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지략 1 - 亂世智略
조성기 지음 / 실크로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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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의 대화부터 심리적인 결이 거의 없다.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의도를 투명하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현실에선 그런 인물을 거의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청소년의 역사 이해를 위해 엮어 놓은 만화로 보는 안내서처럼 느껴졌다. 인물들이 죄다 사료를 알맹이째 내뱉어놓는 스피커폰 스탠드 같다. 



또한 첫 대목부터 군주들이 여색을 탐하다 망한다는 교훈을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그러면서도 불필요하게 줄기차게 끼어드는 세밀한 성애묘사는 옛시절 작가 다운 특유의 분열적인 태도를 답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문연재 소설이었을 듯 아마 그래서 변덕스러운 독자의 시선을 매회마다 잡아 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감안한다 해도 이렇게 두껍게 몇 번이나 서책의 볼륨으로 다시 엮은 상황에서는 가지를 쳐낼 수도 있지 않은가. 섹스 씬에 대해서 도덕적인 단죄를 하는 것은 아닌데 묘사된 것들도 상투적이고 하기 싫은 노동을 하듯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책은 <전국책>을 토대로 해서 손자, 귀곡자, 오자, 묵자, 명가 종횡가의 작품,순자, 사기 등등의 중국고전들의 내용을 부분부분 버무린 것이다. 그런데 그 고전들의 지혜가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건더기째 고대로 주요격언에는 한자원문까지 괄호안에 넣고 나온다.이를테면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한 참모가 지휘관에게 <손자병법>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 고 말하는데, 그런 게 몇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끝까지 계속 된다. 마치 판사가 법조문을 인용하면서 해당 사건에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하는 것 같았다. 



악평을 쓰고 말았는데 잘난 척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찌됐든 돈주고 산 1500페이지 안팍이나 되는 책을 끝까지 읽어냈기 때문에 약간의 분풀이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살아가야 할 세월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느끼는 모양인지 나는 아직도 읽던 책을 중간에 과감하게 던져버리는 것을 잘 못한다. 이 책은 이전에 아침나라라는 데서 5권짜리로 나왔다가 또 동아출판사에서 <새롭게 읽는 전국책>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가 이번에 세번째로 출판사와 표지를 다시 바꿔 나온 것으로 안다. 이력이 긴 프로작가의 작품 답게 문장 만은 깔끔하고 날렵해서 술술 읽힌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읽고 칭찬했다는 책은 아마 이 책이 아니라 원전이 되는 <전국책>을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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