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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3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평점 :

"넌 마음이 병들었잖아.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새끼라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금 모자라다는 소리를 듣는 장근덕은 편의점 알바를 하고 돌아와 잠든 방에서 처음보는 여성이 방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않는다. 어젯밤 내가 이 여자를 만났던가? 하지만 내가 이 예쁜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였을리 없다고 자조한다. 하지만 이렇게 방에 쓰러진 채 여자가 죽어있고, 나는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딱 범인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바보같아도 이 상황에서 경찰을 끌어들일 수 없어 시체를 혼자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아름다운 여자, 하지만 내가 살기위해 토막을 내서 아무도 모르게 처리를 해야겠다.
"나 좀 도와줘. 지금 빨리"
지금껏 제대로 여자 한 번 만나본 적 없지만,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믿는 오동구는 여자친구 미셸의 다급한 전화에 당황한다. 사람을 죽인 것 같아, 나를 도와줘. 아무리 살인을 저질렀어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준 여자친구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오동구는 고민끝에 미셸을 돕기로 한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성환연립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혼자 처리하기에는 너무 겁이나 친구 최준에게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미끼로 함께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미셸이 범인으로 잡혀 감옥에 가더라도 기다릴테지만, 이제야 찾은 진정한 사랑을 절대 내버려둘 수 없다.
미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를 진짜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은 정말 걔 하나뿐이었단 말이야.
"내가 너 도와주면 얼마 줄 건데?"
최준은 오동구를 비웃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오동구에 비해 자신은 4년자 직장인이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했고, 매월 적금도 부었고 전세금 대출도 꾸준히 갚았다. 그럼에도 세상은 항상 두렵기만 하다. 항상 더 나은 삶을 준비해왔지만 그 놈의 빌어먹을 준비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오동구로부터 시체를 함께 처리하는 조건으로 3천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어차피 바보같은 오동구를 도와주고 돈을 받거나 여차하면 신고해서 발을 뺄 요량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잠깐 눈 감으면 1년치 월급을 한 번에 벌 수 있다.
신원섭 작가의 <짐승>은 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브릿G에서 연재 당시부터 화제가 된 작품으로 등장하는 여섯 명의 중심 인물을 통해 한 명의 살인 사건을 추리하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나는 연재 당시에 본 것은 아니고 최근 주변의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아서 처음 읽기 시작했다. 사실 추리소설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국 작가 중에 추리 소설을 잘 쓰는 작가는 정말 드물다.
서양의 추리소설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나치게 잔인한 면이 있고, 유럽의 추리 소설은 문화적인 면에서 이질감이 많이 든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정말 누구나 인정할 만큼 흥미롭고 트릭도 참신한 반면에 아직은 한국 작품 중에서 대단한 작품이다, 라고 느낀 작품은 아직 없었다. 그나마 도진기 작가의 트릭은 신선하지만 문장력은 조금 아쉬운 편인데, 신원섭 작가는 가히 트릭과 문장,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그는 분명 재능이 출중한 추리소설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작가의 첫 작품이 맞나 놀라울 정도로 속도감있게 풀어가 책을 놓을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의 차기작이 출간된다면 나는 가장 먼저 그가 하는 이야기의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래야 독자의 흥미를 장악할 수 있으니까.)
미셸이라는 여자의 살인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챕터마다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미셸의 살인 사건을 덮기 위해 나서는 오동구, 거액의 돈을 받고 돕기로한 친구 최준,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니 방 안에 한 여자가 죽어 있던 장근덕, 자신의 실수로 경찰에서 물러나 동창의 부탁으로 한 여자를 찾기 시작한 이진수.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도미애와 도미옥 자매.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함께 입양된 자매 중 첫 째 도미애는 가족의 사랑에 부응하며 성장하지만, 도미옥은 언니와 새 가족을 증오하며 성인이 되자마자 떠난다. 하지만 언니가 미혼모로 사생아를 낳고 몰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 이를 빌미로 언니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그래도 핏줄이라고 돈을 요구하는 동생에게, 대신 아들을 키워주는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지불하며 살아간다.
등장 인물이 여섯 명이라는 것은 결코 적은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이 복잡하다거나 인물이 헷갈리는 것도 없이 명확한 캐릭터 설정으로 설득력있게 이야기의 중심으로 여섯 명을 끌어들인다.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묘미는 '범인을 지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섯 명의 각자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저 작가는 저마다의 사정과 욕망을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저마다의 사정을 들으며 범인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유추가 '이건 이래서 이랬어' 라는 설명도 아니고, '사실인 이럴 수 밖에 없었어'라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아니다. 단지 한 가지 소재로도 캐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환 연립, 텀블러, 진주 목걸이, 농약.
하지만 이 단어들이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작가의 선물이지, 죽음이나 트릭, 범인을 지목하는 스포일러는 아니다. 내가 이 단어를 이야기해도 책을 읽는 독자의 추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단지 독자에게 추리할 수 있는 기쁨을 작가는 충분히 던진다.
그럼 우리는 이제 추리를 시작해야한다.
- 죽은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 어떤 이유에서 장근덕의 방에 쓰러져 있는 것일까?
- 미셸은 왜 살인을 어질렀을까?
-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