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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 삽니다 - 잃어버린 나를 찾는 빛의 여정
김미영 지음 / 새빛 / 2026년 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소 에세이를 읽다가 제가 아는 책이 언급이 되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어, 나도 저거 읽었는데!' 하며 저자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겨요. 김미영 작가의 [이태원에 삽니다]의 ‘남산도서관에서 다시 만난 하루키’ 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이 등장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역시 대학생 때 [노르웨이의 숲]으로 하루키를 처음 만났습니다. 압도적인 흡입력에 빠져 읽었지만, 그의 책을 덮고 나면 늘 같은 질문이 남았죠. “그래서 결론이 뭐지?” 이후에 읽은 [해변의 카프카], [1Q84]에서도 느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일인칭 단수]를 읽고 “아, 나 또 속았나?”라고 생각했다는 대목에서 동질감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습니다. 동시에 궁금해졌습니다. 저자는 반복되는 모호함 끝에 과연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말이죠.
저자는 하루키의 작품을 통해 오히려 삶의 주체성이라는 답을 찾아냈습니다. 누군가 내려주는 결말을 기다리는 관객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죠.
"작가의 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면 되었다.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았다. 어떤 결말을 선택하든 내 마음이었다. 답은 내가 찾고 내가 쓰면 되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길을 믿고 앞을 향해 나아가 나만의 서사를 완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걷다 보면, 때로는 그 책임감의 무게에 마음이 짓눌리는 날도 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저자가 건네는 또 다른 이야기인 '루프탑 카페에서'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고단함을 털어놓던 친구의 이야기를 멈추게 한 건 어떤 조언이 아니라 도시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노을이었다는 순간을 묘사한 이야기인데요. 그 순간만큼은 무거운 삶의 주제가 일몰 속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편을 읽으며 이태원의 루프탑 카페의 풍경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복잡한 건물 너머, 붉게 번지는 일몰을 바라보면, 머릿속 소음도 고요하게 가라앉을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잠시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여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다시 삶을 견딜 힘을 건네주니까요.
에세이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문장이 마음을 톡 건드리는 순간 말입니다. 주체적인 나로 우뚝 서야 한다는 단단한 다짐, 하지만 때로 힘이 들 때면 여유를 가져도 좋다는 따뜻한 위로. [이태원에 삽니다]는 제게 이 두 가지 삶의 태도를 다시금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책을 덮고 자연스레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참사 이후 개인적으로 한동안 가지 않은 곳인데요. 하지만 저자는 바로 그 아픔 때문에 이태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이곳을 치유와 위로, 회복과 쉼, 꿈과 성장 그리고 존중과 사랑이 흐르는 공간으로 바라봐 달라는 저자의 진심 어린 문장이 기억에 납니다.
언젠가 책에 나온 이태원의 향수 가게와 작은 서점, 그리고 노을이 내려앉는 루프탑 카페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저만의 이태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면 되었다.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치 않았다. 어떤 결말을 선택하든 내 마음이었다. 답은 내가 찾고 내가 쓰면 되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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