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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한국살이 굽이굽이
조정래님의 작품이다라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굉장한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또한 지극히 아픈 한국사 이야기의 제목다운 제목 <황토>에 크게 이끌렸다.
실은 조정래님의 내로라하는 많은 작품들을 단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단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움이 느껴질 정도의 작품들임을 분명히 잘 알지만, 왠지 모르게 읽기가 두려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출간되던 <태백산맥>에 이어 <아리랑> 등, 뻔질나게 드나들던 도서관에 위엄을 지키려는 듯 항상 자리하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그것들을 외면했다. 한국사의 아프디 아픈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기에... 괜스레 욱하고 금새 슬퍼지는 그런 이야기들을 10권 남짓하게까지 읽어나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무튼 이런 나에게 있어 한 권으로 된 <황토>라는 장편은 조정래라는 작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굉장한 필력이다. 어릴 적 나의 소심함이 괜한 짓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물 밀 듯 차오른다.
이 작품은 1974년에 단편으로 발행되었던 이야기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단편으로 발행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던 작가는 전면 개정하여 본래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야기는 역시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감상에만 젖어 있기에는 이야기의 흐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간부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게 된 주인공 점례, 해방 후 맞이한 남편은 공산주의를 부르짖게 되고, 숨돌릴 새 없이 들이닥친 6.25 전쟁과 미군들. 역시나 아프디 아픈 한국사가 배경이 된다.
첫 40페이지 남짓에서 이미 이야기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아이 셋을 키워낸 홀어머니, 삐뚤어진 큰 아들, 반듯한 둘째 딸, 그리고 파란 눈의 막내 아들. 이야기의 시작부터 전반적인 것을 밝혀 놓고 그 속에서 굽이굽이 펼쳐지는 한 가족사를 뒤이어 세세하게 펼쳐 놓았다.
그 굽이굽이 가족사라는 것이 아프지만 해학적이고, 겪어보지 못한 과거지만 생생하다.
아픈 역사에 대한 작가의 관점도 중간중간 잘 드러나는데, 그것이 참말로 시원하다.
어리석게 일본에게 빼앗겨버린 나라, 뒤따르는 35년의 착취, 그 와중에 속출하는 나라를 팔아먹는 짐승들. 해방의 기꺼움을 잘못 누리는 우매한 인간들, 제 손으로 전쟁을 일으켜 서양에게 상납되어지는 나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전쟁을 겪던 대다수의 국민들.
이 모든 것들이 점례라는 한 한국 여성이 소녀에서 굳센 엄마가 되기까지의 굽이굽이 인생살이에 기가 막히게 잘 녹아 있다.
어둡고 무거운 소재에 밝은 빛을 조금씩 조금씩 조명해가며 흥미롭게 펼쳐낸 작가가 존경스럽다.
허구이면서도 거짓부렁이 하나 없는 멋진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