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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마치 비트코인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평점 :
"차가운 도시 속 고독한 청춘의 삶의 기록"
염기원의 <인생 마치 비트코인>을 읽고
코로나로 인해 일상을 빼앗긴 지 어언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비대면 접촉으로 인해 서로 만나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간적인 만남과 접촉을 금지당한 채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코로나 때문이 아닌 코로나로 인한 경제파탄과 고립으로 인해서 말이다. 예전에는 생활고를 못 이긴 노인들의 고독사가 많았는데 요즘은 청년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고독사는 가족, 친적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간이 흐른 뒤에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이 책 『인생 마치 비트코인』 속 403호의 여자의 경우가 고독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왜 그녀는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 드러난 진실과 가혹한 현실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전작인 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를 통해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현장감있게 풀어내서 염기원 작가는 로 제 5회 황산벌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이 책 『인생 마치 비트코인』 에서도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던 한 도시 노동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도시 노동자의 현실과 고독하고 힘든 삶을 영위해가는 청춘의 모습을 조명한다.
작가는 차가운 도시의 이면 아래 감춰진 날 선 무관심과 다정한 폭력, 고독한 청춘의 삶을 통해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출세하고자 서울로 올라온 '나'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시 청년이다. 함께 상경한 친구는 결국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다가 다시 시골로 내려갔고 그 혼자 남아 생활하고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어서 사실상 고립에 가까운 외롭고 고독한 일상을 영위한다. 그에게는 오직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 그것이 그가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뾰족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어서 그는 주식투자를 비롯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한다. 그러나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인생은 마치 비트 코인'과 같아서 예상 밖의 변수가 등장하여 등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밝은 미래를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그에게 403호 여자의 죽음은 그의 삶에 터닝 포인트와도 같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아왔던 그에게 그녀의 고독사는 충격이기도 했고, 그의 고독하고 고립된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소통마저 부재한 삶의 수면 위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졌다. 그 돌멩이가 그의 삶의 수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그 물결은 점점 커져 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리 성공한 삶도 아니고 대단해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 전까지 나름 자신의 삶에 만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이자 여섯 평짜리 주거 공간에서 낮에는 입주민 관리를 하고, 밤에는 주식과 코인을 했다. 가끔씩은 벤츠를 몰고 벤츠 동호회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런 그의 삶에 자부심을 느낀 그가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403호 여자의 일기장을 읽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화해를 시도한다.
403호 여자의 고독사는 비단 그녀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닐 지 모른다. 그녀는 치매로 고생하는 노모와 희귀병에 걸린 아이를 간호하면서 딸로서, 엄마로서 그 모든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 삶을 이어갔지만, 아이가 결국은 죽고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 밖에 없었으리라. 그녀가 고독사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마나 그녀가 치열하게 살아 왔는지, 끝까지 그 행복과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같이 고독사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사연이 생각났다. 그들은 죽음 이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을만큼 처참하고 암담한 심정들을 느꼈으리라.
403호의 튼튼이는 희소병으로 죽었다. 불과 몇 주 전에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기장을 들고 나온 순간을 후회한 이유는, 그녀가 일기장에 기록한 불행이 거기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03호의 남편에게도, 갑자기 찾아온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차마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을, 몰라야 하는 이야기란 게 있다.
-p.190-
아마 정말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을 이야기라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모르는 게 나을 처참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며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그 누군가가 삶의 절벽 끝에 매달려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런 절망적이고 암담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 또한 그 사실을 깨닫는다. 항상 간섭하고 반찬 보내주겠다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귀찮아하고 짜증내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그 속에 담겨있던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말이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바보같이 일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 엄마라는 존재에게는 가능하다는 걸. 자식이라는 존재가 엄마에게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자꾸만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한 걸음 내딛게 만드는 작은 불빛이었다는 걸.
-p.256-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은퇴 인터뷰에서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게 정말 싫었다. 자기가 뭐라도 된 듯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울에 살다 보니 그들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이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배우자를 만나고, 은행 빚 별로없이 아파트를 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은퇴 후 취미를 즐기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중간에 자신 혹은 가족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없어야 하니, 평범한 삶이란 곧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p.227-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인생 길이 옳은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그것은 우리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저머다 각자의 기준으로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돈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지 않고 우리의 인생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먼저 화해하고 방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좀더 사랑하고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403호 여자처럼 암담하고 고통스런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그 상황 때문에 우리는 비틀거리고 주저앉을 지 모른다. 물론 힘들겠지만, 절망적이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면서, 화해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코로나로 힘들어도, 우리 힘을 내서 다시 살아보자. 그렇게 우리 자신과 화해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 '평범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