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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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리보다 책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책을 읽었을 때 맛볼 수 있다. 고전을 접할 때마다 느낀다.

 

 

"존재한다(Exister)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밖에 있다(sistere ex)는 뜻이다."p159

 

 

타인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는 사회적인 존재임을 아주 강력하게 인식시켜준다. 우리가 코로나 시기에도 방문을 걸어 잠글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 많은 것을 바꿔 놓거나 강력하게 주의력을 전환 시키기도 한다. 올해의 낯선 환경이 만들어준 시간은 이 책이 나에게 더 깊숙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험과 도전, 적응기의 대명사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의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관계를 뒤엎은 소설,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스'가 쓰여진 시대는 18세기다. 영국이 세계 패권을 쥐고 있던 시대였기에 세상의 지도와 방식과 모든 가치관, 그들의 것이 진리였던 시대였다. 그런 관점이 지금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20세기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그러한 불편한 이야기를 완전히 뒤엎는다. 투르니에의 주인공 로빈슨의 좌초 시기도 서로 100년의 차이가 있다. 당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과 투르니에의 로빈슨은 다르다. 그만큼 성숙한 로빈슨인 것이다. 비슷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좌초된 섬에서 적응하는 것 같지만, 비슷한 듯 아주 다르다.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이 완전히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나타난다. 방드르디 (프랑스어로 프라이데이)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는 더 살아나는 것 같다.

 

 

타인과 관계로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의 주의력은 끝없이 분산되고 방해를 받는다. 그러면서 열심히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간다. 그래서 삶 자체에 집중을 못 할 때가 많다. 세상밖에 존재하는 로빈슨의 주의력은 점점 좁아져 갔지만 대신 깊어진다. 타인의 등장에 대해 그 가능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는 다른 것에 대한 염두를 두지 않아 실수를 만들었다. 그는 섬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호'를 만들었지만, 그 배를 바다로 진수시키는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탈출호는 허무하게 "노마의 방주처럼 육지에 우뚝 섰다."

 


고립된 로빈슨은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결국은 상상의 산물에서 허둥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섬에서의 삶은 조금씩 변화를 맞이한다. 원시적 삶에서 이제 문명인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가 어렵게 구한 잉크로 일지를 쓰게 되고 로빈슨의 진정한 섬 생활이 시작된다. 이제 섬은 '탄식의 섬'에서 '스페란차'라고 부르며 섬을 부린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로빈슨은 이제 '스페란차' 섬에서 그 시간의 중심에 놓였다. 그가 발을 디딘 섬의 공간과 시간을 장악해 나간 것이다로빈슨은 '스페란차'의 대지를 한 여자와 동일화했다. 그리고 로빈슨은 스페란차와 결혼하고 그 대지의 품속에서 그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결실을 이뤄냈다.

 


 

흑인 소년, 방드리디의 출현은 로빈슨에게 불안을 안겨 주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인의 등장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주는 열쇠가 된다. 어린 방드리디의 천진함과 순수함에서 로빈슨은 자신의 파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며 뭔지 모를 불편함이 남는다.

다이엘 디포의 로빈슨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다.

 

로빈슨이 힘겹게 이뤄낸 문명의 질서들을 방드르디는 오히려 교란하려는 듯 방해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자연과 동물과의 교감은 로빈슨의 교감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로빈슨이 그 섬에서 이룩해 놓은 속세적 질서를 방그리디는 천성적으로 불편해했다. 종속적인 관계는 일방적인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 세계였다. 재미없는 세상, 책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의 중반 이야기의 반전이 시작된다.

 

 

투르니에의 로빈슨 다시 쓰기는 원주민인 방드르디의 위치를 완전히 뒤집는다. 더 강력하게 이야기의 반전이 일어난다. 조금은 지루한 책이 중간을 넘고 방드르디의 등장과 함께 로빈슨의 생활, 그리고 방드르디의 역반응에 대한 모습을 관찰하는 지점이 오면 책은 묘한 쾌감과 함께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여기서 순간 유머스러한 무성영화의 슬랩스틱코미디를 떠올리기도 했다.


 

일명, 방드르디의 '담뱃불 사건' 이다. 몰래 피다 던져버린 불은 문명 세계로부터 로빈슨과 함께 좌초된 모든 것의 집합체 동굴을 폭파한다. 이제 로빈슨과 방드르디, 둘의 뒤집어진 상황은 그들을 더 가까이 한 몸처럼 살 수 있게 했다.

