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조민기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다. 영화사를 거쳐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중 회사 홍보기사로 작성한 ‘광고쟁이의 상상력으로 고전 읽기’ 시리즈가 호응을 얻으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세계일보〉에 칼럼 ‘꽃미남 중독’을 인기리에 연재하였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절대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이던 중 권력이 잉태되어 탄생하는 과정의 놀라운 기록들을 발견하였다. 절대자와 권력자의 자취를 따라가 실록의 행간에서 찾아낸 흥미진진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 임금 잔혹사』와 『조선의 2인자들(2016)』을 발간하였다.
그 외 저서로는 『외조 : 성공한 여성을 만든 남자의 비결』과 영화소설 『봄』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역사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치와 의미를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문역사 강연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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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서
조선을 풍미했던 2인자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가장 놀란 것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인맥'이었다. 왕에게 바른말한 것을 가문의 영광처럼 기록해놓은 인물들이 사실 왕실과 얼마나 긴밀한 친인척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학연, 지연, 혈연에 이어 혼인으로 맺어진 뜻밖의 '관계'를 발견할 때면 마치 X파일을 엿본 것 같은 흥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 이는 만국과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바른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간신배가 더 잘 살아가도 더 오래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간신배들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관계'이다. 누구를 내 편으로 만들고 누구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지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더 중점을 두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 해야 하는 지보다 누구와 함께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오랫동안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사회 경험이 많아질수록 내가 잘하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고 있냐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늘어만 간다. 어쩌면 그것이 사회의 본질이고 소속, 관계는 능력을 앞서는 것일 수도 있다.
종이 한 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과 같이 나 혼자 할 수 없던 일이 사람이 많아지면 그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고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채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부족한 부분은 나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완하면 내가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간신배, 그리고 책에 나온 2인자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부족함을 나의 힘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완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목차
1장. 역성혁명 - 건국 편
이성계, 고려의 2인자에서 조선의 건국 시조가 되다
ㆍ 토막상식 ① 고려 최후의 권신, 이인임은 누구인가?
정도전, 성공한 혁명가와 실패한 정치가의 두 얼굴
ㆍ 토막상식 ② 고려 청춘 지식인들의 핫이슈,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2장. 왕권과 신권 - 창업 편
이방원, 버림받은 왕자에서 조선의 창업 군주가 되다
하륜, 탁월한 처세를 보여준 성공한 경세가
부록. 고려 제국 흥망사
3장. 종친과 외척 - 욕망 편
수양대군, 왕위를 찬탈한 야심가
ㆍ 토막상식 ③ 정규직 관리가 되는 법, ‘과거시험’ 제1탄
한명회, 척신정치의 원형을 만든 세도가
ㆍ 토막상식 ④ 간신의 대명사 유자광과 사림의 종주 김종직의 악연
4장. 태평성대의 그림자 - 권력 편
임사홍, 조선을 뒤흔든 절대 간신의 진짜 얼굴
ㆍ 토막상식 ⑤ 훈구 세력의 시작, 공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김안로, 잔인한 숙청으로 권력을 장악한 권신
ㆍ 토막상식 ⑥ 조선 왕실 풍수 비화 - 세종 왕릉 이야기
5장. 권력의 이동 - 당쟁 편
이준경, 혼군의 시대를 이끌며 당쟁을 예측한 명신
ㆍ 토막상식 ⑦ 조선의 4대 사화
송익필, 당쟁의 역사를 만든 산림의 종주
ㆍ 토막상식 ⑧ 정규직 관리가 되는 법, ‘과거시험’ 제2탄
ㆍ 토막상식 ⑨ 재야의 선비는 어떻게 정치의 중심이 되었는가?
책 속에서
1장 역성혁명 - 건국 편
이성계, 고려의 2인자에서 조선의 건국 시조가 되다
마흔을 앞둔 이성계는 정치가로서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 줄,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를 만난다. 몰락한 권문세족 출신의 두 번째 아내 강씨다. 22p
가문은 충혜왕의 총애를 받으며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린 집안이었다. 특히 강씨의 숙부 강윤충은 대단한 미남으로 여인들로부터 유혹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충혜왕의 주색잡기를 성심성의껏 보좌해 총애를 누렸다.
