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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네 편의 기묘하고 도발적인 이야기들"
무라타 사야카의 <무성 교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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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을 너무 당연한 듯이 살고 있다. 우리가 성별에 따라 구분이 되고, 우리가 표출하고 있는 감정들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 일상 속에서 젠더 구분이 사라진다면, 또는 우리가 표출하고 있는 감정 중에 화, 분노 등이 사라지고 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비정상적이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지금껏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일상과 성 정체성, 감정 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이 책 『무성 교실』은 일본의 3대 문학상을 휩쓸고 전작 『편의점 인간』으로 국내에서도 너무나 잘 알려진 무라타 사야카 작가의 작품이다. 네 편의 기묘하고 도발적인 이야기들로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우리의 일상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각각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들을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녀의 기발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에 감탄을 금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했을까. 정말 재미있는 상상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비밀의 화원> 이야기는 통쾌한 복수극같이 느껴졌고,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소녀>를 통해 어렸을 때 소녀 감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표제작인 <무성 교실>은 젠더와 젠더 해방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변용> 이야기를 통해 성격도 과연 유행처럼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하는걸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소녀>
어렸을 적 만화영화 '세일러문'을 보면서 진짜 이 세상에 세일러문이 존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라고 세일러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마루노우치선의 마법소녀>에 등장하는 미라클 리나를 보니 문득 어렸을 적에 보았던 세일러문이 생각이 났다. 어렸을 적에 하던 마법 소녀 놀이를 27년 간 해 왔다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아직도 핸드백 속에 마법 콤팩트와 마법의 동물인 '폼폼'을 넣어다닌다고 하니, 서른 여섯 살의 나이에 할 수 있는 생각인가 하는 의문점도 들었다.
하지만, 만화 영화 속에서 세일러문이 악당을 물리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듯이, 그녀 또한 마법 소녀 리나로 변신하여 일상 생활 속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위험한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것이 마법소녀 놀이의 일환이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좋은 활동을 하고 있으니, 뭐 어린애같은 유치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목적은 좋아보였고,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우리 현실 사회에서도 미라클 리나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어릴 적 동심을 간직하고 만화영화 속 마법 소녀처럼 정의 구현을 소소하게 실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밀의 화원>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추억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이루어질 수 없기에 첫사랑이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짝사랑인 경우가 많고, 그 첫사랑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느꼈던 환상이나 기대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런 첫사랑의 추억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첫사랑을 끝낼 수 있을까. 바로 이 책 <비밀의 화원>에서 그 방법을 잘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첫사랑을 일주일 동안 감금하면 된다. 기억 속의 첫사랑의 모습과 현실 속의 첫사랑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된다. 아마도 현실 속의 첫사랑의 모습을 보면 그 환상과 기대가 다 깨져버릴 테니깐 말이다.
참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자신의 집에 첫사랑을 일주일동안 감금하면서 첫사랑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 말이다. 처음에는 첫사랑을 아직도 사랑해서 감금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발한 생각과 의도가 숨어있었다니..참으로 통쾌하고 시원한 복수극을 본 것 같다.
"첫사랑을 끝내는 방법이 뭔지 알아? 현실의 첫사랑 상대를 통해 환상을 폭파시키는 거야. 그렇잖아. 내 첫사랑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니까. 그걸 파괴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그 사람이 얼마나 하찮은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겪어보는 수밖에 없지."
-p. 104-
<무성 교실>
민약 이 세상에 '남성', '여성' 이라는 성별이 없어진다면 어떨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 '남자' 의 성이 정해져서 태어난다. 그 성별 구분과 동시에 어쩌면 우리의 차별도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움직이고 있어. 아마 가까운 미래에 성별 폐지 법안이 의회에 제출될 거야. 지금처럼 18세까지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쭉 우리 세상에서 성별이 사라진다고.”
-p.131, 「무성 교실」 중에서
정말 미래에는 성별 폐지 법안이 통과되어 성별에 상관없이 살 수 있을까. 아직 우리나라에는 동성애가 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성별 폐지 법안이 통과되면 어둠의 그늘에 있던 성소수자들도 이제는 마음껏 나와서 살 수 있는 것일까.
참 재미있는 설정이다. 학교에서 성별을 없애고 남성, 여성 따지지 않고 서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생활하게 한 교칙 말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성별을 모른 채,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학교 현장에서 성별에 따른 구분이 엄격히 존재하고 학생들은 성별에 따른 역할을 부여받고 사회화되고 있는데 말이다. 학교에서만이라도 성별 구별을 없애고 말 그대로 '무성 교실'을 만들면 지금보다 더 나은 학교 모습이 될까.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들이 남녀공학, 남녀합반으로 되어서 학생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고 공부도 한다. 하지만, 엄격히 그들 사이에는 '젠더'라는 벽이 존재한다.
이야기 속 유코가 '세나'를 좋아했듯 성별 구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이란 성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상당히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학교 현장과 그 학교 속에서 서로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의 이야기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주제를 다루고 있다. 10대들의 순수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보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는 성별이 없는 교실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만났기 때문에 친구가 되었고, 사랑을 했으며, 이런 식으로 함께 잠들어 있다.
성별을 아무리 빼앗겨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사랑은 성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50~151, 「무성 교실」 중에서
<변용>
만약 우리에게 '분노'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화,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꼭 그런 감정이 나쁜 감정일까. 「변용」에서 작가는 분노가 낡은 감정이 되어 버리고 사라져버린 세상을 보여준다. 화가 나고 분노할 상황임에도 젊은이들은 그들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 '분노' 라는 단어의 의미와 그 감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 분노의 감정은 낡은 시대의 감정이며, 그 감정을 보여주거나 사용하는 것은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화를 내고 분노하는 모습에 그들은 어리둥절하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성격도 유행처럼 있다가도 없어지고, '나모무', '마미마눈데라' 같은 새로운 언어로 표현되는 감정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새로운 단어를 보니 요즘 아이들이 쓰는 급식체, 약식체 등이 생각이 난다.
무엇이 정상적인 세계이고 무엇이 비정상적인 세계일까. 분노가 사라진 세계에서 주인공 혼란스러워한다. 그 세계에서는 섹스도 사라지고 부부라 할지라도 어떤 성적 관계도 맺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용하며 사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성격 또한 이런 게 가능할까.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괜찮아. 우리는 쉽고 안이하게, 아무 생각 없이, 제 의지란 없는 것처럼 순식간에 주변에 물들어, 변용하며 살아가는 생물이야. 자신의 그런 점을 믿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우리 유전자는 그걸 반복하며 살아왔으니까.”
-p.196, 「변용」 중에서
이 네 편의 이야기들은 분명 일상적이고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이고 기묘한 상상을 해봄으로써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세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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