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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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나 예민했던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주변에서 머뭇거리기를 반복하다가 때로는 처음부터 혼자인 게 편했던 것처럼 무정하게 굴기도 한다. 늘 그렇게 방어적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나를 가장 상처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미숙함이, 나의 서툴음이, 내 부족함이 빚어낸 상황과 내뱉은 말 가운데서 내 상처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악의는 아니었으나 내 미숙함이 누군가에게 치명상을 입힌 순간을 보게 되었을 때, 뒤늦게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순간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 어떤 상처보다 용서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 작품의 7편의 단편 중 <그 여름>, <모래로 지은 집>, <고백>이라는 세 작품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한다. 이 세 작품의 배경은 모두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그 여름>의 이경과 수이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함께 자라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고향 곳곳에 서로를 제외하고는 추억이 없을만큼 소중한 기억을 가득안고 서로 서울로 상경한다. 수이는 고등학교 내내 하던 축구도 부상으로 못하게 되고, 대학도 가지 못한 채 자동차 부품을 만지며 일하게 되지만, 수이는 결코 스스로를 부끄럽다거나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이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경은 수이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고 수이보다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사랑에게 이끌린다. 결국 이경의 이기심으로 그 깊었던 서로의 사랑은 망가지고 만다.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모래로 지은 집>은 고등학교 동창이나 얼굴도 모른 채 천리안을 통해서만 소통하다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나비와 공무, 모래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우정'은 사랑만큼 깊게 이어져 서로에게 의지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아픔을, 공무가 가진 아픔을, 부족함 없이 자란 모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단죄로 그들은 흩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한 우정이었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행동들이 치명상이 되어 그들은 흩어놓는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_ p.181

 

 

 

마지막 <고백>은 셋이 함께여서 불완전하고 외로웠지만 함께인 것이 좋았던 미주와 주나, 진희의 이야기이다. 진희의 생일 날, 진희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로 한다. 자신이 사실은 레즈비언이라는 고백과 함께 이해받기를 원했지만, 친구들은 서툰 위로조차 건네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 날, 진희는 유서 한 장 없이 죽고 말았다. 그리고 미주와 주나는 서로 마주치기를 꺼려하며 피하기만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둘의 상처인 진희의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는 비난하기 시작한다. '나의 말이 진희를 죽인거야.', '아니, 너의 경멸하는 그 표정이 진희를 죽인거야.' 그리고 그 둘은 다시 만나지 않기로 한다. 그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진실과 자신의 실수에 슬퍼할 수 밖에 없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좋을텐데. 그렇다면 상관없다고, 항상 진희 네 편이라고 말해줄텐데.'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_p.202

 

 

 

결국은 모두 의도와 달리 헤어짐을 경험한다. 서로가 없으면 안될 것처럼 모든 것을 주었던 한 시절의 관계들은 결국 끝이 오고야 만다. 이 끝은 이들의 '미숙함'에서 비롯된다. 진짜 사랑을 알지 못했던 이경의 미숙함으로 인하여,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무정하고 방어적인 태도로 사랑했던 나비의 미숙함으로,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위로해주어야할 지 알지 못해 친구의 아픔을 쓸어주지 못했던 한 순간의 미숙함이 이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게 되었다. 이들에게 악의가 있었을까.

 

아니, 나는 그저 서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되돌아 본 어떤 날들이 푸르게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내가 상대의 고통을 외면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아름답던 시절, 나는 누구의 상처를 외면하며 자라왔을까.

 

이 작품을 읽으며 내 삶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이 생각났다. 하나는 중학교 시절에 어울리던 무리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그 때도 나는 조금 무심한 편이었다. 여럿의 친구들이 모여 어울리다보면 갈등도 있을 수 있고, 감정이 상하는 순간도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번번이 그 순간을 외면했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 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는 일들이 많아졌고 나와 직접적인 큰 분쟁은 없었기에 큰 문제없이 잘 지내다 졸업을 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길을 지나다가 그 당시의 친구를 마주쳐 나는 아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나쁜 감정을 쏟아냈다. 너무 당황스러워 그 순간을 지나치듯 외면했지만 성인이 되어 돌아봤을 때 어쩌면 나의 무관심한 방관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이미  수 년이 지난 후였지만, 그 친구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용기를 내서 사과글을 남겼는데 그 친구가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낯을 많이 가려서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 한 명이 있었다. 2학년이 되면서 음악실을 가거나 체육 시간이 되었을 때 그 친구가 먼저 용기를 내서 같이 가자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와 내가 친구여서 그랬던 것 같다)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올라와 어울리던 친구들이 이미 많아서, 무심하게도 나는 그 친구를 잘 챙기지 못했는데, 결국 그 아이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하고 말았다. 꼭 그게 내 탓은 아닐 수 있지만 내가 조금 더 손내밀어주었다면 하는 생각이 내내 마음이 남는다.

