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최열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양구에서의 박수근

박수근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처음 들었었나 생각해보니 고 박완서님의 소설 '나목'을 읽을 무렵이었지 싶다.

'나목' 속 인물중에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박수근을 모델로 했다는 말을 흘리 듯 들었지만 그때 뿐이었고,

박수근은 미술과 무관하게 살아온 나에겐 먼 인물이었다.

그러다 남편의 직장관계로 잠시 강원도 양구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 박수근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고 그 우연찮은 만남으로 인해 박수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화가 중 한 분이 되었다.

내가 살던 때만해도 문화적인 행사라고는 거의 없던 양구 좁은 시골 읍소재지에 (내 기억이 맞다면 )봄이 올 무렵 행해지는 '박수근 추모전'은 큰 행사였다.

아직 박수근 미술관이 양구에 생기기 전이었고, 그의 그림이 지금처럼 높은 경매가를 갱신하기 전 일 때의 일반인에게 막 알려지기 시작한 박수근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추모전에 걸린 그림들의 진위을 떠나 황량한 읍소재지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에서 받은 느낌은 '이렇게 단순하고 황량한 풍경의 그림에서 어떻게 이런 따뜻함이 스며 나올까?'였다.

거칠거칠한 질감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단순하면서도 삶의 무게가 담긴 사람들의 모습,그리고 뼈대를 드러내며 굴하지않고 서 있는 나목들을 보면서 이전의 어떤 그림에서도 느낄 수없었던 '감동'을 느꼈었다.

인쇄한 그림을 팔기도 했던터라 그 중 한 장을 사서 한 동안 거실벽에 붙여 두고 봤었는데, 잦은 이사로 어디로 갔는지 행방은 묘연하지만 그림에서 받은 위로가 그림값(?)이 몇 백 배였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박수근 평전

박수근의 일대기를 통해 함께 더듬어보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평전이라는 다소 딱딱할 수있는 장르지만, 평전이라기 보다는 전기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자란곳으로 부터 청년시절의 고생과 노년의 궁핍함까지 가는 동안 그의 손에는 항상 붓이 있었고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흑백의 조화로 독창적인 기법을 완성해 냄으로 한국미술사에 '박수근'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읽을 수 있다.

생전엔 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불운했던 화가였지만,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어린시절 부터 그는 언제나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에 애정을 가졌고 배경이 되는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수상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끊임없이 그리고 그려 내 분야를 개척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때론,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은 그의 새로운 기법은 평론가들에게 질책의 대상이 되어 주눅이 들기도 하고 생활고로 인해 작품을 사달라는 편지를 적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는 '진실한 생활에서 고귀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책 전반에 읽을 수 있다.

 

 

 

박수근은 매우 개성적인 작가로 회백색계의 단조로운 색조의 두꺼운 색층과 오톨도톨한 특유한 마티에를 가지고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를 진하게 담았다.(P.255)

 

 

 

사후에 평가되는 그는 생전의 그가 받았던 대우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할 만큼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절대적인 입지의 인물로 평가 받게 되지만, 그의 삶을 돌아보면 안타깝고 안스러운 장면이 많아 더 가슴아프기만 하다.

 

'못된 세상의 변두리에서 조용히 그리고 남에게 힘이 겹지 않게, 그렇다고 대단한 위엄도 ,자세도 취해보이지 않는 채 일하고 있었다. 한눈 팔 겨를 없이 오직 정진과 애정, 영적인 자기 세계를 형성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한국적 작가의 하나의 이상상'(P253)이라고 말하는 석도륜의 회고는 박수근을 가장 정확하고 심도있게 파악한 사람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다시 박수근

그의 그림은 이제 그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귀한 느낌보다는 얼마에 거래되고있는 엄청난 그림이라는 인식이 앞서 개인적으로도 참 속상하다.

고흐가 그러했듯 생전에 그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늘 배가 고팠고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는 박수근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가질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의 그림이 주는 따스함과 삶을 이겨내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그림속의 조용한 사람들에게 나는 또 힘을 얻는다.

박수근의 그림이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의 맑고 순수한 정신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림에 들어있어서가 아닐까? 여긴다.

 

그림에 전혀 문외한인 나를 한국 미술사 도록을 펼치게 하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조명 받은 작가들은 누구였나를 살피며 화풍을 비교하게 한 건 순전히 박수근의 힘이다.

물론, 지금도 대부분의 화가를 알지 못하고 그림을 읽는 법도 보는 법도 잘 모르지만, 보이는 그대로 그림을 보면되고 느껴지는 그대로 감동 받으면 된다는 걸 알게 해 준 박수근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인쇄된 그림으로도 원작 못지 않은 감동과 가치가 느껴지는 그림은 박수근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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