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 SF와 로맨스,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의 종합소설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지혜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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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잠시 멈춤' 이 가능할까 "

 

정지혜의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를 읽고



‘너 잠깐 냉동되지 않을래?

나중에 꼭 깨워줄께!.’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이번 생은 망했으니, 10년, 30년, 50년 후에 냉동되었다가 깨어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은 인간을 냉동시키고 해동시켜서 다시 깨어나게 할 수 없지만, 이런 발상은 항상 우리에게 도전과제였다. 과학자들은 지금보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있는 미래에는 불치병도 희귀병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금 당장은 치료법도 치료제도 없어서 이번 생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먼 미래에는 불치병에 대한 치료방법이나 치료제가 나와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기대를 많이 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번 생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다음 생에서는 살 수가 있다면 당신도 냉동되는 방법을 선택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 책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는  아직도 인류의 도전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인간의 냉동과 해동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 속 이야기는 단순히 불치병 치료 목적이 아니라, 지금 삶이 너무 힘들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불가피한 이유로 도피가 필요할 때 등 여러가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냉동되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런 각가지 이유들로 냉동되었다가 30년, 50년이 지난 후  해동되어 다시 새롭게 시작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냉동되기 전의 삶과 해동되어 다시 시작한 삶 중 어떤 삶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정지혜 작가는 어느 과학 잡지에서 냉동 인간에 관한 기사를 보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잡지를 읽고 저자는 현재까지 냉동된 신체를 해동시킨 사례가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냉동되는 쪽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그렇게까지 살고 싶은 것일까. 냉동 후 맞이하게 되는 삶은 망했다고 생각한 이번 생보다 더 나은 것일까. 

 

데이트 폭력을 피해 냉동되는 삶을 선택한 여자, 30년 후 깨어나보니 그녀 주변에는 의지할 부모님도 없었다. 완전히 그녀 혼자였다. 그러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려고 한다.

과연 그녀는 그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까. 

 

아이를 너무 가지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난임으로 고생한 한 여자가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더 나이가 젊은 엄마를 가지게 해주고 싶어서 그녀는 자발적으로 17년 간 냉동되는 삶을 선택했다. 17년 후 깨어나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을 만나 ' 내가 너의 엄마야' 라고 말하며 아이들을 만나는데,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엄마는 이미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냉동되는 것을 선택했다고 말한 그녀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꿈 속의 그녀를 만나기 위해 50년 동안 냉동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이용하고,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아이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핑계는 아니었을까.
 

이렇게 각자 개인적인 이유로 그들은 기꺼이 냉동되는 삶을 선택했다. 마치 백마탄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그들은 끝없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죽은 것일까. 아니면 살아있는 것일까. 죽음과 삶의 경계 어디에 그들은 있는 것일까. 

 

이야기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중에 보면 그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냉동 전문 회사에 근무하는 규선과 그의 결혼 상대인 가은, 냉동인간 B-17903이자 기한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과거 비밀과 그를 둘러싼 인연들, 보도국 기자로서 올바른 보도를 하고자 했으나 결국 힘의 논리와 개인의 행복에 점령당한 은태와 그 가족들, 쌍둥이에게 좀더 젊은 엄마로 남고 싶어 냉동되는 삶을 택한 윤정,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다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냉동된 가은 등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들은 '냉동인간' 이라는 키워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냉동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정해진 기한 후 해동되어 다시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 새로운 삶은 그들이 기대하고 희망한 삶과는 달랐다. 그들은 과연 그들의 새로운 삶 속에서 행복을 느낄까?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할 거예요. 잠깐 유보시키는 것일 뿐 인생은 지속될 테니까요.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과 상황이 완전히 똑같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

-p.227-

 

 

또한 작가는 냉동으로 잠시 멈춘 삶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냉동인간으로 인한 장기밀매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아마 냉동인간으로 인한 장기밀매도 가능할 거란 예상에서 함께 이야기로 엮은 것 같다. 가히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냉동과 해동할 수 있는 뛰어난 과학기술이 이렇게 악용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항상 발전이 있으면 반대 급부로 악용과 남용이 있으니깐 말이다.

 

누구나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진심은 오히려 반대이다. 너무나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 '인생을 잠시 멈춤' 하면 어때? 라고 달콤한 제안을 한다면 쉽게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말 인간의 인생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못 그렸으면 그 도화지를 버리고 다른 도화지에다 그릴 수 있다면, 마치 이 책의 제목처럼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이 더 낫길 희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려고 할까. 그러나 정말 작가의 말대로 다음 생이 더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떨까.

 

이 책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을 읽으며 인간 냉동에 대한 생각, 그로 인한 삶의 행복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지금 내 삶에 좀더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번 생이 망했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끝을 향해 꾸역꾸역 걸어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

-p.262,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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