 

결국 내 경우도 관계가 모두 끝이 났다. 나의 서툴고 미숙함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무심한 타입이었는데, 무심한 마음이 정말 타고난 것인지 상처받을까 두려워 방어적으로 행동한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구나 미숙함으로 인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가 때로는 내 미숙함에 비해 치명적이고 날카로울 때가 있다. 그 날카로움에 베여 여린 마음들이 부서지고 흩어져 파편이 박히면, 조건없이 마음을 주고 기댈 수록 치명상을 입게 된다. 누구나 자라면서 스스로의 미숙함으로 아프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구의 상처를 외면하며 자라왔을까.

 

이 작품을 통해 최은영 작가의 글을 처음 봤는데, 단 번에 나의 첫 번째 작가가 될 만큼 감동적이었다. 최 작가의 글은 한 번에 많은 양을 읽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문장들은 모래처럼 내 마음을 거칠게 돌아다니며 꺼끌거리다 이내 상처를 내었다. 악의는 아니었지만 그 미숙함으로 아팠던 그 순간들이 덫나고 새살이 날 때가지 이 글은 마음에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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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3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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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마음이 병들었잖아.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새끼라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금 모자라다는 소리를 듣는 장근덕은 편의점 알바를 하고 돌아와 잠든 방에서 처음보는 여성이 방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않는다. 어젯밤 내가 이 여자를 만났던가? 하지만 내가 이 예쁜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였을리 없다고 자조한다. 하지만 이렇게 방에 쓰러진 채 여자가 죽어있고, 나는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딱 범인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바보같아도 이 상황에서 경찰을 끌어들일 수 없어 시체를 혼자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아름다운 여자, 하지만 내가 살기위해 토막을 내서 아무도 모르게 처리를 해야겠다.

 

"나 좀 도와줘. 지금 빨리"

지금껏 제대로 여자 한 번 만나본 적 없지만,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믿는 오동구는 여자친구 미셸의 다급한 전화에 당황한다. 사람을 죽인 것 같아, 나를 도와줘. 아무리 살인을 저질렀어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준 여자친구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오동구는 고민끝에 미셸을 돕기로 한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성환연립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혼자 처리하기에는 너무 겁이나 친구 최준에게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미끼로 함께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미셸이 범인으로 잡혀 감옥에 가더라도 기다릴테지만, 이제야 찾은 진정한 사랑을 절대 내버려둘 수 없다.

미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를 진짜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은 정말 걔 하나뿐이었단 말이야.

 

"내가 너 도와주면 얼마 줄 건데?"

최준은 오동구를 비웃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오동구에 비해 자신은 4년자 직장인이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했고, 매월 적금도 부었고 전세금 대출도 꾸준히 갚았다. 그럼에도 세상은 항상 두렵기만 하다. 항상 더 나은 삶을 준비해왔지만 그 놈의 빌어먹을 준비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오동구로부터 시체를 함께 처리하는 조건으로 3천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어차피 바보같은 오동구를 도와주고 돈을 받거나 여차하면 신고해서 발을 뺄 요량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잠깐 눈 감으면 1년치 월급을 한 번에 벌 수 있다.

 

 


신원섭 작가의 <짐승>은 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브릿G에서 연재 당시부터 화제가 된 작품으로 등장하는 여섯 명의 중심 인물을 통해 한 명의 살인 사건을 추리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나는 연재 당시에 본 것은 아니고 최근 주변의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아서 처음 읽기 시작했다. 사실 추리소설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국 작가 중에 추리 소설을 잘 쓰는 작가는 정말 드물다.

 

