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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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이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_p.62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 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는 러시아 황제에게서 박해받은 불쌍한 <폴라켄>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유대인 혈통>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_p.81

 

 

 


 

『동급생』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친구가 있었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중학교 첫 입학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교실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 친구들을 훑어보던 그 기분이 어찌나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그 친구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서로를 끌어 당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와는 대학교 졸업즈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교를 하면 서로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만화책을 나누어 읽으며 재잘거리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미스터 케이 편지지를 같이 사서 오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또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수줍고 진지했던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친구와 연락이 끊어진 것은 대학교 졸업즈음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우리는 그동안 꽤 많이 컸고 성인이 되어가는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견디고 극복해가며 각자 신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옷을 입고 공부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된 성격과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굽힐 줄 몰랐다. 나는 그 당시 스스로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나에게 너무 소중한 친구였는데 나는 조금도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두운 공원 벤치에 앉아 종이컵에 소주를 말없이 나누어 마셨던 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 친구는 음악을 하는 남자와 사귀었는데 종종 남자 친구에게 맞고 울면서 나를 찾아왔고, 이해할 수 없는 관계들을 맺고는 스스로 상처받고 움츠러들었다. 넌 나에게 소중한 친구인데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는 뻔한 말, 스스로 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며 나는 스스로 좋은 친구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맞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매달렸는지에 대해, 왜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하면서 지냈는지에 대해. 지금 네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어느 날 문득 이 친구가 세상에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이후로 드물게 걸어봤던 전화를 더이상 걸지 않았다.

 

유대인 소년 한스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가장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히틀러를 신뢰하고 두둔하는 편지를 받았을 때 그는 어땠을까,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은 자신이 믿었던 신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어떤 마음으로 한스를 떠올렸을까. 내 마음과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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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소설의 첫 만남 13
정세랑 지음, 최영훈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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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처럼 비기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길 수 없으면 비기기라도 하는 삶, 그 때껏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었지만 말이다.

도깨비가 나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가슴으로 확 내 가슴을 밀고 들어왔고, 그 바람에 깨진 고둥 껍데기가 그만 내 바람막이를 뚫었다. 그 비싼 로고 위에, 로고를 지우며 구멍이.

그리고 그 구멍에서 신경질이 솟구쳤다. 그냥 신경질이 아니었다. 이십몇 년 어치의 신경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제대로 신경질을 내 본 적이. 나의 무겁고 둥근 몸, 그런 몸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면 모두 꼴사납다 여겼으므로.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부모가 키우지 않은 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으므로. 내가 먼저 구기고 숨기고 모른 척했던 신경질이었다. 화를 낸 적은 있었어도 신경질을 낸 적은 없었다.

"야 니 X새야, 할머니가 사 준 바람막이란 말이야! 아, 진짜 나도 좀 살자!"

BOOK.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 중에서


 


가족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주인공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소년은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60킬로그램을 넘겼고 고등학생 때는 100킬로그램을 훌쩍 넘겼다. 그냥 뚱뚱한 아이였지만 고등학교 씨름부에서 훈련받으며 처음으로 행운과 행복을 경험한다.

씨름으로 할머니 노후를 책임지고 싶었지만, 프로 씨름 선수로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홍대의 '청기와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장은 오래 전부터 씨름을 좋아해서인지 주인공을 살갑게 잘 챙겼다.

그러던 어느 날, 주유소 점장님은 주인공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자신의 양자가 되어 달라는 것. 그리고 한밤중에 청기와주유소가 있던 자리에서 도깨비와 씨름을 해 50년 만에 한 번씩 있는 이 씨름 대결에서 이겨 달라는 것.

옛이야기 중 기묘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당시 해석하기 어려운 '초자연' 적인 현상들을 보고 상상력을 보탠 것이 많다. 도깨비 씨름 이야기도 '도깨비불'에 대한 두려움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세랑 작가의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은 지극히 현대적인, 서울의 한복판 홍대를 배경으로 도깨비와 씨름을 한다.

