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맞다, 동화책이다.

작가는 12세와 13세 청소년을 위하여 이 책을 썼으나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 이건 청소년(12세와 13세라고 굳이 연령대를 꼬집어 주는 친절이라니^^)을 위하여 쓰긴 했으나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동화책이 될 것이라는 걸 작가는 알았던 거 같다. 정확히 봤다.

작가는 프랑스 사람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을 쓰고 그렸는데 딱, 내 취향이다.

이야기는 재밌고 시각 표현을 공부하고 삽화를 그려왔던 사람답게 디테일하면서도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신비감을 주는 그림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주인공을 부각시키면서도 주변의 작은 세세한 것에도 심혈을 기울인 그림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윌리가 어딨나?' 찾아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그림이 내 취향이라 그림을 많이 올려 보기로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며 자연을 파괴하고 살육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인간이 사악한 이기심을 비판하는 [마지막 거인]은 교훈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나 그냥 신비한 모험 이야기로 읽어도 재밌다.


벽에 걸린 초상화, 산양의 뿔, 지구본, 장거리 여행용 가방, 모형 범선, 망원경, 거북 등껍질, 가득한 책... 하나 하나 그림들을 살펴보며 '이 작가는 모험을 좋아하고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책이 벽면 가득 쌓여있고 전세계에서 사 온 진귀해 보이는 물건들과 아직 풀지 않았거나 혹은 떠나기 위해 싸 놓은 짐 짝과 가방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식사를 준비해 주는 가정부가 있는 것.


음...내가 원하는 삶이잖아, 부러움과 함께 동경의 대상이다. 부러워 했으니까 벌써 졌다. 인정하고 이야기 속으로 가보자!


모험가이자 지리학자인 주인공은 부두를 산책하던 중 이상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아주 '커다란 이(齒牙)'를  백발 성성한 노인에게 산다. 고래 이빨에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 아닌 진짜 '거인의 이'라고 주장하는 노인에게 뻔한 속임수라고 여기지만 얘기가 재미있어서 2기니에 산 후, 호기심에서 어금니에 그려진 그림을 연구한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구는 놀라움에서 당혹감으로 바뀌고 어른 주먹만한 어금니 뿌리 안 쪽에 새겨진 미세한 지도는 지리학자의 육감과 연구로 '거인족의 나라'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긴 여행을 결심한다.

 

대부분의 동화처럼 험난한 여정이 이어지고 가진 물건도 함께 간 동료도 다 잃고 천신만고 죽음 직전에 거인의 나라에 도착한 주인공은 그들이 지구상에남은 마지막 거인족의 나라임을 알게 된다.

거인들 몸에 그려진 정신없이 혼란한 금박 문신은 형태와 색깔을 달리해 가며 의사소통을 하고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피부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주인공을 말 못하는 벙어리로 생각해 불쌍히 여긴다는 내용은 기발하고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이라 엄지척! 슬몃 웃게 된다.


거인의 나라에서 열 달 가까이 지내며 거인들과 친해지지만 고향이 그리운 주인공은 거인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지리학자 답게 거인의 나라로 가는 지형과 여정, 거인들의 특징, 경험을 책으로 내고 과학 단체의 거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세기의 발견자'라고 칭송하는 측과 있지도 않은 얘기를 꾸며 내는 '협잡꾼'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지만 두 번째 원정단을 계획할 만큼 충분한 돈도 마련하게 되고.


짐작했겠지만, 결론은 우울하다.

주인공이 낸 책을 안내서로 삼아 사이비학자, 도적들, 온갖 종류의 협잡꾼들이 먼저 도착해 마지막 남은 아름다운 거인들은 살육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분주히 오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된다. 달콤한 비밀을 폭로 하고 싶었던 어리석은 이기심과 자신의 명예욕이 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걸 내려놓고 고기잡이 선원으로 살아간다는 얘기다.

한때 가장 자신을 사랑해 주고 진실한 친구였던 거인 안틸라가 축제의 제물로 머리가 잘린 채 마차에 실려 오면서 슬픔 담긴 영혼의 목소리로 축제 행렬을 지켜보고 섯는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그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여행담과 너른 바다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 줍니다. 하지만 귀중품 맨 밑바닥에 가만히 누워있는 그 이상한 물건, '거인의 이'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P.78)


서평이나 독후감을 쓸 때 책 내용을 세세히 쓰는 걸 싫어하지만 이 책은 원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 주고 싶은 책이다.

자연을 걸어다니는 아름다운 거인들로 빗대어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해 온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지만 어디에도 억지 교훈을 주려 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만 이야기를 읽히게 한다.  거인들의 모습과 특징, 거인 나라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이야기들은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신밧드 모험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 책으로 인해 작가는 작가이자 삽화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는데 충분히 그럴만 하고 더 많은 책을 써 주길 기다리고 있다. 아이에게 딱 한 권의 책을 읽힐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고 만약 내가 한 권의 책을 쓸 수있다면 이런 얘기를 써 보고 싶다.


책을 덮고 나서도 안틸라 영혼의 목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들려오고 침묵을 지키지 못해 잃었던 우정과 신뢰와 인연들을 조용히 생각해 보게 한다.

안틸다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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