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이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_p.62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 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는 러시아 황제에게서 박해받은 불쌍한 <폴라켄>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유대인 혈통>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_p.81

 

 

 


 

『동급생』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친구가 있었다. 벌써 이십여 년 전 중학교 첫 입학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교실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 친구들을 훑어보던 그 기분이 어찌나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그 친구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서로를 끌어 당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와는 대학교 졸업즈음까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교를 하면 서로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만화책을 나누어 읽으며 재잘거리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미스터 케이 편지지를 같이 사서 오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또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수줍고 진지했던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친구와 연락이 끊어진 것은 대학교 졸업즈음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우리는 그동안 꽤 많이 컸고 성인이 되어가는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견디고 극복해가며 각자 신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옷을 입고 공부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된 성격과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굽힐 줄 몰랐다. 나는 그 당시 스스로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나에게 너무 소중한 친구였는데 나는 조금도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두운 공원 벤치에 앉아 종이컵에 소주를 말없이 나누어 마셨던 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 친구는 음악을 하는 남자와 사귀었는데 종종 남자 친구에게 맞고 울면서 나를 찾아왔고, 이해할 수 없는 관계들을 맺고는 스스로 상처받고 움츠러들었다. 넌 나에게 소중한 친구인데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는 뻔한 말, 스스로 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며 나는 스스로 좋은 친구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맞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매달렸는지에 대해, 왜 스스로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하면서 지냈는지에 대해. 지금 네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어느 날 문득 이 친구가 세상에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이후로 드물게 걸어봤던 전화를 더이상 걸지 않았다.

 

유대인 소년 한스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가장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히틀러를 신뢰하고 두둔하는 편지를 받았을 때 그는 어땠을까,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은 자신이 믿었던 신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어떤 마음으로 한스를 떠올렸을까. 내 마음과 같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