세상에는 '열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 투성이다. 때로는 그 열심에 행운 한 줌은 있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것,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신경질 한 번 내보지 못한 주인공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도깨비 씨름'은 그에게 찾아온 행운이였고, 통쾌한 인생 역전극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은 모두의 꿈인 걸까. 이 쾌감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나도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행운이 한 번쯤 찾아와 내 인생도 역전되길 바라며 도깨비를 이겨주길 응원했다. 역시 정세랑 작가는 일단 믿고 보는 작가인 것으로!

"아 진짜, 나도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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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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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추리소설 작가 가브리엘 웰즈는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비스트로로 가던 중 갑자기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의사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을 의아해하던 중 영매 뤼시 필리피니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더이상 거울에 모습이 비치지도 않을 뿐더러 창문에서 띄어내려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 죽은 것이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타살'이라고 확신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매 뤼시와 함께 몇몇 용의자를 떠올리며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1. '죽음'의 순간 -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이냐스 웰즈'와 가브리엘 웰즈'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두 가지 형태의 죽음을 보여준다. 가브리엘은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의 진실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라는 생각에 저승을 떠나지 못한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자신은 아직 죽음을 원하지 않았고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할아버지 이냐스 웰즈는 갑자기 심장 마비로 병원에 입원하여 온종일 침대에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온몸에 욕창이 생기고 폐에 물이 차고 숨을 쉬기도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것도 실패로 돌아가 손목과 발목이 침대에 묶인채 생명만 유지하게 되었다. 제발 죽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냐스의 의사와 달리 연명치료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병원 침대에 묶인 채 마지막 날들을 보내다 평소보다 가죽끈이 헐거운 걸 발견하고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들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원했고, 끝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냐스는 '죽음' 이후의 삶은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죽음은 실패이고 출생은 승리하고 생각하지. 죽음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과 연결 짓고 출생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정반대야.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는거지. 반대로, 곰곰히 따져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야. (중략) 저승에서 살다보니 갈수록 그런 확신이 드는구나. 죽음은 해방인 반면 출생은 자신을 꽃피우기 힘든 억압적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져. 결국 내가 진정 누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실패한 삶을 살 위험이 큰 거지" (1권, p.232)

 

 

2. '죽음' 이후 - "삶은 그냥저냥 맥 빠지지 않게 끝나는 한마디 농담에 불과할지도 몰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존재했고, 지금도 누구에게나 가장 강렬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주는 주제일 것이다. 성경에는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 했고 그 이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고 했다. 그 외에 대다수의 종교에서도 죽음 이후의 '혼'의 형태로 사는 죽은 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최근 내한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영매를 통해 아버지와 소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먼훗날 아들(베르나르)이 저승에 올 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되면 포도가 들어간 디저트를 만들어 먹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디저트는 가족들만 알 수 있는 메뉴였기 때문에 영매를 통해 소통한 아버지와의 대화에 대해 무척 놀랍고 신기한 경험으로 말했다. 이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실제 영매들과 소통하며 환생하지 않고 머무리는 영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가브리엘은 죽은 후 영매인 뤼시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혼의 형태로 날아다니며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고, 수십 년전 죽은 할아버지 이냐스와 공조한다. 이냐스는 인기 추리 작가인 손자를 자랑스럽게 여겨 저승에서 코넌 도일에게 손자의 작품을 읽어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뤼시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의뢰인이 가족 뿐 아니라 나폴레옹, 에디슨 등 다양한 인물들을 소환한다. 뿐만 아니라 떠돌이 영혼들을 그들이 원하는 좋은 조건의 환생을 제안하고, 그들이 환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든 영혼으로 머물 수 있고, 시공간과 형태에 제한받지 않고 머무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죽음 이후의 세계와 영혼으로 머무는 형태는 새로운 상상력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영매를 통한 소통과 교류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조금 독특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3. 좋은 문학이란 , '작가의 책임'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죽음』 의 이야기 중 재미있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것은 바로 흔히 '순수 문학'이라고 부르는 문학과 '장르 문학'의 충돌로 이들의 전쟁을 통해 좋은 문학과 작가의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도권 작가들은 '문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거대한 따분함의 파도를 밀어 보내고, 장르 문학 작가들은 자신의 작중 인물들을 통해 전쟁에 임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아시모프이 로봇,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에드러 앨런 포의 까마귀가 코난 도일의 까마귀가 부리 공격으로 맞서며 주인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일세. 이야기꾼들이지.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이란 구분은 애당초 없네. 그저 상상력의 문학에는 문체와 심리 묘사가, 문체를 중시하는 문학에는 상상력과 환상이 필요한 것뿐일세. 내용과 형식은 상반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니까. 나는 모든 문학이 예외 없이 존중받고 수호돼야 한다고 믿게 됐네. 다양성이 곧 우리의 힘이야. 특정 문학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세. 나쁜 장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게 만드는 나쁜 작가가 있을 뿐이지. (중략) 미래 세대가 책과 가까워지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는 걸 잊지 말아. 절대 적을 혼동하지 말게. (p.259)

