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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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추리소설 작가 가브리엘 웰즈는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비스트로로 가던 중 갑자기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의사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을 의아해하던 중 영매 뤼시 필리피니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더이상 거울에 모습이 비치지도 않을 뿐더러 창문에서 띄어내려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 죽은 것이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타살'이라고 확신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매 뤼시와 함께 몇몇 용의자를 떠올리며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1. '죽음'의 순간 -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이냐스 웰즈'와 가브리엘 웰즈'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두 가지 형태의 죽음을 보여준다. 가브리엘은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의 진실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라는 생각에 저승을 떠나지 못한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자신은 아직 죽음을 원하지 않았고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할아버지 이냐스 웰즈는 갑자기 심장 마비로 병원에 입원하여 온종일 침대에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온몸에 욕창이 생기고 폐에 물이 차고 숨을 쉬기도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것도 실패로 돌아가 손목과 발목이 침대에 묶인채 생명만 유지하게 되었다. 제발 죽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냐스의 의사와 달리 연명치료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병원 침대에 묶인 채 마지막 날들을 보내다 평소보다 가죽끈이 헐거운 걸 발견하고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들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원했고, 끝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냐스는 '죽음' 이후의 삶은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죽음은 실패이고 출생은 승리하고 생각하지. 죽음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과 연결 짓고 출생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정반대야.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는거지. 반대로, 곰곰히 따져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야. (중략) 저승에서 살다보니 갈수록 그런 확신이 드는구나. 죽음은 해방인 반면 출생은 자신을 꽃피우기 힘든 억압적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져. 결국 내가 진정 누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실패한 삶을 살 위험이 큰 거지" (1권, p.232)

 

 

2. '죽음' 이후 - "삶은 그냥저냥 맥 빠지지 않게 끝나는 한마디 농담에 불과할지도 몰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존재했고, 지금도 누구에게나 가장 강렬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주는 주제일 것이다. 성경에는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 했고 그 이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고 했다. 그 외에 대다수의 종교에서도 죽음 이후의 '혼'의 형태로 사는 죽은 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최근 내한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영매를 통해 아버지와 소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먼훗날 아들(베르나르)이 저승에 올 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되면 포도가 들어간 디저트를 만들어 먹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디저트는 가족들만 알 수 있는 메뉴였기 때문에 영매를 통해 소통한 아버지와의 대화에 대해 무척 놀랍고 신기한 경험으로 말했다. 이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실제 영매들과 소통하며 환생하지 않고 머무리는 영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가브리엘은 죽은 후 영매인 뤼시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혼의 형태로 날아다니며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고, 수십 년전 죽은 할아버지 이냐스와 공조한다. 이냐스는 인기 추리 작가인 손자를 자랑스럽게 여겨 저승에서 코넌 도일에게 손자의 작품을 읽어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뤼시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의뢰인이 가족 뿐 아니라 나폴레옹, 에디슨 등 다양한 인물들을 소환한다. 뿐만 아니라 떠돌이 영혼들을 그들이 원하는 좋은 조건의 환생을 제안하고, 그들이 환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든 영혼으로 머물 수 있고, 시공간과 형태에 제한받지 않고 머무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죽음 이후의 세계와 영혼으로 머무는 형태는 새로운 상상력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영매를 통한 소통과 교류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조금 독특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3. 좋은 문학이란 , '작가의 책임'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죽음』 의 이야기 중 재미있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것은 바로 흔히 '순수 문학'이라고 부르는 문학과 '장르 문학'의 충돌로 이들의 전쟁을 통해 좋은 문학과 작가의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도권 작가들은 '문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거대한 따분함의 파도를 밀어 보내고, 장르 문학 작가들은 자신의 작중 인물들을 통해 전쟁에 임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아시모프이 로봇,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에드러 앨런 포의 까마귀가 코난 도일의 까마귀가 부리 공격으로 맞서며 주인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일세. 이야기꾼들이지.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이란 구분은 애당초 없네. 그저 상상력의 문학에는 문체와 심리 묘사가, 문체를 중시하는 문학에는 상상력과 환상이 필요한 것뿐일세. 내용과 형식은 상반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니까. 나는 모든 문학이 예외 없이 존중받고 수호돼야 한다고 믿게 됐네. 다양성이 곧 우리의 힘이야. 특정 문학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세. 나쁜 장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게 만드는 나쁜 작가가 있을 뿐이지. (중략) 미래 세대가 책과 가까워지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는 걸 잊지 말아. 절대 적을 혼동하지 말게. (p.259)

 

