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의견에 권위와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 통계나 연구 결과를 인용합니다. 그러나 인용된 내용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실험 설계나 결과 해석에 특정한 목적과 편향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이번에 읽은 [자연스럽다는 말]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익히 알려진 할로 박사의 침팬지 실험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새끼 침팬지가 먹이를 주는 철사 인형 대신 먹이는 없지만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천 인형을 선택했다는 실험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자 존 볼비는 이 결과를 두고 어린이에게는 천 인형이 상징하는 부드럽고 따뜻한 스킨십이 필수적이며, 이는 생물학적 어머니만이 제공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저 또한 이 해석을 의심 없이 진실로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할로의 실험 조건 중 어디에도 '생물학적 어머니'를 가리키는 요소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천 인형은 실제로는 친밀감을 느끼고 오랜 유대 관계를 줄 수 있는 누구라도 상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통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것이 사실은 편향된 해석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의 이론을 아무런 의심 없이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후 할로 박사는 연구를 지속하였고, 엄마(혹은 주 양육자)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친구이며, 이 두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하고 진일보한 후속 연구 및 해석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여전히 존 볼비의 편향된 해석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과학적 주장의 이면에 있는 편향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책 [자연스럽다는 말]은 기존에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던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주문합니다. 저자는 자연스럽다는 말 속의 자연스러움이 과연 무엇인지, 여자라서 그렇다, 남자라서 그렇다, 사람의 본성이라 그렇다 등 우리가 쉽게 입에 올리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저자는 자연, 인간, 사회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그 선입견이 만들어낸 사회적 통념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왔는지를 예리하게 밝혀줍니다. 덕분에 읽는 내내 머릿속이 환기되는 느낌이었고,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준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주장 앞에서 조금 더 의심하고 스스로 질문하는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 - 그랜드 투어, 세상을 배우는 법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쌤앤파커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전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삶의 지혜, 본질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자꾸만 고전을 보게 되는데요. 18세기 영국의 체스터필드 백작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고전 [체스터필드 경의 편지]를 새로 전문 번역한 [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를 읽으며, 또 한 번 고전의 변치 않는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역시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부모로서 그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구나, 나도 언젠가 아이에게 이런 조언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체스터필드 백작은 사생아인 아들 필립 스탠호프를 훌륭한 신사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랜드 투어라는 해외 유학 기회를 아들에게 주었고, 유학 기간 내내 많은 편지를 보내며 인생의 금과옥조가 될 만한 조언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이 많아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내용을 곱씹어 볼 정도로 그의 조언은 지금의 저에게도 매우 유용하였습니다.   


그의 편지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아 메모해 둔 문장 일부를 공유해 봅니다.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만 전념하고 다른 일을 동시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공부도 못하고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 


멀티태스킹이 대세인 시대지만,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하나의 우물을 깊게 파는 집중력이 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보면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쉬운 요즘 시대, 아이에게도, 제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일에 대하여]

'함께 어울리는 사람'과 '친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가볍게 어울리는 관계와 진정한 우정을 명확히 구분하라는 날카로운 조언입니다. 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곁을 지켜줄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워야겠지요.


[복잡한 인간의 유형과 우정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아는 척하며 도움을 주겠다고 끼어드는 사람을 조심해라.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네게 접근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이용하려는 유형은 똑같다는 사실에 씁쓸하면서도, 그의 현실적인 조언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사랑하는 아들에게"로 시작했던 편지가,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친애하는 벗에게"로 바뀐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 다정한 문구 하나에서 아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인색했던 시기였을 텐데, 그는 편지를 통해 따뜻한 사랑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부모의 자식 간의 사랑,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감이 얼마나 큰 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어린 시절에 읽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신중하고 세련되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지금 읽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지금 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조언들도 많이 있었고, 오히려 세상의 풍파를 적당히 맞은 중년에 읽으니 제 마음이 그의 조언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가치를 물려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로서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 세상에 내보내야 할지, 물질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태도와 지혜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찾는 모든 분들께 [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고령사회 사람들
황교진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요양병원과 요양 시설이 어떻게 다른지, 개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요양원과 같은 요양 시설에는 의사가 없고, 요양병원에는 요양보호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충격을 받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국민건강보험 이렇게 사회보험이 분리가 되어 있다 보니 노인들을 위한 돌봄과 의료 역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에게 의료가 필요하더라도 장기요양등급 혜택을 받으려면 요양 시설에 입소해야 하는데 이 경우 위중한 상황이 발생하면 병원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가서 따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 장기요양등급 혜택을 포기하고, 요양병원에 가서 비싼 간병비를 지불하고 입원을 해야 한다.  


요양 시설에 갈 것인지, 요양병원에 갈 것인지 선택은 결국 환자의 보호자가 경제적 부담을 얼마큼 오랫동안 질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기에 요양병원, 요양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 선택의 기준이 보호자가 부담할 수 있는 비용의 상한선이란 사실이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 