 

이러한 전쟁을 통해 작가는 작품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독자를 책 앞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가브리엘이 죽기 전 날, 비평가와의 대담에서도 이들은 동일한 주제로 논쟁을 벌인다. 비평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이며, 상상력만으로 구성된 가브리엘의 소설은 '작품'이 아니라고 모욕을 준다. 그때도 가브리엘은 나의 적은 비평가가 아니라,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작품'은 존재한다. 그것은 분명 '문체'만을 중요시하는 어려운 문학도 아니고, '상상력'을 중요시하여 새로운 줄거리를 선보이는 문학도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두 가지 모두 다양성의 측면에서 존재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글로 된 모든 텍스트는 '문학'일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의 의견과는 조금 다르다. 문체 중심의 순수 문학에서도 재미있는 줄거리가 존재할 수 있고, 상상력 중심의 장르 문학에서도 작가만의 문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느냐, 세대를 아울러 인간이라면 고민하게 되는 질문을 품고 있는가 아닐까. 시대에 따라 어떤 작품은 논란과 비난의 중심에 설 수 있다. 그렇지만 작가라면 그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장르가 다른 작가들이 서로 대립해나가면서 '문학'이라는 테두리를 넓혀가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4. 진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우리의 삶이,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맥 빠지지 않게 끝나는 한마디 농담에 불과하다면 진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브리엘은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모종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해봐야 해요.(p.198)

 

자네 재능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나? 토마와 쌍둥이 형제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야. 자네 할아버지의 연명 치료를 지켜보는 게, 기자 시절에 폭로성 기사들을 실었다가 비방에 해고까지 당한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지. 자네의 소설 작업이 폄훼되는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야. 그 모든 고통의 경험이 자네한테 영감을 줬고, 반항적 기질의 원천이 됐던 거야. (p.285)

 

『죽음』 에는 인간의 생각이 '정신'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는 '육체에 정신이 깃든 상태' 일 뿐 '죽는다'는 행위가 충격적인 종말에 이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은 왜 존재하는가? 작가는 '진정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살아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전쟁과 가난, 고통 속에 머물 수 있다. 때론 정의롭지 못한 일의 피해자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가는 일들, 그것들이 설령 불합리하더라도 그것들을 통해 지금의 내가 빚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진정한 나'란 내가 살아오며 선택하고 실수하고 배워가며 자란 지금의 모습이며 그것이 곧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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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관점이 독자로서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부분들도 있다. 우선 '죽음'에 대하여 작가는이냐스를 통해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는거지. 반대로, 곰곰히 따져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야."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순수한 영혼'의 상태에 머무르기를 갈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뤼시와 뤼시를 통해 환생의 길을 인도하는 상부는 왜 영혼들을 설득해서 '환생'을 권하는 것일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설정이 설명되지 않아 아쉽다.