이러한 전쟁을 통해 작가는 작품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독자를 책 앞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가브리엘이 죽기 전 날, 비평가와의 대담에서도 이들은 동일한 주제로 논쟁을 벌인다. 비평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이며, 상상력만으로 구성된 가브리엘의 소설은 '작품'이 아니라고 모욕을 준다. 그때도 가브리엘은 나의 적은 비평가가 아니라,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작품'은 존재한다. 그것은 분명 '문체'만을 중요시하는 어려운 문학도 아니고, '상상력'을 중요시하여 새로운 줄거리를 선보이는 문학도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두 가지 모두 다양성의 측면에서 존재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글로 된 모든 텍스트는 '문학'일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의 의견과는 조금 다르다. 문체 중심의 순수 문학에서도 재미있는 줄거리가 존재할 수 있고, 상상력 중심의 장르 문학에서도 작가만의 문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느냐, 세대를 아울러 인간이라면 고민하게 되는 질문을 품고 있는가 아닐까. 시대에 따라 어떤 작품은 논란과 비난의 중심에 설 수 있다. 그렇지만 작가라면 그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장르가 다른 작가들이 서로 대립해나가면서 '문학'이라는 테두리를 넓혀가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4. 진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우리의 삶이,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고 그냥저냥 맥 빠지지 않게 끝나는 한마디 농담에 불과하다면 진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브리엘은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모종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해봐야 해요.(p.198)

 

자네 재능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나? 토마와 쌍둥이 형제라는 사실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야. 자네 할아버지의 연명 치료를 지켜보는 게, 기자 시절에 폭로성 기사들을 실었다가 비방에 해고까지 당한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지. 자네의 소설 작업이 폄훼되는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야. 그 모든 고통의 경험이 자네한테 영감을 줬고, 반항적 기질의 원천이 됐던 거야. (p.285)

 

『죽음』 에는 인간의 생각이 '정신'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는 '육체에 정신이 깃든 상태' 일 뿐 '죽는다'는 행위가 충격적인 종말에 이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은 왜 존재하는가? 작가는 '진정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살아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전쟁과 가난, 고통 속에 머물 수 있다. 때론 정의롭지 못한 일의 피해자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가는 일들, 그것들이 설령 불합리하더라도 그것들을 통해 지금의 내가 빚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진정한 나'란 내가 살아오며 선택하고 실수하고 배워가며 자란 지금의 모습이며 그것이 곧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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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관점이 독자로서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부분들도 있다. 우선 '죽음'에 대하여 작가는이냐스를 통해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는거지. 반대로, 곰곰히 따져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야."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순수한 영혼'의 상태에 머무르기를 갈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뤼시와 뤼시를 통해 환생의 길을 인도하는 상부는 왜 영혼들을 설득해서 '환생'을 권하는 것일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설정이 설명되지 않아 아쉽다.

 

가브리엘이 상위 아스트랄계를 통해 만난 노파는(아마도 폭스자매) 많은 영혼들이 환생하지 않으려함이 문제라고 걱정한다. 너무 많은 영혼들이 머물러 인간들과 소통하면 산 자들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더구나 가브리엘이 쓴 <천 살 인간>의 내용으로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어 '생명이 연장되는 것'을 우려하여 신이 직접 가브리엘을 죽였다고 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신'이 우리의 환생길을 관리하고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대사 중 '세계가 지금의 모습인 것에 이유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상부를 믿으라'는 말과 배치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브리엘이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가브리엘 윌즈'(영혼)의 존재로 계속 머물겠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작품 <천 살 인간>을 신이 원하는 대로 고치겠다고 말한다. 과학적 내용을 줄이고 액션과 감정을 극대화한 후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지각있는 삶, 이타적인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도록 여기게 메시지를 넣겠다는 것이다. 진실을 쓸 것도 아니라면 굳이 왜 영혼으로 남아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일까. <천 살 인간>을 다시 쓰는 것 외에 가브리엘이 영혼으로 남겠다고 하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것과 무관할까? '이해는 각자의 몫'이니까?(p.299)​

 

뿐만 아니라, 줄거리가 중요한 인기 추리 작가 가브리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인지 『죽음』 에도 문체는 없고 상상력을 중심으로한 줄거리 밖에 없다.(그런데 이러한 상상력이 무척 기발한 것도 아니다.) 일인칭 시점의 한계일 수밖에 없지만 모든 진실과 작가가 하고자하는 말이 독자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상황적 묘사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취한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말하다보니 죽은 작가들이 '좋은 문학'에 대한 견해를 두고 싸우는 부분도, 상위 아스트랄계 신과 가브리엘이 만나 대화하는 부분도 그저 유치하게 들린다.

 

개인적으로 『죽음』 은 굉장히 실망한 맥빠지는 소설. 작가 스스로 자신이 만든 세계관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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