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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950년대 초, 빅터 프랭클은 미국의 한 신경정신과 의사 모임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청중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일부는 냉담하기까지 했죠. 그러자 행사를 주최한 인사가 프랭클에게 다가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정말 크나큰 고통을 견디고 그것을 극복했어요.
저들은 그런 경험이 없었죠. 그래서 질투하는 것입니다.
p.11
이 문장을 읽으며 저 역시 빅터 프랭클처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이를 앞에 두고,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경험한 것에 대해 질투를 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악한 본성인 걸까 싶더라고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빅터 프랭클은 오직 그런 역사를 지닌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고통 없는 인생은 없으며, 그 고통은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띤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개인의 고통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불안과 만날 때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언제 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사람들은 평온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가 참가했던 청중토론에서 한 여성은, "원자폭탄의 위협이 있는 한, 자녀들을 낳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것을 두고 오늘날 인간이 단지 미래의 원자폭탄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그것을 곁눈질하면서 살아가는 듯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당시의 사람들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 치열한 경쟁, 경제적 불안 등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무책임하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떠난 뒤의 세상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현재만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쩌면 앞날이 불안할수록 "왜 살아야 하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잠재된 의미를 지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그가 평생을 바쳐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핵심은 바로 이 문장에 담겨 있다 느껴졌어요.
인간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소망은
바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이 처한 모든 삶의 상황에서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에요.
p.67
그리고 삶의 의미는 언젠가 저절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 조금씩 쌓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겪고 있는 고민과 불안, 고통에도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아우슈비츠가 있다는 그의 말처럼, 저마다 고통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무거운 짐을 지고 버텨내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다정한 응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감명 깊게 읽으셨다면, 이번에는 <죽음의 수용소 이후>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