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패자 - 전7권
이자와 모토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1991년 일본에서 '야망'이라는 제목으로 네권짜리 한 셋트, 1995년에 '패자'라는 이름으로 두번 째 셋트가 나온 걸 하나로 묶어서 옮긴 거다. 전국시대물. 신문 연재 당시엔 '시나노 전운기戰雲記'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다고 한다. '시나노'는 주인공이자 가상인물인 모치즈키 세이노스케가 몸을 일으킨 곳이고, 그는 스와 지방 가신의 아들이었다. 시나노가 카이 지방의 다케다 신겐에게 침략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략으로 스와 영주가 자살 당하고서 연모했던 공주까지 다케다 신겐에게 빼앗긴 모치즈키가, 복수심에 불타 신겐의 적수인 다른 영주들에게 몸을 의탁해 싸운다는 게 전체 구성이다. 


스와 공주가 낳은 아이가 다케다 카츠요리고, 이 카츠요리가 마치 여포처럼 싸움은 잘하고 용맹하여 한 사람의 장수로서는 유능하지만 군주로서는, 요즘 식으로 보면 ceo 오너로서는 지략이 부족하고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으로 쓸데 없는 자존감을 내세워 오래된 가신들의 충언을 안 듣고 내시 같은 예스맨 측근만을 총애해서 카츠요리의 대에 결국 다케다 일족이 망하게 된다. 


주인공 세이노스케를 제외하면 1부는 주인공의 일생일대 적수인 신겐과 그의 책사인 야마모토 간스케가 중심이고 (+우에즈기 겐신), 2부는 주인공의 보스인 오다 노부나가와 신겐 측 책사였던 (간스케의 죽음 후 다케다 가의 최고의 핵심브레인이었던) 코사카 마사노부 (겐고로)가 중심이다.  


모치즈키의 복수 의지는 메인 테마처럼 일관되었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핵심 욕망 중에 모치츠키의 뜻대로 된 게 없다. 스와 공주는, 어짜피 가신으로서 넘볼 수 없는 뷰티이긴 했지만서도, 신겐에게 빼앗겨 원수의 애를 낳고 그 곁에서 시들어 죽게 둘 수밖에 없었고, 예상치 못한 신겐의 이른 병사로 직접 칼부림 해보겠다는 뜻도 이루지 못한다. 직장을 몇 번 옮기고 낭인 생활을 하다 최종적으로 오다 노부나가 편에 가세해 뜻하지 않게 미녀와 가정을 꾸리고 새끼도 키우면서 아수라장의 양쪽 편을 바라보며 반백의 나이까지 들다 보니, 복수심이 점점 꺽여 소위 현타가 온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퍽 재미있는 이야기거리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야망 패자>는 상당히 유치한 소설이다. 주인공과 핵심 적수들을 과대하게 형상화해 놓아서, 이들은 못하는 게 없고 간혹 실수를 해도 간지가 죽는 법이 없고, 지략이래 봤자 정교하게 짜여진 게 아니라 싸구려 사극이나 탐정물에서 흔히 나오듯이 꺼내도 꺼내도 새로운 게 튀어나오는 요술방망이를 쥔 사기캐처럼 그려져 현실감이 거의 없다. 지리멸렬을 규합하는 인간성에 대한 사실적인 탐구? 그런 거 없다.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그다지 총명하지도 않은 지루한 설교도 제법 늘어놓는다. 가상인물이며 주변인인 세이노스케와 가문이 풍지 박산난 후 승려가 된 그의 동생이 역사의 구비구비에서 끼지 않은 데가 없다. 근거 없이 유치해서 못읽겠다는 주장만 내밀어 놓으면 납득을 못할 테니까 내용 일부를 발췌해보겠다. 큰 흐름과 무관하지만 일부분만 봐도 사고회로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세이노스케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는 후유 공주가 서 있었다. 


"공주"


"뭘하고 계시나요?"


"공주야말로 이렇게 야심한 시간에 웬일이오?"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풍류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자칫하다가 또 유괴당하면 어쩌려고?"


세이노스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후유가 웃으며 되받아쳤다.


"그때는 세이노스케님이 또 구해주시겠지요."


"그럴수만 있다면 다행이오만."


"아, 정말 기뻐요."


후유는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말했다. 


"세이노스케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알아맞혀볼까요?"


"?"


"스와의 공주님 생각하신 거죠. 그렇죠?"


세이노스케가 어이가 없어 그냥 시선을 피해버렸다.


"봐요. 내가 맞혔잖아요. 굉장히 예쁜 공주님이셨겠죠? 아무리 세월히 가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럴지도 모르지"


후유는 세이노스케의 말에 입을 삐쭉 내밀었다.


"솔직해서 좋군요. 그렇지만 아가씨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랍니다. 눈앞에 제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시다니요"


"에??"



훗날 세이노스케는 후유 공주와 아들 하나를 낳는다. 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짝사랑했던 스와 공주와도 닮았다고 한다. 아침 식사하면서 밥 한그릇 더달라고 손내밀면서 눈앞의 상대에게 군소리를 하는 등 온갖 해찰을 다하면서 병행해서 읽을 수도 있는, 그 정도 수준의 얄팍한 가독성이 요구되는 신문 연재 소설 류에 적격이다.



봐줄 만한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다. 2부 3권, 그러니까 마지막 일곱번째 권에서 다케다 일가가 다 망해갈 즈음 다케다 가의 오너 카츠요리를 일방적인 멍충이로만 그리지 않고 그의 공과 실을 나누고 인간적으로 양해할 수 있는 성격적인 결함까지 음영처럼 곁들여 제법 감정이입 할만 인물로 그려낸다. 어짜피 텐목쿠잔 숲길에서 자결하고 목이 따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세이노스케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복수심과 같은 해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난세에는 가족을 챙기고 은거해라는 교훈으로 요약될 수 있달까. 참고로 작가인 이자와 모토히코는 혐한 반한 인물로 유명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혐한을 해도 소설만 잘 쓰면 인정을 해주는데, <전국지 (신서태합기)>를 쓴 요시카와 에이지도 그렇고 극우짓을 하는 멘탈들은 가치 중립적으로 봐도 왜 이렇게들 멍청한지 모르겠다. 본격 역사서 말고, 전국 시대나 메이지물 중 시바 료타로만 한 게 없다. 진순신은 사놓고 아직 안 읽어봤다. 양억관 씨 번역이라 문장의 플로우는 깔끔하다. 다만 인명 표기에서 오타가 아니라, 한자표기된 이름을 틀린 발음으로 옮긴 부분이 보이긴 했지만 크게 방해되지는 않았다. 



1줄평: 굳이 찾아 읽느라 시간낭비하지 말길.


(같은 저자의 '무사'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과 동일한 물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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