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들"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519/pimg_7526911563417131.jpg)
2022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새롭게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 소설!
-사랑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사랑은 사랑할 때는 모르다가 떠나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는 걸까. 결혼이란 사랑의 최종 목적지일까 아니면 사랑의 덫일까. 결혼하면 영원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나 또한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키우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과연 나는 진정한 사랑을 이룬 것일까. 이혼율이 높아가는 요즘,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서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12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항상 사랑의 달콤함, 사랑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 사랑의 상실, 상실 이후의 슬픔, 깨달음 등을 보여준다. 그래서 열 두 편의 이야기들이 제목과 내용들은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랑의 상실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특히 그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꿈꾸며 이혼을 결심한다. 이렇게 이야기들은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하고 있다. 왜 그들은 사랑을 끝내고 이별, 이혼을 결심한 것일까.
이 책에서 에쿠니 가오리가 보여주는 열 두 편의 다양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상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사랑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던 사랑이 끝나고 이젠 '정말 안녕' 이다. 이렇게 사랑이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하고 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울 준비가 되어 있다' 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작가는 바라보며 '관계의 끝'을 알았을 때 전해지는 사랑의 상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기억, 각기 다른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마음은 비슷해보인다. 작가는 그들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담담하게 보여준다.
<담배 나누어 주는 여자>
두 부부가 술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서로 함께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속 '나'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서른다섯에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아이는 없고, 애완동물도 기르지 않고 재혼 4년 차에 접어든다. 그녀의 친구 유리는 연애 경험은 많지만 서른일곱이 되도록 독신을 고수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유리가 자신의 남편인 아키히코가 결혼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부하 여직원과 육체 관계를 가졌고, 그 사실을 알고 이혼하자고 말했을 때, 그가 헤어져도 좋다고 말한 거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다.
바람을 피운 남자가 여자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너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자가 헤어지고 싶다고 하면 그래, 너가 원하니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은 과연 여자를 위해서 하는 말일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헤어져도 괜찮다는 뜻일까. 그런 상황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견디기 힘들면 헤어지면 된다고, 이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서 좀 충격이었지."
-p.69 「담배를 나누어 주는 여자」 중에서
견디기 힘들면 헤어지면 된다. 견디기 힘들어도 헤어져서는 안된다. 어느 선택을 해야할까. 만약 결혼 생활이 힘들면 헤어지면 되는 것일까. 그래도 힘들어도 이혼만은 안 되는 것일까. 어렵고 난감한 선택이다.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결혼도 결혼 생활 얘기도 그만 하고 싶었다.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난감해진다."
-p.70 「담배를 나누어 주는 여자」 중에서
<골>
한 부부가 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조카의 돌잔치 행사에 참여하려고 시댁에 방문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혼을 결심했다. 이미 그들 사이의 사랑은 식어버리고 사랑의 종료를 선언했지만, 아직 시댁 어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듯이 가족 행사에 참여를 한다. 이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滑(골)은 '어지럽다' '익살스럽다' 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내 생각엔 감정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 이혼을 하려는 상황에서 가족 행사에 참여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익살스럽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나 저 사람들 정말 싫어." (p.87) 라고 말하면서도 아내인 시호는 아무 일 없는 듯, 그들이 싫지 않은 척한다. 이런 상황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바람 같은 거 안 피워. 피운 적도 없고, 하지만 당신하고는 헤어지고 싶어. 이런 마음, 바람 피우는 것보다 더 잔인하지."
-p.82 「골」 중에서
바람은 안 피우지만, 당신하고는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정말 그녀의 말대로 바람 피우는 것보다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의 말 속에는 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알고 있었어? 우리 살기는 같이 살아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알아, 그거?"
