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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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이 따스하게 깃드는 집을 지었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완공한 집의 열쇠를 의뢰인 요시노에게 넘겨주고 프로젝트를 멋지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같은 디자인의 집을 지어달라는 다른 의뢰인이 북향집에 다녀왔는데 아무도 안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어떻게 설계한 집인데, 그 집에 그동안 담아온 꿈과 소망과 열정을 모두 담았는데, 아니 그보다 무슨 문제가 있길래 집을 버린 걸까. 아오세는 북향 집에 찾아가지만 요시노가 없다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온다. 의뢰인인 요시노 가족은 어디로 갔을까. 아오세는 의뢰인이 자신이 지은 집에 대한 불만이 아닌 피치 못할 이유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요시노를 찾아 나선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북향으로 집을 짓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빛의 현관> 주인공 아오세는 북향에서 오는 빛만으로 집안을 환하게 채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 구상에서 끝나지 않고 공들여 집을 지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지었는데 아무도 안 산다면, 돈을 받고 끝낸 작업일지라도 기분이 나쁠 것이다. 이것은 돈 받고 글을 썼는데 출간되지 않는다거나 돈 받고 그림을 그렸는데 누구도 보지 못하고 폐기처분 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잘 끝냈다고 생각하고 잊었는데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왜 사용하지 않나요?"라고 묻고 싶지 않을까. 그런 심정으로 아오세는 요시노를 찾았고, 일가족은 사라지고 집만 남은 미스터리가 하나씩 파헤쳐 진다.

솔직히 말해, <빛의 현관>은 미스터리 소설이라기보다 드라마에 가깝다. 한 남자의 성장 배경이 현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천천히 진행되지만, 이상하게 손을 놓을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야만 요시노 가족의 행방, 북향 집과 요시노의 관계 그리고 아오세의 대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펙터클한 긴장감은 다소 약하지만, 한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다. 심리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한다.

이 책을 읽는 팁을 말하자면, 주인공 아오세에게 깊게 감정이입하라. 좀 더 스릴 넘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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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 식욕 먼슬리에세이 5
손기은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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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으면 매운 게 당긴다. 우울하면 느끼한 게먹고 싶다. 힘들 땐 더 잘 먹어야 한다. 그래야 힘을 내서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맛있게 먹고 먹은 걸 글로 써서 돈을 벌고 다시 신나게 일하는 에디터, 손기은 작가의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라는 책을 읽었다. 참 맛있고도 힘이 나는 책이다. 배고플 때 읽으면 위험하기도.

시중에 나온 책들 중에서 '식욕'에 관련된 책들은 많다. 그런데 먹는 걸 업으로 한 사람의 글은 아직 보지 못했다. 즉, 사람들이 환호하는 푸드 에디터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은 이 책뿐이다. 물론 직업 소개를 한다고 재미있는 건 아니다. 손기은 작가의 톡톡 튀는 맛 표현이 새롭고, 현장감 돋는 사례가 날 그 자리로 데려가 배고플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자취하면서 받았던 엄마의 손맛 가득 담긴 택배, 맛있는 아침을 먹고 싶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날, 성격에서 나오는 음식 취향,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느낀 신세계, 고급 레스토랑의 친절함과 세심함 등 내가 음식을 대할 때 느꼈던 비슷한 감정이 담겨 있어 공감이 많이 되었다. 반면 술이나 홈바,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 차에서 즐기는 혼밥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에피소드라서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따라 하지 못하는 경험들이라 진귀하고, 눈길이 갔다.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는 드렁큰에디터 출판사의 먼슬리에세이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욕망, 식욕 편이다. 드렁큰에디터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이라 믿고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잘 읽혔다. 이전 편보다 공감하며 읽었던 것으로 보아,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나도 '식욕'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힘이 빠지는 날 읽으면 좋겠다.

스트레스 받는 날 읽고 맛있는 걸 먹으면 좋겠다.

