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중에서"

안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 ~ 1985)
1894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안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 ~ 1985)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매료되었다. 어렸을 때 케르테스는 자기 집 다락에서 사진 설명서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걸 보고 그는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임종 후 그는 처음에는 상업 학교에 다니다가 그 이후에는 양아버지를 따라 부다페스트의 주식시장에서 일하게 된다. 틈틈이 35mm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헝가리의 한가로운 풍경을 담은 스냅형식의 사진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kertesz_wandering_violinist]

[kertesz_white_horse]

[kertesz_feeding_the_ducks]
본격적으로 전업 사진가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 파리에 도착해서 이다. 그는 파리로 이주해 살게 되는데 생계를 잇기 위해 25달러에 사진들을 판다.

그래도 적성에 맞지 않은 은행일 보다는 차라리 훨씬 더 나은 것이 였다.

그는 차차 초상사진가, 보도사진가의 명성을 얻으며 Frankfurter Illustrierte (프랑크푸르터 일루스트리르테)지, the Berliner Illustrinte (베를리너일루스트리테)지, the Nationale de Fiorenza (나시오날 드 피오렌자), Sourire (수리르)지, Uhu and Times(우후 앤 타임즈)지 등 프랑스, 독일, 영국,의 잡지들을 위해 일하게 된다.
파리 시절 (1925-1936) 케르테스는 그의 고향인 부다페스트에서와 같이 파리 시내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는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그가 자주 방문하던 곳을 스냅 사진 형식으로 담는다. 이러한 사진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르포르따쥬 사진 수법으로 후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사진과 많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The Dancing Faun, 1919]
이 시기에는 특히 아방가르드(전위작가)의

영향을 받아 35미리 라이카(Leica) 소형 카메라로

뒤틀린 누드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이

초 현실적 이고, 구성주의 적인 요소로 가득찬

좀 더 복잡한 현대적경향을 가진 것 들이다.

[Satiric Dancer, 1926]
1927년 몽파르나스에 있는 “성스런 봄”이라는 이름의 작은 화랑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통해서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들처럼 저널리즘의 입장에서 사진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진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진가 들은 잡지의 일정한 편집의 방향에 맞게 제작하는 스타일이라면 케르테츠는 이와는 좀 다르게 자신의 주관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주관주의 경향의 사진들은 1950년에 와서 TV 출현으로 인한 그래픽 저널리즘의 급격한 쇠퇴 이후에나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케르테츠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저리도 우연적인 만남이 필연처럼 느껴질까 하는 것이다. 사진은 현실의 단면을 잡아낸다는 점에서 파편적이지만 그의 사진들은 현실의 단면이 마치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것은 파편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의 화면에 자리잡은 온전한 세상이 된다.

그의 개인전이 있었던 이듬해 5월에는 나다르와 아트제의 회고전을 개최중이던 사진 독립 살롱전에 베르니스 애보트, 만레이, 폴 아우터브리지 등 초현실주의 경향의 사진가들 과 함께 그룹전에 참가한다. 이 때에 출품한 작품 중 [포크]는 그 관심의 집중이 대단하였는데, [르뷔 에브도마데르]지에 의하면 전시회를 통틀어서 유일한 순수예술작품이라 평하면서 “누구든 접시하나와 포크하나만 있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치만 케르테츠가 이미 이것을 해버렸다”라고 말했다.
케르테츠는 이 사진이 텍스트를 덧붙여서 식기 광고 이미지로 쓰일 수도 있었던 양면성을 지녔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즉 그의 [포크]는 예술과 상업성이라는 이중의 생명력을 띠고 있었다. 일정한 형태로 과장된 손잡이의 선과, 부리 끝의 굽은 모양새를 정확히 보여주는 이 사진은 세심하게 구성된 기록물이면서도 놀랄만한 심미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케르테즈는 포크 이미지처럼 수수한 이미지들을 멋지게 기록하는 저력으로 이력을 쌓아나갔다. 그는 특히 라이카 카메라로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스냅형식의 사진들은 한결 자연스러운 면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전적으로 스냅형식의 우연한 산물은 아니었다. 거울면에 반사된 누드distortion(왜곡) 시리즈 작품들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 사진들은 상을 일그러지게 하는 거울 속에 투영된 이미지들을 잡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지의 이미지이다. 케르테츠는 거울 앞에 알몸의 여체를, 장딴지와 무릎은 부풀어오르고 불확실하게 나타나지만, 그 나머지 부분과 특히 손은 정상적으로 보이게 배치했다. 결국 사진 전체의 통일된 형태는 사실상 기호들의 복합체로 드러나고 있다. 즉 그 형태는 신체 어느 부위의 기표로서 읽히는 것이지 그 통일성이나 전체성 속에서 읽히는 것이 아니다. [왜곡]사진은 여기에서 여자의 성(性)을 표시하기 위해서 손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이는 우연의 결과 물인 스냅쇼트의 형식에서 탈피한 치밀한 계산법을 사용하는 것인데 결국 이 이미지는 사진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흐를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셈이다.

[kertesz_distortion]

[Arm & Ventilator, 1937]

[Chez Mondrian, 1926]
당시의 초현실주의자들은 공통되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무의식의 흐름을 형상화 하는데 사진이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사진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보고자 하는 것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한 의사전달의 기능을 포기하는 데신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었다.

일찍이 20년대 포토저얼리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보도사진가로서 그 명성이 대단했던 케르테츠는 1936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그의 체류는 원래 짧게 의도 되었지만 중간에 2차 대전이 시작되어 그는 미국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

그는 여기서 프리랜서 사진 작가로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보그 (Vogue) 와 룩 (Look)지에서 일한다. 그는 이 작업들을 하면서 패션 사진 작가로서 이력을 쌓게 되지만 여전히 그의 사진의 경향은 변함이 없었다.

1964년 그의 일련의 사진들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 전을 가진다. 그의 사진들은 포토저널리즘 일정한 스타일과는 다른 경향이었기 때문에 미국에 건너와서 줄곤 라이프지(Life)나, 룩(Look)지에 그의 사진이 실린 적은 없었다.

그가 다양한 사진 이력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Watchmaker's Shop, Christopher Street,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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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2-1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이 책 읽고 그림이나 사진 올리시는 분들이 많네요^^
담아갈께요~~ 아. 저는 비연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동그라미 2006-02-19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놀러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