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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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 느끼는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20년 만에 만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새로운 번역과 해석으로 다시 만났다. 어렸을 때 세계문학작품 전집으로 읽었던 책, 그래서 그때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이야기 줄거리를 파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보게 된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 아련히 남았다.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고 결국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노인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인생도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어렸을 땐 그런 노인의 모습이 참 어리석게 보이기도 했고 노인의 무모한 도전이 헛수고라고 느껴졌지만, 이제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이렇게 다른 시각과 생각, 다른 새로운 번역을 가지고 이 책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노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 노인을 믿고 따르는 한 소년의 존재도 눈에 보였다. 그 소년이 없었다면, 노인은 자신의 투쟁을 계속해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노인과 바다』의 작품의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노인은 84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85일 째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운이 좋을 거라고 기대하며 노인은 바다에 나가고 낚싯대를 드리운다. 그리고 그의 기대처럼 대어를 잡게 되고 결국에는 상어에게 물고기를 빼앗기고 거의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부분이었다. 노인과 물고기와의 한판 승부, 힘겨루기가 너무나 박진감있고 긴장감있게 전개된다. 

그 사투는 끝이 나지 않을 듯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마치 물고기나 노인이나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그들의 힘 겨루기는 팽행선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그렇게 물고기와 노인은 며칠 동안 힘겨루기를 하며 팽팽히 맞서다가 지쳐간다.

 

내 계획은 녀석의 엄청난 몸집으로 인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해.

만약 녀석이 뛰어오른다면 나는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녀석이 영원히 아래 머물고 있어. 그러면 나는 녀석과 함께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 

-p.63-

 

노인은 피로와 아픔, 고통, 배고픔 등을 참아가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다. 정말 노인의 생각대로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였다. 처음에는 그 물고기를 잡으면 모든 일이 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고기를 잡아서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라는 걸 몰랐다. 

 

노인이 물고기와 벌이는 사투의 과정이 너무나 긴박하게 펼쳐져서 그 이후에 더 큰 위험이 가디라고 있을 거라는 것을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문제는 바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버텨서 겨우 물고기와 싸움에서 승리했는데, 그것은 전반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 위험하고 힘든 후반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상어와의 사투였는데, 낚싯줄에 매달린 거대 물고기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노인은 불굴의 의지로 그 사투에서도 살아남았다. 몇 번이나 죽음의 위협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살아남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물고기였다. 

 

노인은 결국 물고기와의 싸움에서도, 상어와의 사투에서도 승리한 것일까?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는 누구일까? 어쩌면 저자인 헤밍웨이는 이 싸움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의 인생과 삶의 투쟁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물고기의 사투 과정은 폭력적이거나 잔인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노인이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친화적 관계를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노인은 자연을 정복한 것이 아닌 자연에 패배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그러나 그 패배는 어쩌면 진정한 승리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물론 노인과 물고기와 사투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 항상 노인을 챙기고 노인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그 소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노인은 물고기와의 사투 속에서도 그 소년 '마놀린' 생각을 한다. 헤밍웨이는 마놀린을 소년이라고 썼지만, 역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년의 나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12살 이하가 아닌 17살 이하의 나이일 거라 의견을 제시한다. 작품 속 이야기 속에서 그가 그물을 손질하고 노인을 도와 고기도 잡는 걸로 보아 어느 정도 나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할 수 있다. 이 소년의 존재가 『노인과 바다』의 단순한 이야기를 더욱 생동감있고 아름답고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 소년이 노인을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해주었기에 노인이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그 소년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힘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20여 년만에 다시 읽어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이제는 노인의 도전과 사투가 무모한 도전이 아님을 알게 된다. 노인이 비록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에 도전해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그렇게 때론 노인처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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