 

가브리엘이 상위 아스트랄계를 통해 만난 노파는(아마도 폭스자매) 많은 영혼들이 환생하지 않으려함이 문제라고 걱정한다. 너무 많은 영혼들이 머물러 인간들과 소통하면 산 자들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더구나 가브리엘이 쓴 <천 살 인간>의 내용으로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어 '생명이 연장되는 것'을 우려하여 신이 직접 가브리엘을 죽였다고 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신'이 우리의 환생길을 관리하고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대사 중 '세계가 지금의 모습인 것에 이유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상부를 믿으라'는 말과 배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브리엘이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가브리엘 윌즈'(영혼)의 존재로 계속 머물겠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작품 <천 살 인간>을 신이 원하는 대로 고치겠다고 말한다. 과학적 내용을 줄이고 액션과 감정을 극대화한 후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지각있는 삶, 이타적인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도록 여기게 메시지를 넣겠다는 것이다. 진실을 쓸 것도 아니라면 굳이 왜 영혼으로 남아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일까. <천 살 인간>을 다시 쓰는 것 외에 가브리엘이 영혼으로 남겠다고 하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것과 무관할까? '이해는 각자의 몫'이니까?(p.299)​

 

뿐만 아니라, 줄거리가 중요한 인기 추리 작가 가브리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인지 『죽음』 에도 문체는 없고 상상력을 중심으로한 줄거리 밖에 없다.(그런데 이러한 상상력이 무척 기발한 것도 아니다.) 일인칭 시점의 한계일 수밖에 없지만 모든 진실과 작가가 하고자하는 말이 독자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상황적 묘사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취한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다보니 죽은 작가들이 '좋은 문학'에 대한 견해를 두고 싸우는 부분도, 상위 아스트랄계 신과 가브리엘이 만나 대화하는 부분도 그저 유치하게 들린다.

 

개인적으로 『죽음』 은 굉장히 실망한 맥빠지는 소설. 작가 스스로 자신이 만든 세계관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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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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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기를 끌던 가수들처럼 칼머리를 하고 커다란 옷을 입고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나도 그 아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이반’이라고 불렸다. 당시에 난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몰랐다. 하지만 이반이라는 말은 잘 알고 있었다. 여자끼리 사귀는 아이들은 전부 이반이라고 불렸다. _p.18

 

민선 선배를 만나기 전 나는 자신의 성격이나 자질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본 일이 없었다.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들이 일러 준 나의 모습을 받아들여 그것이 나의 특성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 수 없어졌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삶이 나의 기질과 어울리는지. 사람들의 시선과 모르는 사람들의 존경, 가상의 기대와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살게 될까.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_p.131

 

그때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희를 한심하다고 여겼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그 애를 비웃었다. 그건 그저 유행이었다고, 그뿐이었다고 못받아 주고 싶었다. 여자 아이들 집단에서 너는 남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었던 거라고 말이다. 나는 또 이렇게도 말해 주고 싶었다. 정신 차리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_p.158

 

긴 시간 동안 이 해변은 내게 쓰라린 장소로 남아 있었다. 오래전 민선 선배는 이 모래밭에 "사랑해!!"라고 썼다. 그때 난 열여덟 살이었고, 선배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 장면은 내 인생에서 뼈아픈 실패를 뜻했고, 떠올릴 때마다 쓰라린 좌절을 안겨 주었다. 난 선배를 원망했었다. 과녁을 맞힐 수도 있었을 그 말을 환한 햇살 아래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그래서 더이상 무엇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선배를 원망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이 글의 후반부를 쓰고 매만지는 동안 나는 그 장면이 더 이상 내게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_p.167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1990년대 후반부터 H.O.T와 젝스키스, 신화로 이어지는 아이돌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를 중심으로 '팬픽'이 유행했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동성애 문화가 은밀하고 만연하게 퍼졌다. 이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청소년 문화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의미로 '이반'이라고 불리길 원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시대의 중심에 나도 있었다.

 

『항구의 사랑』은 단 한 번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와 동일한 시대에 성장한 소녀 '나'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축제 때 연극부에 참여한 '나'는 생기발랄하고 매력적인 '민선 선배'를 만나고 우정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가장 절친한 친구인 규원은 민선 선배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게 신기해서 나와의 관계를 그저 즐기는 거라고 말하지만, 점점 선배와 가까워지고 서울의 대학에 입학해 같이 살기로 약속하면서 선배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민선 선배에게 빠져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잃었고, 선배와의 소소한 행복만을 바라고 꿈꾸었다.

