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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땅에서, 우리 ㅣ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2년 1월
평점 :
"거인의 땅에서 찾은 여행의 이유"
이금이의 <거인의 땅에서, 우리>를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217/pimg_7526911563309250.jpg)
"하늘 저 위에 고비보다 더 넓은 땅 있어요.
그곳에 양 치는 거인 사는데 밤마다, 밤마다 불 피워요.
불똥이 튀어서 거인 옷에 구멍이 아주 많이 났는데 그 구멍으로 불 보여요.
그게 저 별들이에요."
-p. 78
뜨겁고 투명한 햇살,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 모래 언덕, 작열하는 태양,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건 지평선, 등대처럼 빛나는 게르, 절망뿐인 상황에서 만난 한 줄기 희망 신기루, 이 모든 것들이 몽골 고비 사막하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곳은 거인의 옷자락으로 덮이는 세상이고, 우리는 구멍난 거인의 옷자락을 통해 별빛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환상적인 상상도 고비 사막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이 책 『거인의 땅에서, 우리』는 몽골이라는 낯선 땅, 거인의 땅을 함께 여행하게 된 딸과 엄마의 여행 이야기이다. 딸과 엄마가 몽골을 여행하면서 발견한 삶의 진실과 여행의 이유를 이금이 작가는 여행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몽골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나 또한 그들의 여행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은 느낌이다.
이금이 작가는 발견한 삶의 진실을 딸과 엄마의 시점으로 나누어서 보여준다. 1부에서는 딸의 의 시점으로 딸이 몽골 여행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십대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부분을 잘 고려하여 그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서 적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여느 십대처럼 딸인 다인이는 아이돌 그룹 '야누스' 를 좋아하고 야누스 그룹 멤버 중 '카인 오빠'팬이라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을 대상으로 해서 팬픽을 연재하고, 그들의 팬미팅이나 브라마이드, 앨범을 가지고 싶어 하는 등 전형적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십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야누스 그룹 멤버인 지노 오빠를 닮은 몽골에서 만난 가이드 '바카르'에서 한 때 흥모하기도 한다. 엄마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남몰래 가이드인 '바카르'를 좋아하는 모습이 풋풋하고 순진하게 보였다. 엄마인 숙희가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것과 대조적으로 딸 다인이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몽골 여행 오기 전에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 무관심하고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통해 딸은 엄마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모범생이고 기대주인 오빠만을 편애하는 엄마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고 엄마와의 대화와 소통의 문을 닫아버렸었다. 그러나 몽골 여행을 통해 어린 소녀마냥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에 딸은 엄마에 마음의 빗장을 열고 엄마와 소통하고 화해하게 된다. 또한 몽골 여행 가이드 바카르에게 설레이고 좋아하는 마음도 가지고, 고비 사막의 광대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바카르에 마음을 빼앗긴 딸 다인의 생각과 행동들이 주를 이루다가 나중에는 바카르가 부상을 당해서 떠난 후에는 여행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엄마인 숙희는 어릴 적 문학 동아리 멤버들이었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긴다. 집안 일을 벗어나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지만, 여전히 마음 은 아들 형인의 진로와 대학입시, 듣보작가인 친구 춘희에 대한 불만, 딸 다인과의 관계의 단절, 자신의 건강상태, 어릴 적 엄마의 죽음 등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그동안 딸과 제대로 여행 한 번 못해본 엄마 숙희는 앞으로 자신의 병으로 인해 그런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이번 몽골 여행에서 딸을 데려왔다. 그러나 자신이 암에 걸려서 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사실을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딸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서 엄마 숙희는 딸 다인과 친구들을 따라 몽골 여행을 온 것이었다. 그렇게 딸 다인도, 엄마 숙희도, 숙의의 문학 동아리 친구들도 그들 자신만의 여행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일까.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우리가 살던 익숙한 장소를 떠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도 일상을 벗어나 파랗고 광활한 동해 바다를 보면, 내 속에 있던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해보고 싶은 용기와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아마 이야기 속 숙희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단순히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 떨고, 새로운 외국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것만이 다가 아닐 것이다.
