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세키의 초기 3부작 중 세 번째다. <그 후> 다음이다.


전작의 주인공이던 다이스케, 그의 불륜의 대상이던 미치요가 이 소설에서는 소스케와 오요네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작과 줄거리가 정확하게 맞추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전작의 정서적인 핵심을 이어받고 있다.

 <그 후>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사건, 사물들이 내내 나른하게 어슬렁거리다가 거의 끝부분에 가서 모두 한데 맞붙어 예기치 못했던, 그러나 처음부터 아예 그 조짐조차 없지는 않았던 한 차례 격렬한 폭풍이 휘몰아치는데, 다이스케에게 이것은 치욕의 구렁텅이로 추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버지로부터 의절당하고 직장을 구한다는 이유로 아무 전차나 올라탄 다이스케가 주위가 온통 선홍빛으로 물드는 경험을 하면서 파국적인 대단원을 맺는다. 후속작인 <문>에서는 그 사이에 있었던 온갖 절차상의 문제, 복잡한 뒷처리를 다 건너뛰고, 가난과 적적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번거로운 시선으로부터 그 자신들을 멀찌감치 격리시킨 한 공무원 부부의 퇴락한 삶으로 포커스를 이동한다.

소설의 중간을 한참 넘어서서 그들 부부의 범상하지 않은 인연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괴로웠던 순간들은 지나가고 없다. 소스케는 이미 무감각해졌다. 매사에 시큰둥하지만 성정 밑바닥까지 메마른 것은 아니다. 불행한 과거를 가진 이들 부부에겐, 남들 같이 보통 햇살을 함께 쬐며 아침 식탁에서 밥숟갈도 함께 뜬다는 것이, 혹은 이글거리는 정념의 불똥을 튀기며 상대의 얼굴을 마주볼만한 시기도 지나있지만, 가끔은 긴 시간 서로 아무 말 안하고 있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서로의 말버릇과 호흡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오래 입은 파자마모냥 헐렁헐렁한 한 때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활활 타오르는 연인이 아니다. 불쏘시개로 쑤석거리다 간혹 손등에 미미한 불꽃을 튀기는 화로 속의 검은 재에 차라리 가깝다.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때때로 이들 부부를 찾아오는 충일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기쁨은 아주 가끔씩 찾아온다. ‘울렁거린다’는 표현은 너무 강하고, 가슴 속에서 이쪽 저쪽으로 움직이는 어떤 힘이다. 고요하지만 확실한 느낌이다, 그런 느낌의 고동일 것이다. 책을 읽다가 말고 쓸데없이 혼자 상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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