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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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은밀한 범죄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

 

해원의 <굿잡>을 읽고



이 사회의 지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은밀하고 방대한 범죄 세계가 있다.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면서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직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사망한 현장을 정리하고 처리, 폐기, 소독하는 일을 담당하는 업체를 특수청소업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범죄 현장에서 사람이 살해당해 죽었다면 그 죽은 사람들을 청소해주는 업체도 있을까. 나에겐 아직도 특수청소업체도 낯설었는데 '미래클리닝'과 같은 청소업체는 더더욱 생소했다. 

 

이 책 『굿잡』은 범죄 현장의 시체들을 청소하는 회사에 취업한 청춘들의 생존 투쟁기를 보여준다. 매일 빚쟁에에 쫓기며 벼랑 끝의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 '연희'는 어느 날 한 청소업체에 취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청소업체는 평범한 청소업체가 아니라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청소하는 일을 한다. 겉보이기에는 '미래클리닝' 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이름을 가진 청소회사처럼 보이지만 불법적으로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한다.

처음 인턴으로 나간 날 이 청소업체의 실체를 알게 된 연희는 너무 끔찍한 모습에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간다. 불법이고 너무나 위험한 일임을 알았지만,  높은 보수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만다. 나쁜 일이고, 역겨운 일이지만, 현재의 빚을 갚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 연희는 그 일을 계속하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교동이 비 내리는 골목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생활 쓰레기가 되죠. 그걸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에요. 특수청소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예요. 시체는 치우고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거죠.”

-p. 25-

 

그래도 불법 시체를 처리하고 청소하는 회사이긴 하지만 나름의 원칙이 있고 미래클리닝과 같은 업체들을 관리하는 협회도 있다. 그 협회에 의해서 청소업체의 질서와 관리가 이루어져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그들이 처리하는 시체는 오직 흉악범, 범죄자의 시체들만을 처리한다. 절대 여성과 아이의 시체는 절대 처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희는 나름 자기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 흔들리지 않고 사회 이면에 있던 범죄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 일을 계속하게 되면서 처음에 가졌던 자신의 윤리와 원칙도 점점 무뎌지게 된다. 더이상 빠져서는 안 되는데 생각은 하면서도 쌓여있는 빚을 생각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는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연희는 믿고 의지하던 미래클리닝 멤버들 사이에서 배신과 음모에 대해 알게 된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같은 동료이면서도 서로 속이고 죽여야만 하는 비정한 현실 앞에 연희는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잃는다. 호감을 가졌던 동료가 내부자의 음모에 의해 죽고, 그동료 또한 그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연희는 그들의 배신과 이기적인 마음에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비록 돈 때문에 계속했던 일이었지만, 그 동료들 사이에서도 돈에 의해 서로 속이고 심지어 속임을 당하다니 너무나 비정하고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책 『굿잡』은 대한민국에 있었던 크고 작은 비극들을 보여주고 있다. 연희와 동료인 성수, 연남 사이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수의 부모님, 연희의 동생, 연남의 부모님이 모두 비극적인 사건으로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낙원 상가  붕괴사고로 나와 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있었던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또한  이 이야기 속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건, 여성 혐오 범죄들, 크고 작은 화재와 살인 사건들이 등장한다.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계속 그 청소일을 계속할 수 없는 '연희' 의 처지에 공감이 가면서도 씁쓸함이 남는다. 그 당시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으로 인해 우리들은 힘든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 청춘들은 먹고 살기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들을 다해만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연희의 선택과 행동을 쉽게 비난하지 못한다. 왜 그녀가 그런 일까지 해야만 했을까?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이 겪었던 각종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 바쳐서 그 비극들과 맞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보게 된다. 연희가 붕괴사고로 동생을 잃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성수 또한 붕괴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들의 고통과 슬픔, 비참한 인생이 남의 이야기 같이 느껴지지 않고 우리들의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또한 이 책 속 이야기들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기억하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연희의 마지막 선택과 결단이 남았다. 연희는 성수의 의문스러운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과감히 그녀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인 '굿잡(Good Job) 은 과연 어떤 직업을 말하는 것일까. 은밀하게 시체 처리를 하는 불법 청소업, 망나니라 불리는 킬러들의 협동조합, 시체를 화장하여 처리해주는 황천,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아주는 노숙자 단체 등 그 어떤 직업도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다. 아마도 저자는 이런 현실속의 직업들을 반어적인 의미를 사용하여 '굿잡' 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 직업들을 나쁘고 불법적인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직업 또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며 그런 사회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이야기 속 서사 주인공을 '연희'로 설정함으로써, 여성 서사의 힘을 보여준다. 저자는 소설 속 여주인공 '연희'를 향해 살아가라고, 틀리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여 이 현실에 맞서서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희의 모습을 보면서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녀가 현실에 맞서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우리 또한 앞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견딜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혹시 지금 현실 속에 정말 '미래클리닝' 과 같은 청소업체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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