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포기하지 않는다 - 극한의 동식물에게 배우는 살아갈 용기
이원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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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몇 년 전, 남극에 사는 아델리 펭귄이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뉴질랜드에 우연히 도착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어떻게 그 먼 길을 헤엄쳐 왔을까 궁금해 검색해 보았죠. 알고 보니 펭귄은 뇌를 몇 초씩 나눠 잠드는 마이크로 수면을 취하거나, 좌우 뇌를 번갈아 재우는 반구 수면으로 피로를 푼다고 하더군요. 당시 저는 육아와 회사 일을 병행하며 늘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간도 펭귄처럼 짧은 잠만으로 피로를 씻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이원영 박사의 신작 [자연은 포기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펭귄의 수면 이야기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야생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의 생태적 지혜가, 우리의 삶에 어떤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펭귄, 물범, 북극곰처럼 친숙한 친구들뿐만 아니라 완보동물, 캥거루쥐, 멕시칸테트라 같이 생소하지만 경이로운 생명들을 다룹니다. 특히 생생한 현장 사진은 물론이고,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귀여운 일러스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대목은 바로 남방코끼리물범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와 같은 폐호흡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 번 잠수하면 평균 28.4분 동안 머물며 수심 443m라는 깊이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심해의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는 유연한 신체와 근육 속에 산소를 듬뿍 저장하는 탁월한 능력 덕분에, 그 차갑고 어두운 바다를 누구보다 자유롭게 누비는 것이죠.


사실 저자는 어린 시절 물에 빠졌던 트라우마 때문에 평생 물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고 해요. 하지만 극지에서 펭귄과 물범을 관찰하며 물속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질렀고, 결국 잠수 자격증까지 취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속의 다채로운 생명들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물범이 왜 그토록 깊이 잠수하게 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글 말미에 “한계를 넘어 깊이 잠수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누릴 수 없었을 행복”이라는 문장이 한참 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고 표지에 있는 '극한의 동식물에게 배우는 살아갈 용기'라는 부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때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 때문에 지금의 현실이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물범 이야기를 읽고 나니, 막막한 환경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적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모든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나아가 본다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은 살아가기 어려운 극한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꾸준하고 성실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친 일상을 보내는 분들께 응원의 힘을 담아 이 책을 추천합니다.

한계를 넘어 깊이 잠수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누릴 수 없었을 행복이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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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미술관 - 그림이 먼저 알아차리는 24가지 감정 이야기
김병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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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통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면 작가의 의도나 미술사적 가치, 혹은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를 먼저 찾게 됩니다. 저 역시 다양한 미술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제가 느낀 점이 저자의 해석과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이 감상의 정석이라 믿어왔죠.


하지만 그림을 매개로 나의 내면을 마주하고, 머리가 아닌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제게 무척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개념이었습니다. 호기심을 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원장이 저술한 [나를 만나는 미술관]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허무, 불안, 행복, 애도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24가지 감정을 그림이라는 거울에 비춰줍니다. 책을 읽으며 저 역시 그동안 이름 알아차리지 못했던 제 마음속 감정들을 하나씩 마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서문 대로 이 책은 미술 감상 책이면서 동시에 제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하는 심리 치유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파트는 '무의미'였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이란 분투할 만한 것을 언제나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지난 몇 년간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다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 처음에는 쉼과 여유가 주는 만족감에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대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 삶의 방향과 의미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는 작은 창조적 시도들을 해 보았습니다. 사이버대학교에 편입해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독서모임에서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블로그에는 독후감을 차곡차곡 기록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저는 성취감과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지나온 이 과정들이 바로 무의미에 맞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자는 공허함을 느낀다고 해서 억지로 이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대신 용기를 내어 그 빈자리를 조용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며 품위 있게 무의미에 맞서보라며 응원을 건넵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품위 있는 저항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허무라는 감정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내 삶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 나만의 의미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품위 있는 저항입니다. 


