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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푸른 상흔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사강의 특별한 시도 '에세이 소설"
프랑수아즈 사강의 <마음의 푸른 상흔>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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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마음의 푸른 상흔'
-소설과 에세이의 벽을 허물어버린 프랑수아즈 사강의 에세이 소설-
우리는 소설이란 작가의 상상과 의도에 따라 지어낸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에세이는 작가가 인생,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을 말한다. 그런데 소설과 에세이의 벽을 허물고 이 두 개의 장르를 하나로 합친다면 어떨까. 소위 말해서 '에세이 소설'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고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는 사강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형식을 파괴해서 에세이와 소설의 벽을 허문 독창적인 시도를 한 작품인 『마음의 푸른 상흔』을 만났다. 이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에세이 소설이다. 사강은 19살에 첫 번째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으로 문학비평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를 한다. 그 후 18년이 지난 후 37살에 '에세이소설'이라는 다소 독창적고 낯선 형식의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1년 여의 집필 후 이 책 『마음의 푸른 상흔』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에세이 소설을 처음 접한 나에게 이 책은 너무나 독특해서 처음에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소설 속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엔 저자인 프랑수아즈 사강 자신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러다 다시 소설 속 등장 인물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강의 의도대로 소설과 에세이라는 형식을 파괴하고, 등장인물과 작가 라는 거리도 없애버려 등장인물과 사강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강은 자신과 같은 또래의 스웨덴 출신인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를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들 남매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프랑스에 왔지만, 무일푼이며 직업도 없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이 남매들이 어떻게 파리에서 생존해 나가는지에 대한 그들의 '파리 생존기'이다. 사강은 그들 남매의 생존기를 써내려가면서 그녀 자신의 이야기 또한 들려준다. 그녀가 첫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 이후 직업 작가로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뇌,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그녀의 진심, 그녀의 인생, 일상 생활에 대한 생각, 페미니즘을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녀의 의견 등 어떤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녀의 생각을 써내려간다.
이렇게 한참 그녀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다시 소설 속 주인공 이야기로 돌아간다. 사강은 이 등장인물에게 많은 애정을 느끼고 그 등장인물 속에 그녀 자신을 투영해나간다. 즉 하나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는 '액자식 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작가와 소설 속 등장인물이 만나서 함께 한 공간 안에 존재하게 된다. 마치 작가가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소설 속 공간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같다. 보통은 작가는 소설 밖에 존재하는데, 사강은 소설 속에 들어가 그들과 소통한다. 사강은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들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낀 것일까. 그들 남매가 곧 사강 자신이지 않았을까. 그들 남매의 파리 생존기를 통해 사강 자신도 그렇게 자신이 살아왔음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소설 속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가 파리에서 생존하는 방식은 과연 옳은 것일가. 소설 속에서 이 남매들의 끈끈한 정과 믿음, 신뢰가 돋보인다. 그들이 무일푼이기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빌붙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들의 외모와 매력을 이용해서 그들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도 파리에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들 남매는 너무나 외모가 뛰어나서 외모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선의를 살 수 있다. 항상 그들에겐 그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 남매는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그들 남매만 믿을 뿐,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 사람들이 보이는 호의와 사랑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적당히 그 마음과 사랑을 받아주면서 그들 남매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들의 생존 방식이 통할까. 아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그들을 도와줄 사람들도 없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외모를 포함한 육체적인 매력을 이용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사강 자신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19살 첫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후,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인기와 명성에 힘입어 살아왔다. 처음에는 그 명성이 뿌듯함을 주었지만, 점점 더 부담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작용해서 어느 날은 글을 한 글자로 쓰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직업 작가로서 느끼는 고뇌, 스트레스, 불안이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 이야기 이면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자 하며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우울증을 피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 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모든 텍스트의 절대적인, 고유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심지어 논문이든, 이처럼 늘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 p.135
그래서 소설 속 이야기보다는 사강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가 더 인상적이다. 어쩌면 사강은 그들 남매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에세이 소설' 이라는 독특한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강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로서 이 책을 통해 프랑수아즈 사강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사강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의 푸른 상흔'의미를 살펴보자. 사강은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의 생존방식과 로베르 베시의 고독한 죽음에 대해, 그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면서 각자 그렇게 영혼에 푸른 멍이 든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약하고 소중한 우리의 영혼을 잘 돌보지 않고 소홀히 한다. 그렇게 영혼은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푸른 멍까지 들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영혼의 상흔의 심각성을 보고 난 후에야 그 심각성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상흔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자초한 것이라고 사강은 우리에게 말하며 경고를 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빼앗아가는 것은 뭔가 약하고 소중한 것, 기독교인들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영혼을 잘 돌보지 않으면 어느 날 숨이 턱에 차 은총을 구하는 영혼의 상흔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흔은, 분명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 p.139
사강이 말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것은 나는 나를 치유할 권리도 있음을 같은 의미일지 모른다. 우리가 자초하고 잘 돌보지 못했던 영혼의 상흔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돌아와야 함을 소설 속 등장인물과 사강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사강은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문학, 사회 현상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상처 입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치유를 통해 영혼의 상흔이 아물기를 바란 것이다.
사강을 좀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사강의 특별한 시도인 '에세이 소설' 『마음의 푸른 상흔』을 추천하는 바이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합니까?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당신의 귀감이었습니까, 아니면 악몽이었습니까? 인생이 당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기 전에 당신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당신의 눈 색깔이, 당신의 머리 색깔이 어떻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습니까? 밤이 두렵습니까? 잠꼬대를 합니까? 당신이 남자라면, 성질 고약한 여자들을, 여자란 자고로 따뜻한 날갯죽지에 남자를 품어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들을―최악은 그럴 줄 안다고 착각하는 여자들이죠―떨어져 나가게 할 가슴 시린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상관부터 아파트 관리인까지, 마주치기도 싫은 주차단속 요원부터 한민족 전체를 책임지는 불쌍한 마오쩌둥까지, 모든 사람들이―당신을 포함해서요―외로움을 느낀다는 걸, 죽음만큼 삶에 대해서도 두려워한다는 걸 아십니까? 이런 진부한 생각이 두려운 것은 이른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그것을 늘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기거나 적어도 살아남기만 바라니까요.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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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