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공간에서 한 시대를 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시간을 사는 사람, 즉 존은 '시간 밖에서 사는 사람'이다. 유한한 우리의 시간에 비해 존의 시간은 우리와 달리 넉넉했다. 4천 년을 살아온 주인공 존은, 구석기 후반에 걸쳐 현재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살고 있다.



<맨 프럼 어스>는 현생 인류가 현재를 사는, 아주 아주 오래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다소 획기적인 영화다.

 

 

2021년 나의 첫 영화다. 나는 또 이렇게 SF 장르를 벗어나지 못했다. 책 보다 영화의 편식이 유난히 심한 나를 질책하며 새해 첫 영화를 시청한다. 그리고 황당하게 <맨 프럼 어스> 2편을 먼저 보고 다시 1편을 찾아서 보고 있다.

 


<맨 프럼 어스> 1편은 SF 장르지만, 화려한 CG도 스펙터클한 장면도 없는 영화다. 소박하지만 아주 탄탄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반전의 재미로 이야기는 끝을 낸다. 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존과 그 이야기를 게임처럼 흥미롭게 토론하고 경청하는 사람들만 있다. 장소의 변화도 거의 없고 역동적인 사건도 없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다. 보는 나도 이미 존의 이야기에 빠져 두 눈을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겨울 따뜻한 난로를 끼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다운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존의 이야기는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기고, 누군가에게는 분노를 누군가에게는 억지 같은 이야기다. 난로 옆에 앉아 덤덤히 이야기하는 존이 만 4천 년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할 때, 이들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편과 속편에도 등장하는 고흐의 그림은 그가 오랜 시간을 살았음을 증명한다. 한때 고흐의 친구였던 존은 오래된 우정을 간직하듯 고흐의 그림을 늘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존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모두 권위 있는 학자다. 인류학자, 고고학자, 심리학자, 절실한 기독교 신자 등 학문을 연구하는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존의 이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그들을 놀랍게도 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존은 교수로 아주 능력도 있고 인간성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편의 <맨 프럼 어스>는 그를 아는 동료들이 그의 갑작스러운 떠남을 아쉬워하며, 마지막으로 존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진지하게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동료들의 정을 느낀 존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죽지 않는 존의 시간은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과 연결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역사적인 사건을 접할 때마다 어떻게든 반박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그의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한참 흘러 종교적인 인물에 관한 존의 이야기는 이들을 모두 충격에 빠뜨렸다. 그동안 자신들이 알던 사실을 모두 부정하는 획기적인 이야기는 영화 속 인물뿐만 아니라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도 아주 불편하게 만들 소지가 있었다. 반기독교적인 영화로 반감을 살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도 절실한 기독교 신자의 분노가 표출된다. 그들은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렇게 이들의 질문과 이야기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듣는 동료들의 힘듦을 느낀 존은 모든 것이 그저 상상을 가미한 이야기라고 마무리 짓는다. 풍선에 바람 빠지듯 뭔가 허탈하지만,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안도하고 동료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떠난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까지 나의 차분한 마음은 숨겨 둔 이 영화의 대반전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영화의 2편을 먼저 본 나는 허무한 결과를 보며 멍을 때렸다. 그때 쿠키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의미심장한 영화의 반전 수수께끼를 알기 위해 나는 2편을 접하고 1편을 더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 1편이 논리적인 이야기로 지식의 향연을 펼쳐나간다면, 2<맨 프럼 어스 2: 홀로신>은 약간의 스릴러 적인 면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1편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2편에서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정체가 드러나자 떠나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1편의 움직임 없던 공간은 2편에서는 조금 확장된다. 학교와 집, 그리고 1편의 연관된 인물의 장소의 공간 확장은 이야기의 범위가 더 다양하고 복잡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존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존이 늙어 간다는 것이다. 홀로세 마지막을 산 존도 이제 최후를 맞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맥락이 약간 끊어지는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1편보다는 이야기의 짜임새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1편의 조용한 전개를 생각하면 속편은 긴장감을 자극하지만, 그 긴장감이 주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를 따르는 학생들의 등장은 무모하기 그지없다.

그를 따르는 젊은 제자들의 활동과 존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구조도 뭔가 어설프다. 존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또 그렇게 흥미롭지도 않다. 후반부로 갈수록 존이 곤경에 빠지는 장면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존의 실체를 알자 기독교적 광신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구세주가 나타난 것처럼 그에게 질문하며 흥분한다. 조금은 지나친 설정에 영화를 보면서 이건 뭐지라는 싶은 장면이 몇몇 있었다. 존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범법 행위가 결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먼 행동들은 점점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그들의 행동은 영화를 보면서 심지어 분노를 일으켰다. 영화의 설정이 이런 의도였다면 성공이다. 2편의 다소 산만한 설정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나의 부족으로 영화의 충분한 감상은 떨어졌지만,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영화는 틀림없다.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나, 그저 이 감정을 놓치고 싶진 않으니 말이다.

 

 

근래 접하는 책이며 영화며 종교와 관련된 것이 많다. 비종교인으로 나름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립적인 편이라 생각했다. 종교가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지만, 근래에 부정적인 면을 너무 많이 접한지라 종교에 대해 자꾸만 편견이 생기고 있다. 본질이 흐려지는 종교의 순기능이 점점 더 왜곡되는 현상을 지켜보는 것이 많이 불편하다. 주인공 존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 하지만 주변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존에게서 사람들은 비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을 끄는 묘한 힘도 느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은 존이 말했듯이 많은 경험에 대한 깨달음의 축적이라고 말한다.

 


아주 오랜 시간을 죽지 않는 존은 우리에게 선지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불멸의 힘은 마치 전지전능함으로 과대 포장된다. 그래서 그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고 위대함을 발견하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존이 말했듯이 그저 자신은 한 공간에서 한 시대를 살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 또한 지나온 시간을 공부했다고, 단지 오랜 경험의 축적은 우리가 몰랐던 진실에 대해 조금 더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존에게 경험의 축적은 그가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서도 느긋한 여유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존의 여유가 사람들에게는 마치 성인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질문이 제법 많은데,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한숨 짓게 된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긴 시간 끄적거려 본 적은 처음 같다. 정리되지 않는 머리도 영화처럼 계속 불편하다.

 


마침, 묘하게도 넘긴 책이 샤르트르의 <구토>


그의 글이 강하게 눈길을 끄는 건지금 나의 기분을 대변한 듯한 반가움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늘 있는 어떤 확신이나 뻔한 일과는 달리, 마치 질병에 걸리듯 닥쳐왔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나는 기분이 좀 이상하고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그뿐이다. 그것이 일단 자리를 잡고는 꼼짝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기에, 나는 나 자신을 이렇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고,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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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1-01-2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프롬 어스> 인생 SF죠. 2편은 평이 좋지 않아서 걸렀는데, 궁금하긴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