책의 해설 부분에서 이 장면의 묘사를 "자연에 대한 문명의 승리가 이제부터 문명에 대한 자연의 승리로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P 340


 

동굴의 폭발은 로빈슨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질서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좌절보다 로빈슨은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꼈다. 로빈슨도 방드르디 못지않게 그가 이룩한 이성의 질서가 자신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방드르디는 실질적으로 일이라고 전혀 하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의 개념이라고는 일체 알지 못하는 그는 오로지 현재의 순간 속에 갇힌 채 살고 있었다.” p236

 


여러 해를 두고 방드르디를 노예로 부렸던 로빈슨, 이제 완전히 둘의 관계는 형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외모마저 비슷해졌다. 옷도 벗어 버린 로빈슨의 몸은 태양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피부색도 어느새 구릿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둘의 캐미는 점점 더 다양하게 이뤄진다. 때론 다툼으로 때론 기쁨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싸움에서 등장하는 허수아비라는 매개체는 정말 둘의 관계를 유치하게도 만들지만, 파괴적이거나 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로빈슨의 시간의 흐름과 속도, 그 방향이 크게 변화를 맞았다.

 



스페란차는 이제 기름진 땅으로 가꾸어야 할 황무지가 아니다. 방드르디는 이제 내가 교육시켜야 할 야만인이 아니다. 그 양자는 다 같이 나의 온 주의력을, 관조적인 주의력을, 신기한 것에 감탄하는 듯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내가 그들을 매 순간 처음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들이 지닌 마술적이라 할 만한 새로움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흐려지지 않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p275



 

빈슨은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의 덧없음과 가벼움을 떠나 무상함을 되찾아 지내게 되었다. 모든 낯익음 것들의 소멸이 가져다주는 결핍에서 그의 사유는 깊어졌다. 이제 로빈슨은 자연의 한 부분처럼 작아졌고 방드르디와 함께 공존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항상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균형이 깨어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할 것 같은, 일이 벌어진다. '화이트버드호'의 등장이다. 하나가 된 이 섬에 외부인의 개입이 일어난다.


 

화이트버드호의 등장은 스페란차에서 로빈슨과 방드르디와의 균형에 손상을 입힌다. 몰랐던 것에 대한 앎, 방드리디는 이제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로빈슨은 과거의 파괴적이고 세속적인 삶에서 자유를 찾았음을 알게 된다. 극과 극의 통함과 극과 극의 그리움은 서로를 정반대의 상황으로 끌고 갔다. 로빈슨은 과거 그렇게도 탈출하고 싶었던 섬에서 남아있기를 원했다. 그럼 방드리디는 어떨까? 이 책의 방드리디는 참으로 능동적이다. 방드리디의 선택에서 로빈슨은 미련인지 뭔지 모를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로빈슨 또한, 다시 시작되는 시간을 받아들인다. 이제 로빈슨은 늙었고 다시 섬에 홀로 남은 막막함 앞에서 새로운 소년, 자안 넬자페브의 등장은 로빈슨의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다가올지 생각하게된다. 그리고 그 소년의 이름을 지어준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


"이제부터 너의 이름음 죄디란다. 그건 하늘의 신인 주피터의 날이디. 그건 또 어린아이들의 일요일이기도 하단다." 



 

시간의 지배에서 인간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유한한 운명은 뫼비우스 띠처럼 무한한 시간에서 늘 작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그 시간의 크기를 줄이려고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있는지 깨닫는 요즘이다. 그렇게 아쉬움만 가득한 올해의 마지막 달에 만난 책 중에서 이 책은 나를 더 생각하게 한다. 언젠가부터 책이 던지는 질문과 생각을 즐기게 된다. 그렇다고 책에 푹 빠져 사는 사람도 되지 못한다. 그저 때때로 손이 가는 책을 읽고 때때로 즐기면서 책을 통해서 삶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다. 다양한 관계가 적은 나에게 책은 그렇게 세상의 별나고 새로운 삶과 만나게 하는 매개체이다. 형제가 된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관계가 깊어질 때 서로의 애증 관계도 깊어졌다. 그때 방드르디의 허수아비는 정말 나에게 웃음을 가져 준 장면이기도 하다. ‘허수아비를 통해서 그들의 갈등은 파괴적으로 치닫지 않았다. 나에게 책이 그랬다. 세상을 살면서 부딪히는 갈등에서 책은 방드르디의 허수아비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갈등을 웃어넘길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작가들에 대한 나의 애정이 늘어날 때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이 넘쳐난다. 내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틈틈이 읽을지도 나를 때론 속박한다



이렇게 또 책은 나의 시간의 자유를 구속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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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2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죄디란다. 그건 하늘의 신인 주피터의 날이다. 그건 또 어린아이들의 일요일이기도 하단다‘
이쁜 호빵님 전 이 마지막 구절을 가장 사랑합니다.^@^


이뿐호빵 2020-12-22 20:10   좋아요 2 | URL
ㅎㅎ공감입니다. 헉,근데 오타가 장난이 아니네요ㅋ
급 부끄러워 집니다~~

scott 2020-12-24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 오타 수정하고 댓글 달아요 ㅋㅋ
이뿐 호빵님 방에 트리 한그루 심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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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뿐 호빵님^.~

이뿐호빵 2020-12-24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우 ~~
감동입니다😍

덕분에 행복 거득한 ㅋ 크리스마스 보낼께여~~♡
그리고 sc0tt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