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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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빈민가에서 엄마의 얼굴도 자신의 진짜 나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모모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또한 이 소년을 둘러싼 사람들 역시 모두 사회의 중심에서 소외된 존재다. 모모를 돌보는 로자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엉덩이로 벌어먹으며’ 살아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낳은 모모같이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본다.

 

아랫집에 사는 롤라 아줌마는 남녀의 성징을 한몸에 지녀 매춘으로 먹고 살며, 친구도 가족도 없이 세상에서 잊혀가는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의 유일한 친구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조숙한 소년 모모, 그는 점점 늙고 정신을 잃어가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어느 날, 찾아온 모모의 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엄마를 죽이고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이제야 죽기 전에 아들 얼굴을 보겠다며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열 네살임을 알게 된다.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어린 그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힘들다고 주저앉아 운다면, 발버둥치며 제발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다행이라 여겼을 것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힘이 드는 것은 '어린 모모'가 그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고 무시당하는 남루한 삶 속에서도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해 사랑을 주고받는 모모의 모습은 단 한 줄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 가혹하고 고된 삶에서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그렇다,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한다.

 


모모는 오늘도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산다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의문이 든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것은 또한 내가 가진 딜레마이자, 오랜 궁금증이기도 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도 이렇게나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어,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으로 태어나 수용소에 끌려가 여전히 경찰과 군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고, 살기 위해 매춘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매춘부들의 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면서도 로자 아줌마는 매일같이 자신의 삶을 서러워하며 운다. 이 고통스러운 삶에 죽음이 닥쳐오자 그녀는 정신을 놓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린다. 이것으로 그녀의 삶을 다 말할 수 없겠지만 객관적인 그녀의 삶의 무게이다.

모모의 삶, 롤라의 삶, 하밀 할아버지의 삶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주연이었던 그들의 삶이 있다. 주연이었던 그들의 삶이 내가 보기에는 무거운 짐같은 것이다. 어떤 누가 이런 삶을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이 아름답다고, 그래서 그의 고된 삶도 빛이 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이런 딜레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불행을, 행복을 어딘가에 기준삼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삶이 너무 고되다고 느꼈다. 내가 사랑받고, 사랑하고, 배우고, 나누는 것보다 내가 짊어져야할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최근에야 고민해보니 오래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무게를 물려받은 고등학생 장녀였다. 누군가 나에게 책임을 쥐어주지도,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삶은 늘 그랬다. 그저 무거웠다. 내가 평생 어깨에 짊어져야할 몫이. 그래서 나는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아버지의, 가장의 무게를. 매일 손에 사들고 오던 간식이 그 날의 고됨을 말해주고, 쑥쑥 자라는 나를 위해 이 삶을 견뎠음을.

 


명작이란 무엇일까?
명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딜레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어쩌면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 삶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음을.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도 내 아버지를 그리워함은 내가 그 사랑을 받고 영양삼아 자랐기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밖에도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 동네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자랐다. 모모처럼-


그럼 다시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면,

어떤 누가 이런 삶을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나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통해 스스로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세상에 상처를 받아가며, 그리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법을 배워가며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이자 '가치'가 아닐까?


처절하고 고독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올리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손내미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줄 아는 것. 그래서 우리는 '사랑'없이 살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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