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쇼코, 무츠키, 곤, 아키 등과 같은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해준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사랑 또한 그들에겐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일 것이다. 치나미와 로, 로를 좋아하는 입이 거친 여자 아키, 쇼코와 무츠키, 곤과 새로운 연인 치나미의 남동생인 우라베는 가끔 '기묘한 살롱'에 모여 맨드라미를 구경하고 버드나무의 초록을 즐긴다. 그 살롱에 모인 사람들이 말도 안 되게 뭔가 불공정하고 무언가 결여되어 보이더라도 그들은 그들 각자의 사랑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벼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벼룩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았다는 이야기인 『재난의전말』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색다른 도전이 돋보였다. 결국은 벼룩 때문에 자신의 남자친구와도, 자신이 애지중지 기르던 고양이와도 결별을 하는 주인공의 결단이 황당하기도 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
이번 작품집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엿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쇼코, 무츠키, 곤의 안부를 알게 되어서 기쁘기도 했다. 비록 곤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기면서 그들의 동거와 사랑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그들이 사랑이 아닌 친구같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더 나은 결말인 듯도 하다. 이 작품집에 실린 9편의 단편들이 색다르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각 작품들마다 다른 색채와 재미를 가지고 있어서 작품들을 읽어가는 시간이 즐겁기도 했다.
에쿠니 가오리만의 색채와 그녀만의 섬세한 문체를 느끼고 싶다면 이번에 예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개정판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