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화났다 - 초등학생을 위한 동시조
유성규 지음, 어린이 62명 그림 / 글로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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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확띄는 나비가 날아가는 노란 표지, 비뚤한 글씨로 쓴 책 제목!

슬쩍 들쳐보고픈 호기심이 저절로 발동하는 책이다.

애들이 엮은 동시집인가보다 싶어 요즘 아이들 시 짓는 수준은 어떤가 싶은 궁금증에 책을 펴면

짧은 시(?)와 시와 어울리는 누가 봐도 '아이들 그림이구나'싶은 천진하고 재밌는 그림이 쫙~ 펼쳐진다.

 

제법 잘 지었는데..하며 한 편, 두 편을 읽다보면 어느새 시들이 입에 척척 감김을 느낀다.

어라, 이렇듯 술술 잘 읽히는 시라면 제법 고학년일 듯 싶은데 시에 첨부된 그림에만 학년 이름이 표시되어 있을 뿐,

시를 지은 아이에 대해선 첨부 내용이 없다.

그제서야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맨 처음으로 돌아가 책머리를 읽어보니 아뿔싸!!

망토를 잊고 길을 나선 슈퍼맨 처럼^^ 어쩐지 허전함(?)을 느낀 이유가 이곳에 그곳에 있었던 것을!^^

 

아이들이 썼으리라 여겼던 시들은 시조에대한 사랑과 열정이 남달랐던 여든이 가까운 시인이 쓴 동시조였다.

사라져가는 시조를 살리고 널리 알리기위해 애쓰고 계시는데 아이들이 생소해 할 시조의 형식과 시조가 지닌 매력을

앞서 설명해 두셨다.

 

초장, 중장, 종장이 3장 12구로 이루어지는 정형시!

요새도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시조를 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손바닥을 맞아가며 시조를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맞으며 다 외운다고 지은의의 의도가 전달되는것도 아니고 숨은 뜻이 파악되는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맞기 싫어서, 숙제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외운 시조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안 잊혀지고 그 의미가 새록새록 되새겨지는 것들이 많아 그때의 손바닥

맞으며 외운 억울함이 감사함으로 느껴질 때가 왕왕있다는 것이다.

 

입에 척척 감기는 감칠맛이 오래전 3.4.3.4. 3.5.4.3 의 운율에 따라 시조를 외웠던 기억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면서

책의 시조들은 노래하듯 읽혔다.

운율의 일정한 리듬을 가르쳐 주면서 아이와 함께 소리내어 읽어보자~ 하니 동시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어떤 일체감과

반복의 운율로 인한 리듬감이 살아나 하나만 더, 하나만 더..목이 아플 때까지 읽었다.^^

 

엄마의 손등에선

고사한 냄새나고

 

우리 아가 콧등에선

코코질 냄새난다

 

난 말야

향수 대신에

이 냄새를 뿌릴까봐

 

- 우리식구 (P.51) -

 

시조에 쓰인 말들이 쉽고도 어찌나 이뿐지 저학년 아이가 읽어도 이해가 안가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 시조가 거의 없다. 

쉽고도 아름다운 말로 아이들 눈높이로 보는 세상을 재밌게 그렸다는것도 이 책의 고마움이다.

동시조를 읽히고 나서 떠오르는 느낌을 그림으로 옮겼음이 짐작되는 비뚤빼뚤한 그림들도 귀엽고 인상적이다.

 

시간 날때면 끝말 잇기가 전부였던 아이와 내가 쉽고도 재밌는 주제로 짧은 동시조에 도전하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아직은 형식에서 벗어나고 앞 뒤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시조들의 난립이지만, 동시조라는 형태의 새로운 장르를 접하고

참여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책은 언제나 나를 키우고 아이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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