또 즐겁게 먹을 날이 있다는 걸 기억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읽고 기운 차리면 좋겠다.

누구든지-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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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믿지?
송순진 외 지음 / 폴앤니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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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이며,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누나이거나 동생이었다. 한 명의 여성이라면 하기 힘든 일, 헤쳐나가기 어려운 문제를 '언니'가 있기에 이겨나간다. 그 모습에서 나를 보고 나의 엄마를 보고 내 주위의 여성들을 보았다. 나를 일으키고 끌어당겨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던 나의 여성연대, 언니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언니 믿지?>는 여덟 명의 여성 작가가 '여성'과 '언니'라는 테마로 쓴 단편소설을 엮어낸 소설집이다. 여덟 명의 여성 작가들이 살면서 여성에게 느낀 유대감을 적어내려갔다. 이야기는 거침없다. 현실을 제대로 담았다. 여성들의 힘겨운 삶의 현장을 말이다.

8개의 단편선 중 제일 와닿았던 이야기는 '우리들의 방콕 모임'과 '언니네 빨래방'이었다.

'우리들의 방콕 모임'라는 손자를 돌보던 엄마가 팔을 다쳐 주인공 여성의 집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갑자기 엄마랑 같이 살게 되면서 살림은 편해졌지만 사소하게 부딪히는 일도 발생한다. 따로 살기에 숨길 수 있었던 초라한 모습, 힘든 일이 같이 살면서 드러나고 사소한 일로 폭발한다. 엄마랑 살게 된 이야기가 내 마음에 꽂힌 이유는 엄마가 생각나서이다. 엄마는 일찍 일어나시고 삼시 세끼를 챙겨줄 의무를 가지신 분이시고 가족 눈치를 보시고 나의 살림살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놓으신다. 딸네 집에 와서도 굳이 손수 밥을 차려주시고 쉬지 않으시고 계속 뭔가를 하시려는 분, 고맙고 감사하지만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며 안 맞는 부분도 있다. 나의 이중적인 감정은 늘 엄마한테 들켜서 엄마는 매번 "나이 들면 부모가 자식이랑 같이 못 살아. 너희가 살던 습관이 있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다른데 어찌 같이 사니?"라고 말씀하신다. 엄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랑 부딪히는 부분 때문에 같이 살기 힘들다는 엄마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한 소설이 '우리들의 방콕 모임'이었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만 더 친해지고 더 돈독해지는 시간이 되기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언니네 빨래방'은 유쾌하지 않은 사건을 유쾌하게 펼쳐낸 이야기이다. 경자 아줌마의 둘째는 늦게 결혼했다. 노처녀 딱지를 떼면서 한 결혼이지만 훤칠하고 문제없는 사윗감을 데려왔기에 동네에서 주선하라는 요청이 많았다. 오지랖이 넓은 경자 아줌마의 주선으로 몇 명이 결혼했다. 그러나 둘째도, 주선으로 결혼한 은주도 이혼했다. 은주는 내려와 빨래방을 열고, 주선한 죄(?)로 경자 아줌마는 은주네 빨래방을 돕는다. 경자 아줌마가 은주를 도와 단단한 배후를 만드는 모습에서 여성연대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은 출간 전에 기획자이자 소설가인 김서령 작가의 소개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덟 명의 여성 작가가 함께 주제를 정하고 스토리를 점검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어 보였다. 무엇보다 즐겁게 작업했다는 말에 꼭 읽고 싶었다. 가치관의 차이로 손을 들어주지 못한 소설도 있지만, 단단한 배후가 되어주는 언니들을 만나 든든해졌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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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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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작가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의 신작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가제본을 읽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들이닥친 불행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유쾌한 성장 소설이었다. 아파트에서 잘 지내다가 부모님 때문에 하루아침에 비닐하우스 집으로 이사가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불편한 생활에 불평하며 매일 불만을 입에 달고 있을지 모른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라면 가출을 할지도 모르고. 그러나 주인공 현성이는 불행에 빠지기 보다 친구 장우와 함께 재미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서로의 아픔을 들쑤시지도 모른척하지도 않고 둘이 함께 도전할 일을 찾아간다. 남자아이라서 불편하고 어색한 생활을 금방 받아들이는 건 아닐 테다. 그저 두 친구는 서로의 불행을 공유할 상대가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자신의 상황을 즐긴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라는 말은 제목뿐이다. 책 속의 아이들은 절대 아무것도 안 하지 않는다.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탐색하고 허름한 아지트를 찾아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꾸민다. 그 아지트에서 같이 라면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1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현성이와 장우가 2탄을 찍어 올릴지 가제본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 시리즈를 찍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단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내 방도 엇고, 씻는 것도 불편하고, 화장실도 불편하다.

