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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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으로 평가받는 지금의 사회가 어느 정도 공정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획일적인 수학능력시험을 통한 평가를 통해 대학이 결정되고, 대학 이름과 학점으로 어느 기업에 입사하게 될지, 인사고가 평가로 승진여부가 결정되는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로 인한 불이익은 당연하다고 수긍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기 때문에 입사 서류 전형에서 지방 대학 출신보다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내가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승진이 빠른 것은 당연하다고. 어쩌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 출발선이 모두 같다면.


과거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면 자신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과거 능력과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달리,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며 스스로 '흙수저'라 부르는 등 절망감을 드러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은, 이제 1%의 최상위 부자들과 중하위층의 격차가 아니라, 중상위 20%와 하위 80%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격차는 '기회 사재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중상위 20%의 부모들은 대외적으로는 '불평등'에 대해 논하고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물려주기 위해 '기회'를 사재기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기회는 삶의 전망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연줄, 자질, 기술 등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의도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도록 출발선을 달리 하는 것이다.


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는 자녀의 좋은 대학 입학과 좋은 스펙을 위해 부모의 인맥과 재력이 총 동원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수십억 대의 '입시 코디네이터' 섭외하고 자녀의 학생부기록을 계획적으로 쌓아간다. 드라마처럼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관리해서 수업을 듣고, 수액의 과외와 교수들의 미성년자녀 논문 공저자 끼워놓기도 낯선 모습이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동일한 시험을 통해 평가받지만 이미 출발선이 다르게 그어져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는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시장 실패’를 성공적으로 피한 셈이다."는 말이 어느정도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운 좋게 중상류층 가정에 태어난 아이는 좋은 학군에서 질 좋은 사교육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대학에 갈 만한 준비가 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 생활에서도 가정의 도움으로 학교 생활을 하며 인턴쉽, 어학연수 등 스펙을 쌓아 나간다. 그 이후 직장인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보수가 높고 안정적이며 흥미로운 업무를 하는 일을 얻을 준비를 하며, 시장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청년들은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대학 등록금을 위해 아르바이트 하고, 한국에서 토익 공부를 하는 동안 누군가는 앞서 나가고, 취업 시장에서도 경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렇게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며 인맥과 연줄을 통해 자녀에게 인턴 기회를 마련해는 모습은 사실 매우 익숙하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격차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대책을 고민해야하는 고위 공직자, 교육자, 교수 등은 이미 중상류층이 차지했고, 그들은 쉽게 자신들이 만든 유리바닥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중상류층의 양심과 도덕적인 책무를 강조하며 책에서 제안하는 여러 정책과 조치가 실현되려면 중상류층 스스로 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 유출 사건'을 기억하는가?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부모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법적 제도를 만들어도 스스로의 자성의 목소리가 없다면, 기회 사재기는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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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방문객 오늘의 젊은 작가 22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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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번역 중인 작품은 니클라스 슐츠의 『수줍음』이란 소설인데, 독일인임에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두 청년에 관한 얘기야. 당시에 유대인만 수용소로 끌려간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았어.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인간들도 모두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었지. 가령, 정신질환자나 장애인, 집시,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등등. 인종주의를 내세운 그들에게 열등한 인간은 모두 죽어 마땅한 버러지일 뿐이었으니까. 『수줍음』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남다른 작품이야. 나치의 학살 이퀄 유대인이라는 소재의 공식을 비켜갔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BOOK. 《두 방문객》 중에서

 


3년 전 여름, 독일에 간다던 아들은 강릉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왜 아들은 그날, 독일이 아닌 강릉으로 간 걸까. 아이들의 레인지로버 조수석에 타고 있던 그 아가씨는 아들과 무슨 관계였을까. 8월 어느날, 아들의 생일과 3주기를 맞아 대신 아들 노릇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 두 방문객, 세현과 그 약혼자 수연.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에서 상운과의 추억을 늘어놓으며 함께 생일 케이크에 초를 켠다. 화장실과 방의 위치부터 아들 상운의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어째서인지 세현과 수연 이 둘은 아들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모던하지만 숨은 공간이 많은 저택의 구조부터 마당의 큰 수영장, 아직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들의 방까지 여전히 아들의 흔적이 가득한 저택에서 각자 자신의 슬픔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친구가 나에게 터놓는 치부나 비밀에 대해, 그 순간 느껴지는 진심과 감정에 대해 공감할 때마다 나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전에는 쉽게 내뱉던 '충분히 이해해'라는 말을 자주 목 뒤로 삼킨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담당 편집자에게 물었다. '재밌어요?' 뻔한 질문같지만, 편집자들 대부분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해준다. 편집자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재밌어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책을 아무리 읽어도 사랑의 ㅅ도 안보이는 미스테리처럼 느껴졌다. 이 책의 묘미는 책의 거의 끝부분까지 유지되는 궁금증이다. 상운은 왜 죽었지? 함께 죽은 여자는 누구지? 저 두 사람은 정체가 뭐지? 편집자가 말한 사랑은 대체 어딨지?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말처럼 선입견이 많은 단어는 없을지 모른다. 사회가 정의내린 모양의 '사랑'이 있는가하면 모성이라는 이름의, 우정이라는 이름의,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도 모양은 다르지만 '사랑'이다. 이 작품의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모양의 '사랑'을 지녔고, 함께 보내는 시간동안 그 '사랑'의 모양이 계속 변해간다. 자신의 슬픔에 갇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목도하며. 어쩌면 사랑은 우리의 경험으로 짐작하는 것보다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양을 지녔을지 모른다.