살아가며 때때로 무의미의 파도를 마주하겠지만, 이제 저는 그 파도에 휩쓸리는 대신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찾아올 또 다른 공허함 역시 새로운 나를 발견할 기회로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무의미라는 파트가 가장 큰 감동을 주었지만, 이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는 전혀 다른 페이지에서 멈춰 서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삶의 무게가 무거운 이에게는 '우울' 이란 파트,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이에게는 '사랑'의 파트가 마음에 와닿을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싶거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이 필요한 모든 분께 [나를 만나는 미술관]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안락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분투할 만한 것을 언제나 필요로 하는 존재다.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삶의 조건을 넘어서는 어떤 가치가 필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추구한다. 이 본능이 충족되지 않으면 공허와 허무가 따라온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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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마음 -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
정고요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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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번에 읽은 정고요의 에세이 [산책자의 마음]에는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도망친 곳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니, 참 생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과연 저자는 그곳에서 어떤 기쁨을 발견한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저자는 책의 첫 글인 '실직을 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을 통해 웃음과 깨달음을 동시에 전합니다. 평소 오후 7시에 산책을 하던 저자는 실직 후 오후 5시에 산책을 나서며, 늘 우리에 갇혀 지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개 '흰둥이'가 사실은 주인과 즐겁게 산책하는 '난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과 개의 이름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벌어진 뜻밖의 언어유희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저자가 개에게 "나니(일본어로 '뭐야?')?"라고 묻자, 개가 "뭐! 뭐!"라고 짖은 것이었어요. 


저자는 질문과 대답이 소리도 뜻도 일치하는 이 기막힌 동어반복의 대화를 두고 진짜 세계의 화법이라 부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선입견의 세계에 금이 가고, 비로소 살아 있는 진짜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실직이라는 사건은 삶을 위축시키기 쉽지만, 저자는 그 공백의 시간을 산책으로 채우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과 생각을 발견합니다. 첫 에피소드부터 이렇게 소소한 웃음 뒤에 화두를 던지니, 이후의 산책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치 저자와 함께 강릉의 바다, 공원을 함께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글은 '나무들' 이었습니다. 저자는 강릉의 대도호부관아의 잔디밭을 거닐고 나무들 사이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어디인지 찾아보니 산책하기에 참 좋은 강릉의 명소라고 하네요. 


저자는 이 곳을 산책하며 나무라는 식물을 본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견뎌온 시간의 총합을 보았습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그저 하루를 살아낸 나무가 커다란 한 그루가 되는 것처럼, 우리 삶의 어떤 순간도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내일 나를 기다리는 것이 실패일지라도, 그 실패를 포함한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요.


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저자의 다짐은 거창한 무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성취가 없더라도 묵묵히 하루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겠다는 하나의 약속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저자가 산책을 하며 나무로부터 배운 단단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산책의 미분과 적분'이란 글에서 더욱 확장되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삶일지라도 정말 멋지다고, 그래서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동안 산책을 하며 사유하는 글은 종종 접해왔지만, 강릉의 남대천이나 안목해변처럼 익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유하는 내용의 글은 처음이었는데요. 매년 여름이면 강릉을 찾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년 여름 강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사뭇 달라질 것만 같습니다. 저자가 아끼는 강릉의 여러 장소들을 마치 답사하듯 천천히 거닐며, 저만의 생각을 남겨보고 싶어졌습니다. 


내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건 나무의 모든 나날이 내 앞에 있다는 뜻이다.바람과 햇빛과 빗물과 흙에 소실된 나날까지 합쳐 나무는 지금 내 앞에 있다. 나무 한 그루는 나무의 모든 나날.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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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영혼의 미술관 - 우리가 사랑한 화가들의 삶이 담긴 낯선 그림들
김원형 지음 / 지콜론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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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유명 화가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생각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네의 경우에는 수련, 르누아르의 경우 피아노를 치는 소녀, 드가의 경우 발레무용수 그림처럼요. 


[숨겨진 영혼의 미술관]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화가들의 낯선 그림들을 통해 그들의 예술 여정을 새롭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드가가 무용수를 그리기 전 경마장을 그렸다는 사실과 함께 '시골의 경마장'이란 작품을 소개합니다. 드가는 스냅 사진처럼 자르기 기법을 사용해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시각을 회화에 과감히 도입하였는데요. 기존의 전통 회화에서 볼 수 없던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한 것이었어요. 