충혜왕이 폐위된 뒤 그의 심복들 대부분은 숙청되었다. 반면 강윤충은 오히려 더 큰 권세를 얻었다. 원나라 황족 출신의 '대비' 덕녕공주(충혜왕의 제1왕비)가 그를 총애했기 때문이다. 23p
》 나는 이에 대해 공부를 한 사람이기에 강윤충이 정말 주색잡기를 성심성의껏 보좌해 충혜왕의 총애를 받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도 능력이다. 다른 것보다 출중한 인물로 주색잡기를 잘 보좌하는 것도 기술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이 된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것으로 내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무기가 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
당시 고려는 처첩의 차별이 심하지 않았고 일부다처제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정식 혼례를 올리면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정실부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즉 강씨는 이성계의 첩이 아닌 두 번째 정실부인이었다. 25p
》 우리가 고려사에 대해서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고려사를 이야기를 들으며 그 문화나 풍습이 조선과 비슷하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려나 그 이전 국가들보다 조선의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고 TV의 드라마와 각종 책들이 조선 사회 위주의 것들이 많다 보니 마치 조선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조선 이전 국가들의 모습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하지만 조선 이전의 국가들의 이념, 사상, 관습, 문화 등은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생각해야 한다. 수백년동안 이어져온 그 국가들의 문화는 그 나라마다의 특성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유교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조선보다 훨씬 더 남녀 평등 사회였다. 사상이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다.
우왕의 시대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왜구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우왕 때에만 왜구의 침입이 무려 378회에 이른다. 26p
》 확 그냥, 막 그냥
이성계가 가문이나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은 정도전에게 기회였다. 두 사람은 이내 의기투합하였다. 이성계는 인지도와 실력을 갖추었으나 여전히 노련한 정치가가 아니었고, 정도전에게는 이성계의 부족함을 채워줄 만한 풍부한 지략이 있었다. 28p
》 이성계의 인지도와 실력 + 정도전의 지략, 그렇게 둘에게는 서로가 보완해 줄 것이 있었다. 그래서 둘은 함께하고 싶어 했고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이성계가 가문이나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다. 이런 마인드가 없었다면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둘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선 어떤 점이 필요한지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해 줄 사람을 찾았다. 그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지 + 사회의 필요 항목을 정확히 파악하였기에 파트너를 만났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
이성계 건국 대업의 원동력은 그의 인품때문이었다
이성계의 일생은 그 자체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혁명과도 같았다. 원나라에서 내려준 벼슬을 받아 동북면의 지방호족으로 지내왔던 이성계의 가문은 오랑캐라 불리는 여진족과도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성계는 국적과 혈통에 대한 놀란거리가 다분한, 건국 시조의 신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변방의 촌뜨기라 놀림 받던 이성계는 가문이나 배경의 도움 없이 능력을 통해 고려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워나갔고, 마침내 조선의 건국 시조가 되었다. 도대체 그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장군으로서 이성계는 카리스마와 온화함을 지닌 뛰어난 리더였다. 이성계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병사들은 한마음으로 그를 따랐다. 정치가로서 이성계는 드물게 추문이 없고 사생활도 깨끗했다. 권모술수와 암투가 끊이지 않는 조정에서는 이런 모범생다운 모습이 단점이었지만 이성계의 인품에 매료된 사람들도 생겨났다. 정치적으로는 '비주류'에 속했으나 개혁을 주장했던 신진사대부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성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품을 줄 알았고, 머릿속에 원대한 개혁의 구상만 담아온 낙오자 몰골의 정도전을 받아주었다. 43p
정도전, 성공한 혁명가와 실패한 정치가의 두 얼굴
정도전의 목표는 정계 복귀가 아닌 역성혁명이었다. 그는 새 나라를 구상하였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결국 정도전의 혁명은 성공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올랐고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임명되었다. 마침내 인생의 절정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자의 자리를 빼앗기고 권력에서 밀려나 복수의 칼날을 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52p
》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나라의 과업을 이룬 정도전, 그는 이방원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역사서에는 폄하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분명 혁명가였지만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역사는 그리고 인생은 좋은 일만으로 계속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면 자신의 목적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목표가 달성되어도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로또가 당첨되고 거지가 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조선 건국 후 권력을 손에 넣은 정도전은 자신과 대립했던 이들에게 철저하게 보복했다. 그는 역성혁명에 동참하지 않은 고려의 신하 56명에 대해 극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정도전이 반드시 제거하고자 했던 인물은 이색과 우현보였다. 이색은 정도전의 스승이자 일흔을 바로 보는 노인이었고, 우현보는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되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그 시신을 수습한 인물이기도 했다. 62p
》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 대업을 달성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그 어떤 것도 제거하려 했다. 비록 그 사람이 자신을 만든 스승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서 자신이 가능 방행에 문제가 된다면 제거하고자 한다. 정도전뿐만이 아닌 수많은 역사 속의 사람들이 그래왔다.
