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 창비세계문학 1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황종민 옮김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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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라는 말장수가 살았습니다




16세기 중엽 하펠 강가에 미하엘 콜하스라는 말장수가 살았다. 훈장의 아들로 태어난 이자는 당시 누구보다 올곧으면서도 무시무시한 인물로 손꼽혔다.


책은 이렇게 두 문장의 시작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16세기 독일 작센 지방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미하엘 콜하스>는 말 장수이자 상인으로 성공한 ‘한스 콜하제‘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야기는 가라말 두 마리를 중심에 두고 벌어진다. 말장수인 콜하스는 장사를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작센 지방의 드롱카 성의 융커의 횡포에 억울하게 가라말 두 마리를 빼앗기게 된다.  자신의 튼실했던 말들은  삐쩍 말라 비틀어져 죽도록 밭일에 이용되고 있었다.  이 억울한 상황을 콜하스는 법에 호소하기로 한다. 그래서 융커 벤첼 폰 트롱카의 모든 악덕을 법원에 소송하여, 법에 호소하고 부당함에 대해 알리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귀족들의 특권을 가지고 있는 융커의 집단은 콜하스의 고소를 모두 기각해버린 것이다.


미하엘 콜하스는 평소 발도 넓고 평판이 꽤 좋았다. 그의 정직성과 올곧음은 인간 관계에서도 호감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자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이런 든든함도 어쩌지 못하는 힘의 권력이 좌우한 것이다. 콜하스는 자신이 제기한 소송이 고위층의 개입으로 법원에서 아예 기각됐음을 알게 된다. 콜하스는 실망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인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그는 선제후에게 청원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꾹 눌러 참으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총리실에서 보낸 결정문이 집으로 도착한다. ˝콜하스는 상습 소송꾼˝이 되어있었고, 자신의 말을 찾아가라는 통보와 함께 더 이상 총리실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충고가 들어있었다.


콜하스는 분노하였다. 그리고 억울했다. 심지어 선제후에게 청원서를 제출하러 갔던 아내가 죽기 직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한다. 콜하스는 이제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결국 그의 선택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한다. 그의 생업인 장사는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인 말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 콜하스는 자신의 재산과 불법적인 피해에 대해서 보상받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전 재산을 털어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기껏 말 두 마리 때문에 무장봉기?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처음부터 무기를 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에서 더 이상 억울함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그에게 최후의 방법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청원을 하러 갔던 아내를 잃고 법원의 위협을 받은 뒤에 일어난 일이다.
한 개인이 이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무엇보다 공적인 법원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도 생각하게 된다.


미하엘 콜하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의 전 재산을 틀어 불법에 저항해 나가는 것을 접할 때는조금 무모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는 부분이 있기에 콜하스의 직진에 질책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드롱카 성의 횡포는 콜하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콜하스의 봉기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이 책은 루터의 종교 개혁과 농민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숨어있다. 그리고 <미하엘 콜하스>는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보통 법은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법은 정의와는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 현실에서 우리는 느끼지 않을까. 사적 이해관계에 섞여 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놀아나는 것을 말이다. 책 속의 못된 융커의 영향력을 지금 이 현실에서도 느끼는 씁쓸함이 있으니.


콜하스에게 남은 마지막 보류, 캡슐 속의 쪽지가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충분히 자신의 생명을 보장 받고 아이들에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콜하스는 절대 쪽지를 넘겨 주지 않는다. 미소를 띠면서 쪽지를 삼킨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자신의 고통만큼 드롱카 성의 융커 또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 신념이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정의감에 불탔던 미하엘 콜하스는 역사적으로 무시무시한 인물로 표현된다. 조금은 무모하다 싶은 정의감은 그에게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지만, 현실을 따진다면 콜하스의 죽음은 무의미한 죽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 앞에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콜하스는 자신의 죄를 법의 원칙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를 봉기하게 만든 부조리한 융커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감내해야 한다. 여기서 양심이라는 그 단어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종이보다 가벼운 것이란 걸 아는 우리는, 이 단어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책은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졌다.
나머지 이야기도 꽤 담고 있는 의미가 많다.
그 중에서 두 편만 간단히 이야기 하면,


<O. 후작부인 >

천사같았던 이가 하루 아침에 악마처럼 보인다.

조금은 황당한 광고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짧지만 임펙트가 있다.
자신이 천사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가장 선량하고 순수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더 극에 달한다. 흰색의 오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소설이다.
조금은 황당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이야기다.


<칠레의 지진>

당시 시대상 스캔들일 수밖에 없는, 연인의 비극적인 운명
그들의 절망적인 운명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희망의 밧줄 하나가 들어온다.
죽으려고 하는 순간 땅이 요동 친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연인은 각각 홀로 이 난리 속에서 기를 쓰고 버티고 살아 낸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가운데 그들은 살아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살아있음에 신께 감사한다. 또한 눈에 들어 온 무시무시한 지진의 잔해를 보며 하느님의 능력에 무서움도 느낀다.  인간 본성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세상에서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준다.
인간사가 늘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늘 우리가 아는 아쉬움을 남긴다.

어느 정도 수습과 안정을 찾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이 모든 재앙의 책임을 따져 물어야 했다. 재앙의 원인과 하느님의 노여움 그리고 하느님의 관용을 말한다. 이 정도로 그친 것에 감사하면서 죄를 다시 묻는다.

이 연인의 불경스런 죄는 재앙의 불씨가 되고, 결국 이야기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 듯 한 상황이 벌어진다.


클라이스트 소설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거의 변화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게 될 때는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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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02 2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오에 겐자부로의 책에서
텍스트로 다룬
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은데 제가
원전을 만났는지 헷갈리네요.

리뷰를 찾아 보니 한 십년 전쯤
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

종교개혁에 나섰던 루터가
뒤이은 농민전쟁에서는 농민들의
편이 아닌 제후 편에 선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뿐호빵 2021-01-03 00:02   좋아요 2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셨나요ㅎㅎ

책에서 중재자로 나선 루터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던 루터의 종교개혁이 고지식한 성서주의와 교리주의 였다는 사실에 분명 한계가 있었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남은 휴일도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