'시골의 경마장' 그림을 본 후 드가의 '꽃다발을 든 무용수' 그림이 바로 생각났습니다. '시골의 경마장' 그림에서 경주 장면은 매우 작지만, 마차를 타고 있는 가족은 크고 밀도 있게 그려져 대조를 이루는데요. '꽃다발을 든 무용수' 그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무용수를 전면에 배치하고, 왼쪽 다른 무용수들은 멀리 흐리게 보이지요. 


이렇게 드가가 스냅샷처럼 그림을 그린 방식은 초기 작품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그의 고유한 예술적 시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화가의 숨겨진 걸작이나 초기작들을 소개하며, 그 그림들이 어떻게 화가의 대표작으로 이어지거나 예술적 연결 고리 역할을 했는지를 섬세하게 짚어줍니다. 


하지만 고야의 작품은 드가와는 달리 시간에 따라 굉장히 달라졌습니다. 고야의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작품을 떠올릴텐데요. 저는 그래서 고야의 그림은 모두 당연히 괴기스럽거나 징그러울 것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가 스페인 궁정화가로서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이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아 화사하고 우아함이 가득하고, 왕실의 화려함과 인물들의 내면까지 예리하게 포착한 걸작을 남겼더라고요.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의 삶에 어떤 고난이 있던 것일까 궁금함이 생겼어요. 그리고 고야가 암울하고 괴기스러운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가 청각 상실이라는 개인적인 고난과 스페인 격변기라는 시대적 고통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부 세계의 소리가 차단되자, 그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측면, 광기, 그리고 시대의 부조리에 깊이 침잠하게 된 것이었어요. 


이렇게 이 책은 화가들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명작 뒤에 숨겨진 화가들의 고민, 그리고 그들의 진정한 영혼이 담긴 낯선 그림들을 통해, 미술 감상의 깊이를 한 차원 높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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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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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역사를 인물 중심, 음식, 지리 등 다양한 시선으로 읽어왔지만, 의복이나 패션의 관점으로 역사를 살펴보는 인문학 책은 거의 접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다소미의 [호모 인두투스 입는 인간]을 읽고, 역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좋아하는데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볼 때 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중심 인물만 주목했었어요. 하지만 저자는 패션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순백의 의상을 입고 있는 히파티아가 이 그림에서 가장 돋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드레이핑 기법을 활용해 풍성한 볼륨감을 표현한 그녀의 옷차림을 설명하면서, 오드리 헵번의 “우아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다”라는 말을 인용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챕터를 읽고 다시 그림을 보니, 정말 히파티아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라인과 함께 오로지 그녀만이 흰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 그림을 볼 때 인물만 보았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옷의 색감, 형태, 액세서리 등에는 그 시대의 미적 기준, 기술력, 계급, 세계관이 모두 담겨 있는데도 말이죠.


이렇게 이 책은 익숙한 그림과 인물들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 주었어요. 단순히 패션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사회적 신분, 권력, 기술, 문화적 규범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도구라는 것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풀어냈어요.


그 다음 헨리 8세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초상화를 보고 기존에는 단순히 화려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가 코드피스라는 의상 아이템을 착용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코드피스는 중세 시대 남성의 성기를 보호하는 보호대였는데, 시간이 흐르며 남성성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해요. 이렇게 과장된 아이템을 왜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을까 싶고 어찌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였어요.


이 챕터를 읽으면서 옷은 인간의 욕망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코드피스는 불안정한 결혼 생활, 채워지지 않는 권력욕 같은 것을 오히려 반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고, 그의 삶이 화려한 복식처럼 행복으로 가득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저자는 패션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문학적 통찰을 제공하고, 역사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옷은 단순한 장식품이나 유행의 산물이 아니라, 그 시대 속 인간이 가진 욕망, 사회의 변화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식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역사를 여행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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