-p.88 「골」 중에서
이미 그들 사이에 사랑은 끝이 나서 한 집에 살아도 이미 마음은 각자이다. 같이 살기만 할 뿐 그들은 서로 공유하고 나누지 않고 각자 따로 따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한 때는 서로 사랑해서 사랑의 감정에 휩싸였는데, 이젠 서로에게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말이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이것이 사랑의 끝이고 사랑의 상실임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우리 한 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시호가 말했다.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p.89 「골」 중에서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 걸>
이야기 속 주인공 나츠메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한 삶을 산다. 나츠메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난다. 이야기는 그녀가 시어머니와 함께 온천 여행을 가면서 일어난 일을 그리면서 작가는 나츠메의 과거의 사랑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끼워넣었다. 시어머니는 온천 여행이 너무 만족스러워 자신의 아들이자 나츠메의 남편인 '요이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나츠메는 그녀가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인 루이와 함께 멀리 갔다면 좋았을 텐데 (p.123) 하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 요이치와 이혼하고 싶어한다. 이미 반년 전에 루이와 헤어졌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루이가 자리하고 있다. 남편 요이치와 표면적으로 살고 있지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살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괜찮지 않다. 그녀가 그러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지금 시어머니와의 온천 여행도 상당한 노력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나도 아직 시어머니와 단둘이 여행, 그것도 온천 여행을 한 적은 없다.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도,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의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사랑앓이를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안타깝고 연민의 마음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녀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외롭다.
루이와 헤어진 지 반년이다. 상실감은 나츠메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표면적으로나마 아무 탈 없이 생활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루이와의 정사가 나츠메에게 남긴 것은 봇물이 쏟아진 듯 무수한 기억이었다. 자신이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한때의, 사랑 하나만으로 어떻게든 인생을 꾸려 나갔던 한때의, 본질적인 기억이었다. 그러나, 정사는 끝나고 말았다. 더구나 나츠메가 그것을 끝내기 전에, 모든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중에서
<울 준비는 되어 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그녀와 둘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 다카시는 그녀 곁에 없다. 그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고는 집을 나간지 반년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때로 찾아왔다가 또 떠나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아직도 그녀는 그를 좋아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져 귀국하자마자 그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파트에서 그녀 혼자 살고 있다.이제 그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그녀, 그에 대한 사랑의 불꽃은 사그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불꽃이 타고 나면 재가 남듯, 그에 대한 미련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사랑의 불꽃을 다 꺼버리지도 못하고 그 불의 존재만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빛나고 한없이 풍요로웠던 연애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꼬리를 감추었다.
- p. 179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
"다른 여자와 잤다며 다카시가 내게 사과했을 때, 나는 어쩌면 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다카시가 나보다 솔직할 뿐, 우리는 같은 유였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다카시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희마하게 웃었다.
"아야노는 다 알아버린다니까." 라고
그때 내 심장의 일부는 이미 죽었다. 너무나도 외로워 말라비틀어져.
- p. 179~180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
다른 여자와 잤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괜찮아,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찬다. 외로움과 절망에 이미 그녀의 심장은 죽었고, 그에 대한 사랑의 불꽃도 다 타버렸다.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 배는 저주했다"
- p. 189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에
이제는 사랑보다는 미움과 증오, 그에 대한 저주하는 마음만 남았지만, 그녀는 또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울먹인다. 조카와 외출했다가도 그와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아파트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카가 나중에 커서 연애를 한다면 더 강해지기를 희망한다. 자신처럼 좋아하는 남자가 전화하면 미련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또다시 이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말고 좋아하는 남자가 전화가 걸어 그런 말을 해도, 꿋꿋이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p.189) 말이다.
이 열 두 편의 이야기들은 색깔이나 맛은 다른 알록달록한 사탕같았다. 그러나 다양한 얼굴, 다양한 몸짓, 다양한 상황 속에 그들이 있더라도 그들의 사랑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그 열 두개의 사탕들이 사랑의 상실이라는 모두 하나의 사탕 주머니에 담겨 있는 듯하다. 무슨 사탕을 꺼내서 먹어볼까. 그 중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고 맛있었던 사탕을 꺼내서 이야기를 풀어냈고, 사탕을 먹고 난 후의 내가 느꼈던 맛을 적어보았다.
당신은 이 열 두개의 사탕들 중에서 어떤 사탕을 선택할까. 분명한 건 어떤 사탕을 선택하더라도 그 맛은 한결같이 맛있기도 하겠지만, 씁쓸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랑이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그 끝은 씁쓸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