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권력자들 -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만들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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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조선시대 권력자들의 민낯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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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권력자들이란?

조민기 작가의 4년 전 책, 조선의 2인자들을 읽고 바로 읽으니 더 좋았다. 뭔가 1부와 2부를 읽는 느낌이랄까?

단지 조금 다른 것은 '조선의 2인자들'은 권력의 중앙에서는 조금 벗어난 2인자들의 이야기였다면, '조선의 권력자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조선의 권력자들'이 좀 더 흥미진진하기는 하다. 두 책 모두 풀어가는 방법이 재미있고 사건들의 설명과 저자의 개인적인 주석이 참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읽는 동안 소설을 읽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도 재미있다.

조민기

저자 : 조민기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다. 영화사를 거쳐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중 회사 홍보기사로 작성한 ‘광고쟁이의 상상력으로 고전 읽기’ 시리즈가 호응을 얻으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세계일보〉에 칼럼 ‘꽃미남 중독’을 인기리에 연재하였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절대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이던 중 권력이 잉태되어 탄생하는 과정의 놀라운 기록들을 발견하였다. 절대자와 권력자의 자취를 따라가 실록의 행간에서 찾아낸 흥미진진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에 매료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의 2인자들(2016, 2020)』을 발간하였고, 4년 만에 후속작인 『조선의 권력자들』을 내놓게 되었다.

그 외 저서로는 『조선 임금 잔혹사』와 『외조 : 성공한 여성을 만든 남자의 비결』, 영화소설 『봄』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역사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치와 의미를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문 역사 강연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예스24 제공]

목차

1장. 간신의 등장 - 전쟁과 평화 편

이이첨, 권력과 명예를 함께 얻고자 했던 간신

2월 24일, 이이첨과 정인홍은 유배에서 풀려나 조정으로 복귀해 각각 병조정랑과 대사헌에 임명됐다. 사법권 병권의 실무를 맡은 이들은 곧바로 영의정 유영경을 탄핵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실세 중의 실세였던 유영경은 유배당하는 신세가 됐다. 오직 선조의 총애에 기대어 노골적으로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대신의 최후였다. 23p

허균

허균은 동인 명문가 출신으로 그의 부친인 허엽은 동인의 중진이었고, 이복매형 우성전은 유성룡과 함께 남인의 수장이었으며, 율곡 이이를 탄핵했던 허성이 그의 친형이었다. 또한 열일곱에 초시에 합격하고 스물한 살에 생원시에 합격한 허규는 선조 27년(1594년) 정시 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해 승문원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수재로 인맥과 능력이 출중했다.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던 허균이 어째서 이이첨의 행동대장이 되기를 자처한 것일까?

허균은 학문과 재주가 빼어났지만, 서얼이나 천민과도 교류하고 부임지에 기생을 대동하는 등 거침없는 행동으로 자주 탄핵을 받았고, 구설ㄹ수와 비난을 달고 살았다. 광해군2년(1610년)에는 시험 감독관이 됐는데, 이때 그의 조카와 조카사위가 동시에 급제하자 탄핵을 받아 유배됐다. 그러나 유배지에서도 반성하기는커녕 신분과 상관없이 여러 사람과 어울렸고, 이때 계축옥사와 관련된 서자들과 깊은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이 시기 허균이 소일거리 삼아 집필한 것이 바로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계축옥사가 일어나 자신과 친분 깊던 서자들이 줄줄이 역모죄로 처형당하자 허균은 '만약 나 또한 서자였다면 억울하게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권력이 필요했다. 권력이 있으면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 수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제거할 수도 있지 않은가. 35p

파병 문제부터 강홍립의 처벌 문제까지 광해군과 이이첨은 처음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광해군은 폐모에 찬성한 이이첨이 사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냉ㅈ어하게 바라보았다. 이에 광해군의 심임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이이첨은 재빨리 소북과 손을 잡았다. 그토록 강경하게 지켜온 정치 노선을 하루아침에 바꾼 것이다. 42p

김자점, 나라와 조정과 임금을 농락한 희대의 간신

인조14년(1636년) 1월 30일, 인조는 신하를 의미하는 푸른색 융복을 입고 남한산성을 나왔다. 청나라의 요구대로 삼전도까지 두발로 걸어간 이조는 홍타이지 앞에서 세 번 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삼배구도구례의 예를 올리며 항복했다. 굴욕적인 항복의식을 마친 인조는 한양으로 돌아왔고, 인질이 되기를 자처한 소현세자는 청나라 진영에 구금됐다. 2월 5일, 소현세자 부부와 봉림대군 그리고 조선인 포로 수십만 명이 조선을 떠나 심양으로 향했다. 이를 병자호란이라 한다. 70p

우리 조상은 대대로 서울에 살아 글과 벼슬로 가업을 삼았다. 그러다가 우리 방조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매 내게 11조 되시는 어른이 처자를 끌고 서울을 도망해 일시 고향에 망명하시더니 그곳도 서울에 가까워 안전하지 못하므로 해주 부중에서 서쪽으로 80리 백운방 텃골 방봉산 양가봉 밑에 숨을 자리를 구하시게 됐다. (중략) 그때 우리 집이 멸문지화를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그것은 양반의 행색을 감추고 상놈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 〈백범일지〉 中 82p

2장. 산림 정승 - 사대부의 부활 편

송시열, 사대부의 나라를 재건한 산림 정승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송시열이다. 무려 3천 번이 넘게 거론됐다. 그는 여든세 살까지 장수하면서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네 명의 임금을 섬겼고, 격렬한 논쟁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송시열의 이름이 그토록 많이 거론된 이유는 그가 열렬한 팬덤을 거느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이돌로서 조정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임금으로부터 총 167번의 부름을 받았는데 그중 무려 130번을 거절했다. 90p

효종은 즉위 후 송시열을 파격적으로 단번에 종3품 장령에 제수됐지만, 김자점이 영의정의 자리에 있다는 것에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93p

송시열은 유배지에서 가르침을 청하며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신분의 차별 없이 받아들였다. 함경도와 거제도 같은 오지의 ㅣ백성들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정성을 다해 공자와 맹자, 주자의 가르침과 예학, 나아가 인간의 도리를 알려주는 송시열에게 감동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송시열은 예법을 짜지는 꼬장꼬장한 학자가 아니라 백성을 마치 손자 보듯 바라보는 다정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유배지에서조차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으며 독서와 저술에 힘쓰는 모습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심지어 송시열은 여성을 하대하는 것이 당연했던 유교 사회에서 딸과 며느리에게도 차별 없이 가르침을 펼쳤다. 이는 정치가 송시열이 아닌 인간 송시열의 모습이었다. 125p

노론이 정권을 잃은 데다가 죄인의 신분으로 맞은 죽음이었으나, 송시열의 장례식에는 많ㅇ느 사람이 모였다. 송시열은 학자로서 또 인간으로서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그의 제자는 900여 명에 달했다. 133p

책을 읽고서

이전 '조선의 2인자들'과 구성이나 묘사 방식들은 정말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인물 선정이다. 이렇게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조선의 권력자들'이 더 재미있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파란만장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두 책 모두 다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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