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만난 장자>

˝숲의 나무가 살아 남은 이유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집 오리가 도살당한 이유는? 울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살아가면서 ‘울수 있느냐‘ ‘쓸모가 있나 없나‘와 같은
유용함과 무용함의 딜레마에 끊임없이 직면합니다.

이 책의 장자는 ‘유용한가 무용한가‘라는 사회의 이분법적 구분을 초월해서 본연의 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두고 추구해야 할 것이라 말합니다.
성패, 영욕, 이해득실과 같은 속세의 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가치 구분을 뛰어 넘어 자기 자신의 감각과 기호로 돌아와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도덕을 타고 노닌다‘ 라고 말합니다.

노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원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은 ‘상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상명‘ 즉, 자신이 윈하는 것과 그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올바른 실존적 선택이라 말합니다.

똑같은 하늘 아래 놓여 있지만 각자에게 속한 하늘은 모두 제각각이여서 상도와 상명을 따르며 자만심을 내려놓는 삶이 진정한 도덕을 타고 노니는 것이고 이 도덕은 반드시 마음의 자유에서 나온다 라고 말합니다.

언어유희에 능수능란한 장자의 말을 곱씹으며
대강 정리해봅니다.ㅎㅎ
머리 속이 하얗게 되고 읽어도 읽은것 같지 않고...
뭐라 말할수도 없는 상태 <도덕경>의 구절
‘도를 도라 부를 수 있다면 이미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이미 이름이 아니다.‘ 가 생각납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자연적인 것 그러한 것
<까페에서 만난 장자>는 머리 보다는 마음에서 읽히는 책인지라
이 말씀들을 다 이해한다는 건 저에겐 불가능하네요.ㅎㅎ

그저 분명한 건
˝현재의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인생에서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는 진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보통 <불안>


아침에 눈 뜨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끊임없는 고민과 선택에서 내 선택이 후회없을 때가 몇개나 될까.
그래도 유일하게 내 선택에 있어 후회없는 시간이 독서이다.
그 선택,
선택의 누적이 삶이라고 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는 예측불허의 결과를 초래하고
이러한 세상의 시간을 사는 우리는 늘 <불안>을 안고 사는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불안지수에 따라 삶에서 주체성 없이 매번 흔들리고 올해도
나에겐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참 많이도 흔들렸다.
지금도 변함없이 불안해하는 마음은 또 나를 가만두지를 않는다.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 알랭드 보통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사회의 태도, 즉 나의 정체성이 함께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양한 의견 속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인정받기 원하는 것은 결국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기저에 숨어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세상의 조건적인 사랑에 흔들린다. 무시와 외면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이다.
과학적 진보와 발전은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그에 따른 기대감은 많은 박탈감을 낳고 이는 나와 동등하다 여겼던 것이 깨질때
더 큰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 민주주의는 기대를 가로막는 장벽을 철거해 버렸다.''

능력주의에 따라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것에 자유가 주어진 이래로 이 불안은 더 가중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요구, 임금에 의존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이처럼 헌대사회에서 불안은 당연한 것 처럼 삶의 일부로 녹아 있다.

이 책에선 불안의 해법도 5가지로 말하고 있다.
철학, 예술,정치,기독교, 보헤미아
결국 완전한 해법은 없다.
살면서 내부의 양심에 따르는 철학적 사유는 적어도 이성적으로
중도적 삶에 이르는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 예술은 우리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가장 많이 채워줄 수 있고 해법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은 표준적인 사회적 위계에서 도덕적 렌즈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과 교정을 돕는다.
책에서 말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현대인의 삶은 불안이라는 부작용을 떠 안고 살아야 한다.
이 불안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 완전한 해법은 책 어디에도 없다. 단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현실적 불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인지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그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현명하게 불안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법정도를 말해주는듯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서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성공이 결국 끝도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성공의 길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현대사회를 살면서 자꾸만 잊고 있다.
이 책에서 제안한 해법은 적어도 불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 아가는 길인 것 같다. 그러다보면 불안이라는 것에 싸여 자신을 스스로 묶어 가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스탕달<사랑에 대하여>

-결국, 불안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같이 적당한 거리에서 마주하며 견제하며 토닥이며 극복하며 살아가는것이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안이라는 것도 저버리지 못한다면야 더불어 자알 살아가야 하는것이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랭 드보통 <불안>


아침에 눈 뜨고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끊임없는 고민과 선택에서 내 선택이 후회없을 때가 몇개나 될까.
그래도 유일하게 내 선택에 있어 후회없는 시간이 독서이다.
그 선택,
선택의 누적이 삶이라고 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는 예측불허의 결과를 초래하고
이러한 세상의 시간을 사는 우리는 늘 <불안>을 안고 사는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불안지수에 따라 삶에서 주체성 없이 매번 흔들리고 올해도
나에겐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참 많이도 흔들렸다.
지금도 변함없이 불안해하는 마음은 또 나를 가만두지를 않는다.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 알랭드 보통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사회의 태도, 즉 나의 정체성이 함께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양한 의견 속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인정받기 원하는 것은 결국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기저에 숨어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세상의 조건적인 사랑에 흔들린다. 무시와 외면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이다.
과학적 진보와 발전은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그에 따른 기대감은 많은 박탈감을 낳고 이는 나와 동등하다 여겼던 것이 깨질때
더 큰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 민주주의는 기대를 가로막는 장벽을 철거해 버렸다.''

능력주의에 따라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것에 자유가 주어진 이래로 이 불안은 더 가중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요구, 임금에 의존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이처럼 헌대사회에서 불안은 당연한 것 처럼 삶의 일부로 녹아 있다.