서양의 추리소설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나치게 잔인한 면이 있고, 유럽의 추리 소설은 문화적인 면에서 이질감이 많이 든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정말 누구나 인정할 만큼 흥미롭고 트릭도 참신한 반면에 아직은 한국 작품 중에서 대단한 작품이다, 라고 느낀 작품은 아직 없었다. 그나마 도진기 작가의 트릭은 신선하지만 문장력은 조금 아쉬운 편인데, 신원섭 작가는 가히 트릭과 문장,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그는 분명 재능이 출중한 추리소설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작가의 첫 작품이 맞나 놀라울 정도로 속도감있게 풀어가 책을 놓을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의 차기작이 출간된다면 나는 가장 먼저 그가 하는 이야기의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래야 독자의 흥미를 장악할 수 있으니까.)
미셸이라는 여자의 살인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챕터마다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미셸의 살인 사건을 덮기 위해 나서는 오동구, 거액의 돈을 받고 돕기로한 친구 최준,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니 방 안에 한 여자가 죽어 있던 장근덕, 자신의 실수로 경찰에서 물러나 동창의 부탁으로 한 여자를 찾기 시작한 이진수.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도미애와 도미옥 자매.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함께 입양된 자매 중 첫 째 도미애는 가족의 사랑에 부응하며 성장하지만, 도미옥은 언니와 새 가족을 증오하며 성인이 되자마자 떠난다. 하지만 언니가 미혼모로 사생아를 낳고 몰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이를 빌미로 언니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그래도 핏줄이라고 돈을 요구하는 동생에게, 대신 아들을 키워주는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지불하며 살아간다.

 

등장 인물이 여섯 명이라는 것은 결코 적은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복잡하다거나 인물이 헷갈리는 것도 없이 명확한 캐릭터 설정으로 설득력있게 이야기의 중심으로 여섯 명을 끌어들인다.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묘미는 '범인을 지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섯 명의 각자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저 작가는 저마다의 사정과 욕망을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저마다의 사정을 들으며 범인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유추가 '이건 이래서 이랬어' 라는 설명도 아니고, '사실인 이럴 수 밖에 없었어'라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아니다. 단지 한 가지 소재로도 캐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환 연립, 텀블러, 진주 목걸이, 농약.
하지만 이 단어들이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작가의 선물이지, 죽음이나 트릭, 범인을 지목하는 스포일러는 아니다. 내가 이 단어를 이야기해도 책을 읽는 독자의 추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단지 독자에게 추리할 수 있는 기쁨을 작가는 충분히 던진다.

 

그럼 우리는 이제 추리를 시작해야한다.

 

- 죽은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 어떤 이유에서 장근덕의 방에 쓰러져 있는 것일까?
- 미셸은 왜 살인을 어질렀을까?
-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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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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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은 병원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직원이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다 선도병원으로 내려온 무주는 이석 덕택에 병원에 쉽게 적응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조선업의 발달로 성장해나가던 이인시는 조선업의 몰락과 함께 병원의 존폐 위기에 놓이고, 병원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새로운 프로젝트 팀을 꾸린다.

 

새 팀에 투입된 무주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장부를 살펴보다 생각지 못한 이석의 비리들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에게 아픈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진실을 폭로해야하나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무주는, 때마침 아내의 임신으로, 태어날 자신의 아이에게 당당한 아버지로 서기 위해 이석의 비리들을 비밀리에 고발한다.

 

정의를 향해 정직을 선택한 무주는 오히려 내부 고발자로 지목되며 조직 안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이석의 갑작스런 사직을 무주의 탓으로 돌리며 동료들은 무주를 멀리한다. 자기 임무에서 배제된 채 전혀 다른 보직으로 밀려나 힘들어하지만, 자신이 비리를 저지른 것이 아닌데 자신이 손해보고 도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버틴다. 내심 이석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던 중 무주의 아내는 결국 유산하고, 자신의 아픔을 남편에게 위로받지 못하고, 무주의 현실도 이해하지 못한채 서울로 향한다.

 

아내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모두 버림받은 무주 앞에 정작 비리를 저지른 이석이 다시 병원의 요직으로 복귀하는 것을 보며 무주는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윤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오늘날 이 모순은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직장 생활 초기에 나도 여러가지 비리들을 목도한 적이 있다. 온라인 사이트를 온영하는 회사였는데 매 년 결제금액이 크다보니 결제시스템 회사를 변경하면서 커미션을 받는다거나, 매출을 높게 잡아주면서 약간의 돈 또는 유흥을 댓가로 받는 수준이었다. 너무 어려서 선배들에게 지적을 하거나, 내부 고발까지는 꿈도 못꿨고, 속으로 간도 크다 싶으면서 그저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 정도로 잊고 지냈다.

 

그리고 때때로 생각했다. 나도 정직하고 싶지만, 유혹에 약한 사람이니 차라리 그럴만한 상황에 있지 말자. 그것은 누가 알까봐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불편한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적은 금액이나 적은 댓가여서 '이 정도쯤은'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이석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타락”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석이 얻은 이익은 별로 없다. 그저 지시에 따르고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거란 약간의 기대를 얻었을 뿐. 만약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거절할 수 있을까? 불의를 참지 못해서라기보다 내부고발이라는 시끄러운 일을 벌이는 것이 두려워 나 또한 쉽지않았을 것 같다.

