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정화 지음 / 법공양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식30송 자체는 글씨크기와 행간을 널럴하게 편집해도 6페이지면 되는 바수반두가 쓴 30구절의 짧은 텍스트지만, 그걸 두고 직계 제자들이 덧붙여 쓴 주석모음집인 <유식삼십론석>(=성유식론)이 불교 유식학, 그리고 법상종에서 경전급 책이다. 아직까지 서양 철학적 사고방식에 더 익숙한 나로서는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논리적 비약들이 듬성 듬성 끼어 있는데, 대강 그럴싸한 신비적인 용어로 퉁친 게 아니라는 직감은 있다. 

바수반두의 것인지 그걸 풀어놓는 정화 스님의 깊이인지 어쩌면 그 둘을 구분해서 공과를 나눈다는 거 자체가 상相에 얽매이는 것일수도 있으니 제쳐두고, 쭉 빨려들어가면서 읽는데 사유의 힘센 흰 소에게 이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왜 흰 소냐고 물으면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묵묵하게 이끌지만 삐딱한 의도를 가진 독자의 잔 저항으로 진로를 틀어놓을 수 없다는 느낌이어서 '소'를 연상했던 거 같고, 그 밑바탕에 선량한 의도가 감지되었기에 '희다'는 이미지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8식 아롸야식은 융 식의 집단무의식으로 읽을 수도 있고, 힌두 계보에서 말하는 찌꺼기와 순정이 구분되지 않는 '참나'의 덮히지 않는 현상적 전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7식 말나식은 '나'라는 어리석음, 이게 내 생각이라는 견해, '나'라는 자기애, 교만 등이 기저에 깔려 있는, '막 maya'에 싸여있는 사량분별식이며 이것은 6식인 뜻과 감각경계까지를 대상으로 하지만 아직 선악가치판단에선 떠나 있다. 6식 요별경식으로 내려가면 개인이라는 폭좁은 열림 만큼 깨어서 감각 대상을 분별하고 선악판단까지 기록한다. (어디에? 업業의 보이지 않는 양피지에?)

'식識'은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발생한다. 앎은 이미 들어와있고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하나의 항상성을 가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흔들리고 흘러가버리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가장 추상적인 먼 꼭지점'(telos)과, 범주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유일한 디테일을 가진 최근접의 방대한 구체성 사이에서 그 앎들은 원근법적인 스펙트럼을 그리며 늘어서 있으며, 우리가 작용할 수 있는 잠재적 힘점들이며, 허공 위에 떠있는 터치스크린의 이미지들이기도 하다. 

나와 나 아닌 인식 대상은 나라는 착각의 마술에 의해 능변식(= 스스로를 주체로 착각하는 능동적인 쪽의 識)과 함께 발명된 것이다. 몸의 영역으로 들어와 버리면, 피부와 내장을 넘나드는 감각과 내성耐性의 영역에서 어느 쪽이 대상에 해당하고 어느쪽이 인식 주체 쪽인지 구별할 수 없어져 버린다. 우리가 알던 '개인', 몸과 피부감각을 통해 겨우 하나로 붙들고 있었던, 분열된 힘들의 상상적 중심이 해체되며 이미지들을 향한, 또는 이미지들이라는 착각과 난장이 상연되는 극장 전체가 드러난다.

식의 기본 공정은 변행심소遍行心所 다섯가지다. ('변행'은 보편적 프로세스란 뜻이고 '심소'는 마음작용이란 뜻이다.) 닿고(觸), 닿은 것을 향해 마음이 기울고(作意), 기운 대상에 좋아서 받아들일 것이냐 싫어서 말것이냐 이도 저도 아니게 데면데면 할 것이냐는 혐/지향 구분까지 나아가고(受), 여기에 근거해 형상 이미지를 한정적으로 형성하고(想),그리고 생각(思). 이것은 8식에서도 드러나는 마음의 보편적 작용 공정인데 8식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아라한 수준에게 드러난다. 법화法化(대상화/소외, 소유 집착)로부터 자유롭고 가장 열려있을 때 유식무경唯識無境, 아라야식의 풍경이 나/남없이 드러날 것이다. 

삼성三性 중 의타기성依他起性(=모든 것은 그 자체로 서있지 않고 남에게 의존한다는 성질, 까도 까도 알맹이가 드러나지 않는 양파 같은, 본질 추적을 해봐야 끝이 없는 무한 하이퍼링크의 공성空性)은 연기성을 말하고, 그걸 온전히 입수하고 자각했을 때 원성실성圓成實性(=원만한 실상이 드러남)이 드러나고, 그걸 한정적으로 테두리를 그려서 착각했을 땐 변계소집성偏計所執性(=치우치게 계량하고 집착하는 성질)이 작동하지만, 중생 속에서 불성이 있듯이 사실 이셋은 따로이 존재해서 겹쳐지는 게 아니다. 


*

이 책은 정화 스님의 강의 녹취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고, 내용도 유식론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8정도, 호흡과 그때그때 발생하는 신경쓰이거나 불편한 곳에 의식의 포커스를 기민하게 갖다대는 위빠사나, 자량위로부터 시작되는 수행 5단계, 4심사관(이름名-대상義-자성自性-차별差別), 4념처(身-受-心-法) 수행, 사찰 구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출처 인용 없이 넘나들고 있다. 수행에 관한 첨부도 간략하지만 단단하다.

독서앱으로 측정해보니 352페이지 짜리 책을 16시간이 넘게 읽었더라.최소한 불교교리에 대한 기본서 두어권은 읽고 들어가는 게 맞겠다. '생활 속의' 운운하는 제목 속의 수식어에서 여리여리한 무난한 것으로 어림짐작 하고 붙들었다간 큰 코 다친다. 작정하고 난해한 책은 아닌데, 쉽고 무난하게 깍으면서 집필했더라도 주제 자체가 양보할 수 없는 깊이를 확보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니, 유식 입문을 작정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불교가 가능한 사변이란 이런 것이다를 맛보고 싶은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