저자는 이에 더해 미국,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병원, 기업, 지역사회, 정부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하며 노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였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빌 토마스 의사가 창시한 개념인 에덴 얼터너비트 10원칙이었다. 노인 세대 고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로움, 무력감, 지루함이 없도록 노인 중심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노인들이 온전한 정신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동식물을 키우며 사랑의 교제를 통해 외로움을 해독해야 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책을 읽으며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보았던 돌봄 로봇 영상이 생각이 났다. 광주광역시에서 돌봄 로봇 광산이를 노인들에게 지급했는데 노인들에게 식사와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고 치매 예방을 위한 퀴즈 서비스도 해준다고 한다. 자식보다 낫다며 로봇과 교감을 통해 만족해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노년 시기의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가장 큰 숙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첨단 기술이 의료와 돌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분명히 기여할 수 있지만, 에덴 얼터너티브의 원칙처럼, 결국 노년의 삶을 의미 있게 채우는 것은 외로움, 무력감, 지루함을 해독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한국도 단순히 시설을 늘리거나 비용 문제를 논하는 것을 넘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시선과 시스템을 혁신하고 연대를 확대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랑 도서관 가는 날 - 이야기로 배우는 도서관의 모든 것
박은주 지음 / 시대인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이하고 도서관을 자주 가는 편입니다. 가서 학습 만화책만 보고 와도 좋고, 간 김에 아주 얇은 동화책, 영어책 한 권이라도 읽고 오면 더 좋거든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도서관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고, 도서관의 각종 문화 행사, 독서회 등에 참여하며 도서관을 친숙하게 여기다 보면, 나이가 더 들어도 책을 항상 곁에 두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요.

검색은 잘 하는데, 책을 못 찾는 아이의 고민

도서관을 가며 살펴보니, 제 아이는 컴퓨터로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도서 위치 검색 결과지까지 출력하는 것은 능숙하게 하는데요. 하지만 막상 청구기호를 보고 수많은 책꽂이 사이에서 책을 찾아오는 것은 어려워하더라고요. 한두 번 찾아보다가 못 찾겠다며 제 도움을 항상 요청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 도서관에서 책 찾는 법을 익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어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마침 책 속 주인공인 하은이도 저희 아이와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더라고요. 검색은 잘하지만, 실제 서가에서 책을 찾지 못하는 하은이의 모습에 아이는 "나랑 똑같다!"라며 동질감을 느끼고 책에 더욱 흥미를 보였습니다.

저도 함께 책을 보면서, 초등학생들이 도서관 이용 시 실제 어떤 부분에서 막히는지를 저자가 정말 잘 파악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 덕분에 아이가 책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어요.

도서 선택 능력까지 키워주는 실용적인 내용

이 책이 정말 유익했던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방법' 파트였어요. 아이가 평소 신간이 꽂힌 서가 옆에 앉아 신간 위주로 책을 꺼내 보는 편인데요. 책을 통해 십진분류표를 보고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의 파트로 직접 가서 그림이나 제목을 보며 책을 고른다거나, 사서 선생님에게 추천을 받는다거나, 어린이 추천 도서 목록을 직접 검색해 보게 하는 등 자세한 방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책을 찾으며 독서의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면 앞으로 자기 주도적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아이와 도서관에 가서 검색 결과지를 보고 함께 책을 찾아보기, 혼자 찾아보기를 경험해 보고 누가 먼저 찾아올 수 있는지 내기 등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추천해 주는 책 외에도 스스로 가서 골라오는 책의 비중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장려해야겠다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이런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엄마랑 도서관 가는 날]은 아이의 독서 자립을 한 걸음 앞당겨주는 실용적인 안내서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녀의 도서관 활용 능력을 키워주고 싶은 부모님. 도서관 이용을 시작하는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들께 책을 추천드립니다. 자녀와 도서관을 자주 방문하여, 독서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것 외에도 정보 검색 능력, 자기 주도성까지 키워보시기 바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
이누준 지음, 이은혜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종점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을 간절히 바라면 기차의 종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설정이 흥미로워 읽게 되었습니다. 총 네 편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각 이야기 속 인물들이 다음 편에서도 살짝 등장하며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하나의 실타래처럼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남편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이야기: 명탐정에게 보내는 도전장]의 루게릭병에 걸린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가장 깊이 와닿았습니다. 어느 가족에게나 실제로 생길 법한 상황이라 더욱 몰입이 되었고, 남편과 나의 노후, 미래의 이별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라 가슴이 아렸습니다.


겨우 50세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남편 도모키. 발병 후 2~5년 이내에 죽는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부부는 요양원 대신 집에서 지내는 것을 택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불편해진 남편은 아내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요양원에 가겠다는 뜻을 편지를 통해 밝힙니다. 그러나 남편을 요양원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아내의 마음 역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되었죠.


결국 둘은 대화를 통해, 다가오는 밤을 기다리며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로 결심하며 요양원 대신 집에서 더 지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편지를 쓸 힘이 없어진 남편은, 아내를 위해 마당에 심을 씨앗을 집 안 곳곳에 추리게임처럼 숨겨둡니다. 아내는 그 씨앗을 찾아 심으며 마당을 작은 희망의 정원처럼 풍성하고 아름답게 꾸밉니다. 마치 아프기 전 그들의 일상처럼요. 


이렇게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깊은 마음 씀씀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사랑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남편의 마지막이 가까워지고, 부부는 기차의 종점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본인이 곧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담담히 알리는 남편과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흐느끼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오열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그동안 참 행복했다며 감사를 표합니다. 비록 남편은 떠나지만, 남편이 선물한 기적과도 같은 그 순간을 기억하며, 아내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매일의 기적을 발견하다


이 책을 읽고, 지금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기적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형제들과 대화하고 식사하고 일상을 보내고 때때로 여행을 가며 보내는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요. 


네 번째 이야기 속 아내 가즈미는 더 아끼고 사랑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곳에 함께 가고, 더 다정하게 대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습니다. 아쉬움이 없도록, 앞으로 더 행복해지도록, 가족들에게 더욱 표현을 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