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 그게 아니고
전영화 지음 / 더북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금강경 해설서 첫 번째로 읽기는 좀 그렇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순서로 읽어볼 만하다2007년에 나온 책불교학자나 스님이 아니라 재가 신자랄까 야인의 책서술 방식도 야인스럽다.


저자는 MBC PD였다가 그만두고 사업한다고 하다가 잘안되는 와중에, 지리산에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다저자 본인이 8년 동안이나 금강경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내 보기엔 집중적으로 들입다 팠다는 느낌은 아니다나름 신비 체험도 했던 모양인데 그걸 내세우지 않고, 반대로 <인간극장>, <PD수첩> PD 답게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캐고 들며 좌충우돌한다비판적 문헌학의 칼날이 거의 쑤시고 지나가지 않은 불교 경전 연구 판에 아주 기초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맨 뒤의 해인사 경판 사진 부록을 빼면 370여 페이지의 컨텐츠 중에서 300페이지 가량이 금강경을 둘러싼 소위 썰들이다구어 스타일에서 도올 선생의 영향도 느껴지는데별로 높게 평가는 안하는지 'TV 출연을 즐겨 하시는 그 분'이라는 정도로 몇 번 언급한다.



구마라지바 번역판을 메인으로 놓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산스크리트 금강경 텍스트조차 모두 원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 분야 권위자인 에드워드 콘즈도 영역판에서 13장 이후로는 혼란스러운 찌꺼기라고 했으니 말 다했지..금강경은 전승 과정 중에 수많은 끼워넣기가 있다고 심증 하고, 특히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이책을 암송하면 너와 니집이 흥하고 업장소멸되고 복이 무진장할 거라는 식의.. 행운의 편지 류의 번식 유전자 meme같은..) 유통분’ 에 해당하는 상당 분량을 과감하게 덜어내 버리고, 금강경에서 보살이 극복해야 하는 주요키워드 중의 하나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중에서 '아상'을 제외한 나머지 들은 후대에 덧붙여진 걸로 보고 삭제해버린다윤회 전생이나 아수라, 천상계 존재가 나오는 구절들도 지워버려서 아주 합리적 텍스트로 만들려고 노력한 거 같다. 새로 번역한 문장도 깔끔하고 발음하기도 편하고 소탈해서 낭송하기에도 적합하다.



또 관례처럼 도입되었던 소명태자의 32장 챕터 나누기도 부정한다기존 장 구분법으로 억지로 떼어놓았던 챕터와 챕터 사이를 연결해서 읽어보라고 권하는데시험해보면 과연 저자의 말이 맞다상 흐름을 끊어놓았다.



그럼에도, 어찌 된 일인지, 붓다 사후 500년에서 700년 후에나 출현한 금강경이 싯다르타 붓다의 오리지날한 가르침이라는 것까지는 부정하지 않는다딱 한 군데에서, 설령 싯다르타 붓다가 안 썼다고 치더라도 깨달음의 수준이 붓다와 엇비슷한 어떤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해보지만, 뒤에 가서는 마치 잊어버린 것처럼 붓다의 말씀이라는 원래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버린다.



현장 번역본은 번잡하고 쓸데없이 말만 늘리고 잘난척하는 판본이라고 2류로 쳐 버린다.



또 천태종의 시조인 천태 지자 대사가 말했던 소위 '5시판교'를 그저 중국인스러운 억지라고 해버리는데, 이게 뭐냐면 쉽게 말해 8만대장경이 모두 붓다가 한 말이긴 하지만 시기별로 그 가르침을 스타일까지 확확 바꿔가면서 했다는 (화엄경->아합경->방등부 경전-> 반야부 경전 ->법화경, 열반경) 류의... 개소리인데이 소리를 탄허 스님이나 그밖의 아주 이름 높은 한국의 고승들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형편...공부로 밥먹고 사는 학자들까지도 좀만 파보면 다 알 일인데 파장이 두려워 임금님은 벗었다라고 웨치지 못하고 쉬쉬하고 있는 것이다그밖에도 몇 가지 더 있다.



반대로, 저자가 파격을 좋아하다 보니 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처럼 억지를 부리는 데도 보인다저자는 혜능이 듣고 깨달았다던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라는 구절은 산스크리트 원본에는 없고 구마라지바가 창작해 넣은 거라면서그 구절의 창작이 오히려 절묘해서 이 번역자가 위대한 거라고 칭찬한다. 산스크리트 원문을 확인해 본 결과, 10장에 나오는데


yan na kvacit 어떤 것에도 prathistam 머무르는 cittam 마음을 utpadayitavyam 일으키지 않아야 하나니 (= 구마라지바: 應無所住 而生其心/ 현장: 都無所住 生其心)



 원문에는 그게 앞 쪽에 나와있는 구절인데 구마라집이 번역을 할 때 문장 순서를 살짝 바꿔 뒤로 옮겨 놓았을 뿐,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없는 걸 지어낸 건 아니었다이상하게도 현장의 번역도 그 구절이, 물론 다른 한문 번역이지만, 뒤로 옮겨져 있는데, 지금 남아있는 산스크리트 원본이 구마라지바나 현장의 한문 번역나왔을 당시와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처럼, 저자는 산스크리트 금강경이나 현장본을 꼼꼼하게 비교 대조해보지도 않고 다 읽은 것처럼 단정적으로 일반화해서 퉁치는 식의 판단을 종종 한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건데, 소명태자 장 구분으로 21장에 해당하는 부분은 구마라지바가 아예 번역을 생략해버린 부분인데후대의 편집자가 산스크리트 원본과 비교해보고 빈 자리를 보리류지의 번역판에서 뽑아다가 끼워넣은 것이라는 걸 알고 머리가 띵해졌다어째서인지 그 부분에서만 수보리는 ‘혜명 수보리라고 네이밍이 되어있었던 것이다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읽는 구마라집 한문 판본 중 21장은 다른 번역자의 판본이 대신 끼어들어가 있는 것이다저자는 구마라집이 그부분을 필요없는 번역이라고 과감하게 생략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8만 대장경은 경판이 8만 개 정도지 책으로 환산하면 7천권 정도라고 한다물론 그 권수 개념은 오늘날의 단행본 책 한권 볼륨보다 훨씬 적다.



이상한 덤이지만, 바그너의 오페라 'Flying dutchman'은 유령선을 뜻하는, 항해인들 사이에서 쓰였던 속어란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아니라.. 서구 신문물이 막들어오던 메이지 다이쇼 시기의 일본인이 잘못 번역한 거래.. 이런 잘못된 관행도 한번 굳어지면 쉽게 고쳐지지 않듯이 불교계에도 그런 게 많다고 지적한다옳으신 말씀천수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이 전해줬다는 신묘장구대다라니 구절 구절에서 쉬바 신비쉬누 신크리슈나가 불쑥 튀나오는 거 정도는 애교 포인트밖에 안된다또 그러면서 산스크리트 발음이랑 상당히 다른 걸 외우면서도 '발음이 중요하니까 번역하지 말고 뜻도 모르는 게 더 나으니까 그대로 외우라'고 한다. 저자는 이 정도 관행은 그냥 덮고 지나갈 정도로 온건하게 현실을 감싸면서 보는 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유익한 점 또 하나는 우선 불교를 좀 많이 아는 일반인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면 독자 입장에서는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짚어보고 따져보고 습득할 있다는 점이 그렇다싯달타가 유언으로 남겼던 말 자등명법등명을 잊지 말자또한 도올 선생의 책이 그렇듯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곁가지 잡설들도 대체로 활달하고 호방한 필치로 씌여져서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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