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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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칼로타에게 

우리의 열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사랑하는 당신에게

해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원고를 당신께 바칩니다. 

행복을 기념하는 날의 선물로는 영 부적절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내게 사랑에 대한 믿음을 주어 

마침내 죽은 가족들을 마주하고 이 극을 쓰게 해준 당신, 

고통에 시달리는 네 명의 티론 가족을 향한 연민과 이해, 

용서의 마음으로 이 극을 쓰게 해준 당신, 

당신의 사랑과 따스함에 고마움을 전하는 의미로 이 극을 바칩니다. 

내 소중한 사랑, 지난 십이 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였습니다. 

내 고마운 마음, 당신은 알겠지요. 나의 사랑도! 

1941년 7월 22일

타오 하우스에서 

진 

- <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 중에서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미국 극작가로 유진 오닐은 현대 극의 모든 형식을 시험하고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탐험한 작가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가벼운 상업 극에 머물러 있던 미국 연극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미국 극작가라고 한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유진 오닐의 자전적인 요소가 이 작품의 바탕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아일랜드 이민 2세대로 불행한 가족 사와 함께 심연의 아픔이 비극적으로 녹아있다. 그리고 술과 약물, 질병에서 고통 받았던 모든 아픔은 당시 시대 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기존의 이민자와 새로운 이민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인종, 종교 등 다양한 차별로 나타났다. 같은 백인일지라도 종교적 이유로 온갖 핍박을 견뎌야 했던 아일랜드인들은 기근과 질병의 악순환에서 힘겹게 적응했을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누가 백인인가? 미국의 인종 감별 잔혹사>>에서  이민자의 아픔을 이미 접해서 인지 이 책에 녹아있는 아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등장 인물을 간략하게 이야기 한다면,

 

무신경한 아버지 티론, 

모두가 아버지 티론을 원망하고 욕한다. 

서른 세 살의 큰 아들 제이미,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상을 풍기며 술에 빠져 산다.

제이미 보다 열 살 어린 에드먼드,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하다. 건강이 좋지 않고 어머니 메리를 닮았다. 

소녀 같은 메리, 

예민한 감수성으로 섬세한 그녀는 약물 중독에 빠진다.

 

 

아일랜드 기독교인 아버지 티론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갖은 노동으로 고된 시간을 보내고 힘겹게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리고 청년 시절 한 때 희극 배우로 유망주를 꿈꾸며 열정을 품었던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티론은 메리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메리를 사랑하지만, 무심한 티론은 아내 메리가 외롭고 홀로 지내는 힘든 시간을 보지 못한다. 그 속에서 출산과 우울은 메리를 점점 더 힘들게 만들었다. 티론의 직업상 호텔을 전전하며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 작은 아들이 홍역에 걸려 죽게 된다. 작품에 나오는 큰 아들 제임스는 이 일로 인한 죄책감으로 술에 빠져 방탕하게 보낸다. 에드먼드는 형 제임스를 따르면서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를 닮은 섬세하고 감수성 많은 에드먼드는 폐 결핵에 걸리고 만다. 극 중 에드먼드는 유진 오닐 본인을 투영한 인물이다. 

 

 

유진 오닐의 피 땀 눈물이 섞인 < 밤으로의 긴 여로>는 한 장소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1912년 8월의 어느 하루'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 거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작품은 줄곧 어둡고 칙칙하다. 그리고 우울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족의 대화는 앞 부분에서 짧게 끝이 난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혀 찾을 수 없고 차가운 비난과 질타 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에 대한 애증으로 서로의 이야기는 이해 받지 못하고 집안에서 그저 빙빙 돌고 돈다. 


이처럼 <밤으로의 긴 여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극적인 사건도 즐거운 이야기도 없다. 톤도 없고 색깔도 없는 단조롭기 그지 없는 이야기에 쓴 맛만 느낄 수 있는 대화가 오고 간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도 즐거움을 찾을 수 없지만, 눈에서 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는 공감 포인트를 찾을 때였다. 이 얄궂은 애증 관계에 얽힌 가족 이야기가 짜증 날 만큼 어둡고 지루하지만, 여느 가족의 이야기 한 편을 보는 것처럼 공감을 불러 일으킬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 온 부모 세대, 그 시대를 겪고 견뎌 내야만 했던 세대를 이해한다면 이 작품이 어느 한 나라의 가족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리고 한 가족의 이야기는 유진 오닐의 가족 사 만이 아니다. 불편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우리의 이야기로 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드먼드를 편애 하는 부모,  형제인 제임스와 에드먼드의 관계에서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랑은 제임스를 더 방황하게 만들었다. 제임스는 동생 에드먼드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사랑에는 질투 또한 무섭게 작용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힘들게 살아 온 아버지 티론의 구두쇠 기질은 과거 자신의 어머니의 두려움이 섞인 푸념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색함은 그가 가족들에게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어머니 메리의 약물 중독이 아버지 티론의 인색함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의 불운을 아버지 티론의 인색함 탓으로 돌린다. 이렇게 서로 지나온 과거를 들추면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들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결국 가족은 가족이었다.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주면서도 서로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끈이 그들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눈에 들어온 단어 '돈의 가치'

아버지 티론이 아들들에게 잔소리로 퍼붓는 단어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후회에도 들어있는 단어다. 

이 단어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의미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밤으로의 긴 여로>>이 작품을 쓰면서 그는 너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자신의 불운한 가족 사를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진 오닐은 자신의 삶 밑바닥에 있는 아픔을 다시 꺼내어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유진 오닐은 이 작품을 마무리하고 사후 25년 간은 발표도 무대에 올리지도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 끔찍한 불행의 가족 사에 대해 적나라하게 녹아 있는 이 작품이 그에게도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오닐이 죽은 지 3년 만인 1956년 스웨덴 스톡홀롬의 왕립 극장에서 초연 되고, 그해 뉴욕 무대에 선을 보이며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밤으로의 긴 여로>>는 1957년 유진 오닐의 네 번째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기록된다. 

 

 


 "인생 교훈에 너무 데여서 돈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건지도 몰라. 그러다 결국은 실수로 잘나가던 배우 인생까지 망쳐버리게 된 건지도. (슬프게) 전에는 누구한테도 이런 점을 인정한 적 없는데. 오늘은 마음이 너무 아파 그런가?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이런 마당에 자존심 세우고 허세 부린들 무슨 소용이겠니."

 

 - <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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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3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개가 얼마나 자욱한지 길이 안 보이는군. 세상 사람들이 전부 지나가도 모르겠어.] 오닐이 살아생전에 이작푸 절대로 발표 안하고 사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죠 ‘운명이 우리에게 시킨 일들은 변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거‘ 이뿐 호빵님 덕분에 ‘밤으로의 긴여로‘ 다시 펼쳐 읽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