 

'정직'이라는 가치를 가훈으로 써가며 자란 우리 세대지만, 사회 생활을 하며 우리가 정직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않다. 흔히 '정직'하고 자기 신념이 강한 사람을 융통성 없고, 뻣뻣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사회에 잘 순응하며 상황에 따라 잘 따르는 사람을 사회생활 잘한다며 추켜세우기도 한다.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윤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지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정직하고 정의로운 것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죽은 자로 하여금>의 무주는 이 불합리함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무주의 고민과 갈등 자체가 이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택하려는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이에게 떳떳하고자하는 노력.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안합니다."
환자가 작은 소리로 무주에게 말했다.

그렇게밖에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환자가 다시 숨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빼앗길 게 분명한데도
이 사람은 왜 사과부터 할까. 뭐가 미안한 걸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남고 싶은 걸까.
이렇게 악착같이 구는 이유는 뭘까.

왜 어떤 삶은 굴욕과 함께 지켜내야 하는 걸까.
무주는 복도에 놓인 응급 간이침대에 환자를 눕혔다. 보호자에게 이것은 사실상 퇴원 조치이며
다시 병실을 얻으려면 수납을 완료해야 한다고
성난 목소리로 통보했다.

보호자는 이제야 가난과 질병을 실감한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BOOK. 《죽은 자로 하여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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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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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반 사람들은 '뇌과학'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지는 않는데, 여전히 '뇌'라는 부분이 많이 연구가 되지않아 쉽게 대중들에게 알려진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뇌과학'이라는 말을 최근에 <책, 이게 뭐라고!> 팟캐스트를 통해서 처음 들었는데, <행복의 기원>을 쓰신 서은국 교수님께서 감정에 대한 설명을 하실 때였다.

 

예를 들어, 사람의 뇌는 다리를 다쳤을 때의 통증과 이별을 하고 나서 마음의 통증을 동일하게 인지한다는 표현을 듣고 처음 '뇌과학'이 궁금해졌다. 실제 실연 후 마음이 아플 때, 진통제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는 설명도 잠시 해주셨다.

 

사실 나는 이 전에 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 표현이 굉장히 와닿았는데, 나는 다리를 다쳤을 때 통증이 당연히 다리에서 느껴지는 자극(이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인가?)이라 생각했는데 따지고보면 뇌의 감정 처리라는 부분이 당연한 듯 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하여 가장 뇌과학적으로 해석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고, 특히 어렵다고 느껴지는 의학이지만 책 자체는 어렵지않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었다.

 

뇌는 왜 불안해하는가
'생각을 하게하는 뇌' 전전두피질은 가장 최근에 진화했으며, 어떤 동물보다 인간의 뇌에 크게 진화했는데 덕분에 인간은 진화에 유리했지만, 반대로 우울할 때 걱정, 죄의식, 수치심, 우유부단 등의 감정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전전두피질은 불안이나 감정을 '생각하는 기능'을 하고, 변연계는 불안이나 걱정을 '느끼도록' 기능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 내가 노력한 것보다 쉽게 얻은 좋은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사건들만 기억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연계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하는 해마와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가 있는데, 해마는 맥락 의존적으로 기억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긴밀히 관련된 일을 더 쉽게 기억한다는 의미로, 맥락이 '우울'하면 행복한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남보다 더 감정적인 뇌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특히 '감정 정보'를 더 오래 붙잡고 있는데, 한 실험에 의하면 일반 사람에 비해 편도체 활동이 2-3배 정도 높았다고 한다. 편도체 활동이 활발하여 감정 정보를 오래 매달리게 되면 불안과 함께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우울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읽어봤다. 사람은 누구나 '우울하다'고 느끼는 시점이 있고, 때론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가 걸리기도 한다. 그 때 내 뇌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울증의 하강나선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무척 어렵다. 나는 작년에 한 회사에서 근무 후 퇴사하면서 온 몸과 마음을 소진한 것 같은 기분을 경험했는데, 흔히 번아웃이라고 불리는 증후군이었다. (실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라고한다.) 그 때 나는 딱 '우울증의 하강나선' 상에 있었는데, 무슨 말을 들어도 부정적으로 해석되고, 얼마 전까지 경험한 즐거웠던 경험이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다운되서 슬퍼진다기보다는 무기력에 가까운 증상이었는데 이 때를 떠올리며 책을 읽어봤을 때 그 당시 내 뇌에서 일어난 반응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해마에서는 저장되어 비슷한 사람을 만나거나,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나의 편도체는 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며 위험 신호를 보내고 나를 하강나선상에 올라서게 했다. '우울증'은 보이지않는 늪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진화심리학자 교수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현대의 우울증이나 기분장애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물었다. 우리의 신체와 뇌의 부분은 나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우울증도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스스로의 딜레마에 빠졌을 때 그 딜레마를 빠져나오기 위해 집중하는 시기로 볼 수 있고, 이 시기에는 자신의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 분석적인 뇌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방어기제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 행동은 이해할 수 없고, 벗어나기 어려워도 반드시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부분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거나 '누구나 그렇게 살아'라거나 기타 등등 단순한 기분의 하강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울증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조절할 수 없는 질병으로 뇌 신경과 호르몬의 변화로 인하여 일어나는 증상이다. 그래서 우울증에 빠진 누군가의 곁에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고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뇌는 계속해서 우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너무 힘겹게만 느껴진다.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지만 운동할 기분이 아니다. 밤에 잘 자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불면증이 방해한다. 친구들과 무언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데 즐거워 보이는 일은 하나도 없고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 뇌는 그 상태에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은 중력처럼 인정사정 보지 않고 밑으로만 끌어당긴다. 기분은 사발 바닥에 놓인 구슬처럼 어디로 굴려도 늘 아래로 굴러 내려오고 만다. _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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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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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빈민가에서 엄마의 얼굴도 자신의 진짜 나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모모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또한 이 소년을 둘러싼 사람들 역시 모두 사회의 중심에서 소외된 존재다.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엉덩이로 벌어먹으며’ 살아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낳은 모모같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본다.