 

민선 선배의 수능이 끝나고 찾은 바다에서 선배는 모래밭에 "사랑해!!"라고 적으며 밝게 웃었고, 나는 처음으로 선배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후로 선배는 만나주지도,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어떻게 몰랐을 수 있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언덕길을 올라 선배의 집 앞에서 밤이 늦도록 기다려도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민선 선배는 대학에 입학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나' 또한 서울의 대학에 입학하며 목포를 떠났고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과 애인이 된 남자 선배에게 과거에 자신이 여자와 사랑에 빠졌던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때 유행처럼 지나간 일로 여겨졌고, 그때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영영 그 시절을 묻어 두고 살 것 같던 어느 날, 칼머리에 힙합바지를 입은 고등학교 친구 인희가 찾아온다. '나'는 내심 과거에 머물러있는 인희를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여기며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처럼 여긴다. 그런 '나'에게 인희는 묻는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성인이 된 나 또한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마음 속으로 그 시절에 우리가 겪었던 서툴고 충동적이었던 감정들을 유행처럼 지나가는 '어떤 일'로 여겼다. 그리고 그때 내 친구들 또한 성인이 되어 하나둘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그 누구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수 년전에 나에게도 인희처럼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한 친구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아이의 감정을 어떻게 여겼던가. 대뜸 자신이 교제하고 있던 '여자'와 관계를 털어놓던 그 친구를 향해 나 또한 '이 친구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한심하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이제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이제는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 희미한 얼굴들, 하지만 그 때 우리가 나누었던 고민과 대화들은 얼마나 진지했던가. 그리고 일반인과 다르고 싶었던 '이반'이란 이름 밖으로 성장했을 때, 자신의 평범함과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때 그건 다 뭐였을까?
민선 선배를 향한 맹목적이었던 사랑, 선생님의 관심을 얻기 위해 계단에서 뛰어내리던 경미의 사랑, 내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인희의 사랑,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그 불완전하고 미성숙했던 감정들. 그 시간들은 우리가 모두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묻어두어야 할 의미없는 시간이었을까?

 

우정이라기엔 진지했고, 사랑이라기엔 미성숙했던 미성년 소녀들의 그때 그 감정은 다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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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가 지켜 줄게 웅진 모두의 그림책 20
고정순 지음 / 웅진주니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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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보면, 갈색으로 여러 질 구성된 전래동화 전집이 생각난다. 그 그림책들이 낡고 헤질 때까지 읽었는데 그 중에서 <인어공주>를 가장 좋아했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기고 물거품이 되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좋아해서 늘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책장에 전집을 숫자 순서대로 꽂아놓으면 인어공주만 낡아 눈에 띄었다.

내가 처음 샀던 책은 <선생님 미워, 진짜진짜 미워> 였다. 당시 '진짜진짜 미워' 시리즈가 꽤 유행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5학년 쯤, 동네 서점에 가서 3시간은 족히 고르고 골라서 집어왔던 책이었다. 선생님이 딱히 미워서(?) 공감하는 마음에 골랐던 건 아닌데 그 후로도 심심하면 꺼내 읽는 책이었고, 성인이 될 때까지 가끔 꺼내 읽어보기도 했다. (이 시리즈 아는 분 없나요?!☺️)

어른이 되어서 다른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에 대한 감정이나 처음 책을 고를 때 느꼈던 고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소중한 기억.

이수지 작가의 <아빠, 나한테 물어봐>라는 작품도 좋아하는데 이번에 친구가 보내준 <아빠는 내가 지켜줄게> 를 보니 그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 그림책 속 아빠의 모습은 듬직한 가장의 모습 정도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요즘 책 속 아빠의 모습은 꽤 다양해진 것 같다.

 

- 아빠, 지켜주는 게 뭐야?

- 지켜 준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게 도와주는 거야. 우산 같은거야.

재미있는 것은 아이가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이다.

아빠를 힘들지 않게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쉬는 날마다 아빠 늦잠 잘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

- 아빠 양말 뒤집어 주는 로봇도 만들어 줄게!

- 아빠가 좋아하는 휴대폰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도 키울거야.

사람마다 지닌 표현력과 말주변은 다르지만, 내가 어릴 때 읽던 책들에 비하면 분명 감정 표현이 훨씬 자유롭고 솔직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고, 보고, 표현하며 자란 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랄까. 마음이 반짝거리는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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