2장. 왕권과 신권 - 창업 편
이방원, 버림받은 왕자에서 조선의 창업 군주가 되다
이방원은 백주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다리 위에서 조선 건국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를 때려죽였다. 덕분에 조선의 건국은 수월해졌으나 이성계는 민심을 잃었고, 이방원은 이성계의 사랑을 잃었다. 그 결과 조선 건국 뒤 이방원은 천덕꾸러기로 전략하여 세자는커녕 개국공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러부터 7년 뒤인 1398년, 이방원은 와신상담 끝에 정도전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고 1400년, 마침내 조선의 제3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80p
》 그렇게 이방원은 자신의 아버지가 친애하던 두 사람을 죽이고 동생마저도 죽였다. 하지만 그는 왕이 되었다.
거동이 어려워진 이성계는 병석에 누웠다. 그러자 정도전은 세자 이방석을 제외한 다른 왕자들이 이성계를 만날 수 없게 막았다. 병문안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도를 넘어선 정도전의 행동에 왕자들과 종친들은 분노했다.
8월 26일, 이방원은 음밀하고 과감하게 군사를 일으켰다. 병력은 소수였고 아내 민씨가 빼돌린 무기들은 턱없이 부족했으나 대부분의 종친들과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 이방원의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을 비롯한 '가족'들이 이방원에게 협력하였다. 무기가 없는 사람은 나무 몽둥이를 손에 들었다. 이들과 함께 이방원은 정도전이 있는, 남은의 첩이 사는 집에 들이닥쳤다. 술을 마시고 있던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은 무방비 상태로 죽음을 맞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도전을 제거한 이방원은 이성계가 있는 경복궁으로 향했다. 이때 이숙번과 그의 군사 300명은 경복궁 주변을 에워싼 채 이방원의 '거사'를 도왔다. 98p
》 정도전은 자신이 넘어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런 결과는 굳이 이방원이 아니었어도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권력을 쥐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유지하려면 희생이 필요하고 때론 그 희생이 자신이 되기도 한다.
하륜, 탁월한 처세를 보여준 성공한 경세가
하륜은 이방원이 즉위한 뒤 16년 동안 영의정을 네 번 역임하였고 천수를 누리며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관리로서 이는 정몽주도, 정도전도 이루지 못한 윤택하고 안정된 삶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하륜처럼'이라는 말이 나왔다. 태종 16년 11월, 하륜이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방원은 눈물을 흘리며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7일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하륜의 가족에게 술을 내려 위로했다. 실로 아름다운, 한 나라의 정승 다운 죽음이었다.
하륜이 성공한 관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신하'의 본분을 지키며 순종적인 자세로 군주에게 충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만한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이 제거한 임금이었지만 하륜만큼은 끝까지 곁에 두며 신뢰하였다. 105p
개혁을 주장한 정몽주, 혁명을 구상한 정도전과 달리 하륜은 '명분'을 위해 목숨을 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기득권 세력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으며 희생하기 보다 시대와 상황에 순응하며 그 속에서 재능을 발휘하고자 했다. 106p
》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되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시대와 상황에 순응하며 살면 길게 살 수 있다.
태종은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한 뒤 신하들의 태도를 살펴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가차 없이 처단했다. 친족이라 할지라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선위파동을 통해 숙청된 인물 중에는 태종의 처남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륜은 네 차례에 걸친 선위파동에서도 살아남았다. 권력을 얻고도 태종의 곁을 이토록 오랫동안 지킨 인물은 극히 드물었다. 121p
책을 읽고
》 자자의 이야기가 많은 역사 책이다. 정형화된 역사 책에서는 벗어나 사건을 나열하면서도 그 안에 저자의 생각과 해석이 많이 들어있다. 물론 역사서 안에서 저자의 생각을 대입시킨다는 것은 객관성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는 저자는 참 주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 역사 속의 권력을 쥐었던 인물을 관계순으로 보며 그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저자의 생각 그리고 각 인물들의 관계를 얘기하며 현재 시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이 책을 읽으며 현재에 적용할만한 내용도 정말 많이 나오고 배울 점도 많이 나온다. 권력을 쥐는 단계에서 권력을 놓는 과정까지의 일련의 모습을 현재 사회의 나의 사회생활에 참조할만한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이 책의 다른 좋은 점은 일단 재미있다는 것이다.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힌다. 큰 어려움 없이 쉽게 술술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나의 경우 역사서는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 권 읽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편인데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서 빨리 읽을 수 있다. 문체서부터 전달 방식까지 세련되었고 잘 읽히도록 쓰여있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지 정말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