 

아랫집에 사는 롤라 아줌마는 남녀의 성징을 한몸에 지녀 매춘으로 먹고 살며, 친구도 가족도 없이 세상에서 잊혀가는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의 유일한 친구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조숙한 소년 모모, 그는 점점 늙고 정신을 잃어가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어느 날, 찾아온 모모의 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엄마를 죽이고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이제야 죽기 전에 아들 얼굴을 보겠다며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열 네살임을 알게 된다.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어린 그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힘들다고 주저앉아 운다면, 발버둥치며 제발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다행이라 여겼을 것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힘이 드는 것은 '어린 모모'가 그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고 무시당하는 남루한 삶 속에서도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해 사랑을 주고받는 모모의 모습은 단 한 줄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 가혹하고 고된 삶에서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그렇다,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한다.

 


모모는 오늘도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산다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의문이 든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것은 또한 내가 가진 딜레마이자, 오랜 궁금증이기도 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도 이렇게나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어,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으로 태어나 수용소에 끌려가 여전히 경찰과 군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고, 살기 위해 매춘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매춘부들의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면서도 로자 아줌마는 매일같이 자신의 삶을 서러워하며 운다. 이 고통스러운 삶에 죽음이 닥쳐오자 그녀는 정신을 놓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린다. 이것으로 그녀의 삶을 다 말할 수 없겠지만 객관적인 그녀의 삶의 무게이다.

모모의 삶, 롤라의 삶, 하밀 할아버지의 삶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주연이었던 그들의 삶이 있다. 주연이었던 그들의 삶이 내가 보기에는 무거운 짐같은 것이다. 어떤 누가 이런 삶을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이 아름답다고, 그래서 그의 고된 삶도 빛이 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이런 딜레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불행을, 행복을 어딘가에 기준삼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삶이 너무 고되다고 느꼈다. 내가 사랑받고, 사랑하고, 배우고, 나누는 것보다 내가 짊어져야할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최근에야 고민해보니 오래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무게를 물려받은 고등학생 장녀였다. 누군가 나에게 책임을 쥐어주지도,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삶은 늘 그랬다. 그저 무거웠다. 내가 평생 어깨에 짊어져야할 몫이. 그래서 나는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아버지의, 가장의 무게를. 매일 손에 사들고 오던 간식이 그 날의 고됨을 말해주고, 쑥쑥 자라는 나를 위해 이 삶을 견뎠음을.

 


명작이란 무엇일까?
명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딜레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어쩌면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 삶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음을.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도 내 아버지를 그리워함은 내가 그 사랑을 받고 영양삼아 자랐기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밖에도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 동네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자랐다. 모모처럼-


그럼 다시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면,

어떤 누가 이런 삶을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나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통해 스스로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세상에 상처를 받아가며, 그리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법을 배워가며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이자 '가치'가 아닐까?


처절하고 고독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올리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손내미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줄 아는 것. 그래서 우리는 '사랑'없이 살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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