이 집은 불편한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이 집에 사는 것이 되게 힘들지도 않다.

나한테 이 집은 힘들다기보다는 속상한 집이다.

엄마 아빠가 싸운 것도 속상하고, 아빠가 나간 것도 속상하고,

엄마가 애써 밝은 척하는 것도 속상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주인공 현성이는 불행에 잠식되지 않고 불행을 회피하지도 않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상대의 슬픔을 받아준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집 나간 아빠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한다. 그런 현성이가 마음에 든다. 불행을 툭툭 털어버리고 불편한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현성이가 참 멋있다.


아빠가 사기당해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비닐하우스에서도 쫓겨난 현성이는 어디로 가게 될까. 재혼한 아빠와 임신한 새엄마 사이에서 관계가 어색한 장우는 새로운 가족에게 익숙해질까. 유튜브에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영상은 계속 올라갈까. 가제본이라 결말을 알지 못하는 나는 읽지 못한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소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을 읽는 분들은 주인공들이 몇 시간이나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책을 펼치겠지만 읽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이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려고 눈을 바르르 떠는 모습, 웃음을 참으려고 입을 실룩이는 모습을 통해 아무것 안 하는 녀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갑자기 찾아온 불행은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되기에 심리적 타격이 크다. 불행 앞에서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무기력하게 있을 수도 있고, 불행을 거부하며 짜증만 낼 수도 있고, 불행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찾아 움직일 수도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을 읽고 불행에 맞서는 방법을 배웠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이 알려준 불행을 타파하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라.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답게 부담 가지 않게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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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카미유 피사로 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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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빨강으로 잎이 물들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을 수 있는 계절,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도 남을 바람이 훅 불어와 쓸쓸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계절인 가을이 왔다. 가을을 타는 성향은 아니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봄이 오고 여름이 가는 계절의 변화도 모른 체 지나가버려서 가을만은 만끽하고 싶었다.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을.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풍요롭게 느끼게 한다. 시인들이 마음껏 느끼고 사유하고 감성적으로 시에 담아냈다. 가을의 시들은 풍요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아리다. 가을이 담긴 시를 읽으며 잠시 왔다 가버리는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고 더 오래 내 마음에 담아 둘 수 있었다. 단풍이 드는 산자락을, 유난히 맑고 높은 하늘을, 익어가는 열매를, 찬 기운을 데려오는 가을바람을.

"그림은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저녁달고양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은 시화집 시리즈물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한 작가의 작품에 시를 엮어낸 버전과 계절별로 묶어낸 버전이 있다. 가을 편은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 모리스 위트릴로 그림과 윤동주 외 34명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엮어낸 시화집이다. 시를 보고 그림을 보면 시가 이미지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고, 그림을 보고 시를 보면 그림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시인인 윤동주와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책이라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안 이 시화집을 보고 또 꺼내보련다. 이 책을 읽으면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2020년을 잘 마무리하고 차분하게 2021년을 반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올해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운 분들,

가을을 타느라 감정이 요동치는 분들,

글과 그림으로 외로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분들,

짧은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참고로 그림만 봐도 좋은 책이고, 마음을 건드리는 시가 가득 담긴 시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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