그들이 고비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울은 이유는 무엇일까. 딸 다인도, 엄마 숙희도, 듣보작가 춘희도, 바람맞은 아줌마 등 여행을 하는 그들 모두가 울은 이유는 무엇일까. 신기루가 사라진 것이 너무 허망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꿈도, 삶도 신기루처럼 저렇게 사라져 버릴까봐 두려워서일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 성공, 높은 사회적 지위, 많은 재산 등도 사막의 신기루 같은 걸까. 이야기 속 누가 말했듯이, '어차피 우리는 죽게 되어 있으니깐'
그 죽음 앞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부와 명예 성공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마두금 연주는 계속 이어졌다. 그 소리에 마음을 실은 채 무심코 초원을 바라본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신기루가 홀연히 사라졌다. 신기루가 있던 자리엔 막막한 지평선뿐이었다. 영원히 가 닿지 못할 것처럼 아득해 보였다. 갑자기 엄마가 흑, 하며 얼굴을 무릎 웨에 묻었다.
놀랍게도 바람맞은 아줌마와 듣보작가 아줌마도 울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나도 나도 눈물이 났다. 나느 잘 울지 않는 아이다. 그런 내가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지? 그것도 아줌마들 틈에 끼어 앉아서.
-p. 122-123
처음에는 단순히 딸과 엄마의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 속에는 딸과 엄마의 화해와 소통, 삶의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 여행을 통해 소원했던 딸과 엄마의 관계는 긴밀해지고, 모녀간의 쌓인 오해는 이해와 소통으로 인해 풀어지고 그들은 화해하게 된다. 딸은 지금 엄마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 모습이 미래의 자신의 모습임을 알기에. 엄마 또한 딸을 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하게 된다. 암에 걸려 암투병하다가 결국엔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한 자신의 어머니, 자식들 걱정 때문에, 경제적 여건 때문에 그녀의 남은 삶을 그렇게 쉽게 허망하게 포기하고 죽음을 스스로 택한 그녀의 어머니를 말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비로소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알고 있다. 왜 그때 자신이 신기루를 보고 울었는지를 말이다.
내가 그날, 모래 언덕에 앉아 울었던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신기루가 홀연히 사라지는 걸 본 순간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실은 신기루처엄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덮쳐 왔다.
나는 사막으로 들어서면부터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차는 온몸을, 머릿속을, 오장육부를, 마침내는 영혼까지 흔들어 대며 나를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으로 끌고 갔지만 나는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이미 내 안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눈앞에 실제인 듯 있다가 사라진 신기루가 일깨워 줬다. 내가 그동안 기를 쓰고 잡아 왔던 모든 것들이 신기루가 사라진 사막에서 갈 길 몰라 하며 허둥거렸다.
-p. 232-233
마치 그녀의 울음은 그녀 마음 속에서 그녀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모든 생각들, 집착들을 무장해제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그동안 자식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면서 살아온 그녀의 삶애 대한 회한이었을까. 그 울음과 깨달음으로 인해 엄마 숙희는 좀 더 그녀의 삶에 충실하고 그녀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엄마 숙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몽골여행이 그녀에게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딸 다인'이와 함께 와서라는 것을 말이다.
지난 시간이 필름을 거꾸로 돌릴 때처럼 역순으로 머릿속에 펼쳐졌다. 모든 게 너무도 생생했다. 형인이 입시 문제 말고든 뭐든지 깜빡하고 잊기 일쑤였는데 이토록 세세하고 뚜렷하게 기억하나다니. 해외여행이 처음이어서일까? 아니면 친구들과의 여행이라서? 몽골이라는 특별한 여행지라서? 아니. 그보다는 이 모든 걸 다인이와 함께해서였다.
-p. 236
이 책 『거인의 땅에서, 우리』는 2012년에 출간된 『신기루』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그 책을 출판한 지 10년 만에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는 현재의 시대적 배경과 감수성을 작품에 반영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공들여 손보며 차별이나 혐오 표현도 바로잡았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하루하루 늘어가는 확진자수 증가에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이 시점에서
광활한 몽골의 고원과 끝도 없이 이어진 고비 사막이 이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듯 하다.
특히 딸과 엄마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요즘 사춘기 증상을 보여, 자주 다투고, 싸우는 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코로나가 끝나면 딸과 함께 나도 해외여행 한 번 가보고 싶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눈에는 아직도 광활한 고비 사막과 그들이 보았다던 신기루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 이것조차 신기루이겠지만 말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은 지 3년째로 접어든다. 떠나는 일이 자유롭지 않은 이 시기에 엄마와 딸, 친구들과의 여행을 담은 이 이야기가 읽는 분들께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거인의 땅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중에서-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217/pimg_752691156330925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