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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 - 2022년 제4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2년 1월
평점 :

아이는 우연히 집에서 발견한 아빠의 라이터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여름 날 아빠의 라이터와 스프링 노트를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가 '불장난'을 한다. 노트의 종이를 찢어 내고 라이터의 부싯돌을 튕겨 종이에 불을 붙인다.
왜 아이는 불장난을 하는 것일까. 여전히 아이는 외롭고 쓸쓸하다. 그 아이에게 애정어린 관심을 가져줄 부모도 친구도 없다. 아이는 불을 피우면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 불을 피우는 동안 아무도 자신을 해칠 수 없고, 자신을 힘겹게 하는 각종 스트레스와 수치심, 굴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치 그 모든 것을 저 불길 속에 집어넣어 활활 태워서 날려버리면 자신 속의 응어리와 고통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아이는 불장난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을까. 어렸을 때 누구나 호기심에 재미로 불장난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재미로 불장난을 해본 적이 있는데, 모든 것을 삼킬 듯 타버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것도 같았다.
아마 아이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그런 기만과 착각,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 득한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그러므로 이 여정 자체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 보는 눈의 진짜 용도가 될 것이다.
--p.75, 「불장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