이 책에선 불안의 해법도 5가지로 말하고 있다.
철학, 예술,정치,기독교, 보헤미아
결국 완전한 해법은 없다.
살면서 내부의 양심에 따르는 철학적 사유는 적어도 이성적으로
중도적 삶에 이르는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 예술은 우리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가장 많이 채워줄 수 있고 해법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은 표준적인 사회적 위계에서 도덕적 렌즈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과 교정을 돕는다.
책에서 말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현대인의 삶은 불안이라는 부작용을 떠 안고 살아야 한다.
이 불안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 완전한 해법은 책 어디에도 없다. 단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현실적 불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인지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그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현명하게 불안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법정도를 말해주는듯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서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성공이 결국 끝도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성공의 길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현대사회를 살면서 자꾸만 잊고 있다.
이 책에서 제안한 해법은 적어도 불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 아가는 길인 것 같다. 그러다보면 불안이라는 것에 싸여 자신을 스스로 묶어 가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스탕달<사랑에 대하여>

-결국, 불안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같이 적당한 거리에서 마주하며 견제하며 토닥이며 극복하며 살아가는것이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안이라는 것도 저버리지 못한다면야 더불어 자알 살아가야 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1984 (양장) - 194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4 /조지 오엘

나에겐 적어도 미래는 희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보다는 더 풍요롭고 여유롭고, 더 나은 사회가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가끔 이러한 희망도 요즘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미래가 주는 단어는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1984 >의 오세아니아의 세계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50년 전보다 더 퇴보된 사회다. 기억할 수 있는 과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회, 남아 있는 기억도 날조된 거짓이다.
빅브라더의 철저한 감시 사회에서 진보된 기술은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에서만 발달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p51)

거짓말은 역사가 되기도 진실이 되기도 한다.

<1984>의 오세아니아는 특정한 이념을 둔 세계를 겨냥한다는 편견된 관점이 글을 읽다 보니 윈스턴이 사상 경찰과 핵심 권력자 오버라이언의 시나리오에 맞게 철저히 인간성이 파괴되는 과정은 불편한 현실이었다. 현실 사회에서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감시 체계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의 사회에서 윈스터의 반사회 사상은 끊임없이 그가 속한 현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며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윈스턴은 사상죄에 해당한다. 그것은 범죄이며 죽음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미래 혹은 과거를 향해, 사상의 자유가 있고 저마다의 개성이 존중 받으며 홀로 고독하게 살지 않는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며 행해진 것이 사라질 수 없는 시대를 향해 글을 썼다.˝ (p47)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빅브라더는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이다.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은 광고판이나 포스터 속의 얼굴과 텔레스크린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가 전부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세아니아 사회는 궁극적으로 빅브라더는 전능하고 당은 완벽하다는 신념 위에 서 있다.˝ (p327)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평화부는 전쟁, 진리부는 거짓말을, 애정부는 고문을, 풍요부는 굶주림을 이러한 모순이 가득한 사회인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없다. 그렇다고 올더 헉슬러의 <멋진 신세계>처럼 다수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존재하는 당도 아니다. 단지, 권력을 위한 사회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 어떠한 것도 날조가 되고 사라지는 무서운 사회인 것이다.
올더스 헉슬러의 <멋진 신세계>오 같이 이곳 사회에서는 철저히 개인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 모두의 안정을 위햐여 철저히 개인의 자각과 주체성은 배제되어야 했고 절대적인 신분 계급으로 나뉘어져 자신의 위치에 불만 없는 상태였다면, <1984>의 빅브라더의 사회는 철저한 감시 아래 몇몇의 핵심 권력과 하층 계급으로 나뉘어 현재를 위해 과거도 날조하고 특정 권력에 의해 진실화 과정을 거친다. ‘사상범‘ 과거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때처럼 그들의 고문에서 거짓 자백을 받아 내는 것에서 끝났다면, 1984사회는 개인의 존재 자체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는 권력이 있다. 한 사람의 정신 세계를 오롯이 두지 않는다. 완전히 비우고 그들의 세상, 당의 날조된 세상으로 한 개인의 머리를 장악한다. 결국에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고 어느 순간 죽임을 당한다.

˝가장 위협적일때 인간은 다른 사람의 괴로움은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윈스턴 또한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버린다. 교묘히 인간 심리를 적용해 한 개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과정은 나 자신이 무력해지는 씁쓸함도 느끼게 했다.
<1984>사회의 미래는 만들어지고 특정 권력에 장악된 채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알면 안되는 사회에서 모든 인간 본능적 욕구는 없애야 한다.
한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비우고 그들의 사상을 주입시킨다는 것은 마치 AI로봇의 알고리즘을 다른 것으로 완전 교체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그런식으로 개조를 시킨다는 자체가 끔찍한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이미 한 사람의 인권도 생명도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 이 곳은 단지 필요한 부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에 불과하다.
무기력한 한 개인의 주체성과 생각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윈스턴은 항복하고 말았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에서 극적인 결말은 기대할 수 없었다.
씁씁한 결말과 더불어 얼마 전 읽은 <멋진 신셰계>와 오버랩 되면서 참 서글퍼지는 책, 묘하게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 힘빠지는 책이다.

˝과거는 바꿀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과거는 절대로 바뀐 적이 없었다.˝ (p436)


˝ 자신의 태도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p438)

그래도 내가 사는 사회에 희망을 기대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암울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연대하는 시민이 있고 사랑이 남아 있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당연함이 느껴지는 내가 속한 사회에 다시 감사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