 

누구나 마음 안에 어두운 방이 있다. 그곳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치부나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종종 상운처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 슬픔을 빌미로 배려받고, 이해받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해받을 수 없을거란 생각도 한다. 그 갈림길에서 늘 망설인다. 상운의 비밀이, 혹은 내 비밀이 보편적으로 보았을 때 '뭐 그렇게 비밀스러운 일도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고통도 보편화될 수 없기에.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야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의 우주를 껴안는 일과 같지만, 설령 누군가가 내 우주를 다 안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우리는 이제 같은 비밀을 가졌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지?"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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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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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드로피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가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_p.102

 

언제나 너야. 널 만나기 전에도 너였어. 자연스레 전이된 마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틀렸어. 이건 아주 온전하고 새롭고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너야.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거야. 한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채 말하지 못했거 물론 경민은 그럼에도 모두 알아들었다. _p.197

 

BOOK. 《지구에서 한아뿐》 중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하지 않아 부모님에게는 골칫덩이지만, '환생'이라는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며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있는 오래된 옷들을 새롭게 리폼 디자이너 한아.


새롭고 자유분방한 것보다는 제자리에서 익숙한 것을 소중히 하는 한아에게는 자유분방하고 모험심 강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어느날 경민은 캐나다의 유성우를 보러 간다고 훌쩍 떠났고, 때마침 그곳이 운석이 떨어져 소동이 일어난 탓에 한아는 걱정한다. 경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가 달라졌다고 느낀 한아는 두려움을 느낀다.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2만 광년 너머에서 한아를 짝사랑했다는 이 외계인은 우주를 건너 한아에게로 왔다. 입에서 초록빛을 내품는 외계인.


"경민이 한아를 사랑하면, 그 별 전체가 한아를 사랑한다고 했다. 한아 역시 어째선지 우주를 건너오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떠한 별 전체로부터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마음이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되는 힘인 것 같다. 세상이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들은 지니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소신으로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사랑하고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한아의 모습은 나에게도 우주를 건너고 싶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지구에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 도무지 이 세상에 사랑스러운 게 없어보이는 날에는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수많은 확률 중 '너'여야 한다는 것은 우주 너머를 품는다는 것, 수십 억 인류 중 '너'여야 한다는 것은 우주를 건너는 용기라는 것. 스물 다섯의 정세랑이 바라본 세상은 이렇게나 사랑스러웠을까.


망할. 외계인이면 어때.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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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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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보라색 히비스커스』, 『아메리카나』 작가 아디치에가 내한했다. 내한하기 훨씬 이전부터 아디치에를 향한 수많은 수식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수식어는 '페미니스트', 한국 사회에서는 조금 불편해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도.


아디치에는 강연에서 "페미니즘은 자신의 성별 때문에 강요되는 엄격한 기준이나 기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각자 남자, 여자가 아니라 각각의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정확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대학에서부터 배워왔고 생각해왔던 페미니스트와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이미지에는 매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디치에를 만나면서 ‘페미니스트는 이래야 해’ ‘이러한 행동을 하면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라는 선입견과 이념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강한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본질적인 방향에 대해서.


수년 전 패션 브랜드 디올에서는 아디치에에 영감을 받아 'we should all be feminists' 티셔츠를 제작해 수많은 셀럽들이 캠페인에 참여했고, 비욘세는 아디치에의 강연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Flawless」라는 곡을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지만, 그럼에도 아디치에 작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는 그가 쓰고 말하는 '스토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 간담회에서 아디치에는 "법을 바꾼다고 해서 태도와 인식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것이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제 장강명 작가의 강연에서도 '책' 중심의 사회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닌 구조적 문제를 글로 쓰고 널리 읽혀 서서히 사고와 문화가 옳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아메리카나』는 나이지리아인 이페멜루를 통해 수많은 인종들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뚜렷이 존재하는 계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물들은 주인공 이페멜루에게 말한다 "아프리카 여성들은 매력적이에요. 특히 에티오피아 인들이요.", "지난번에 탄자니아 사파리 여행을 갔을 때 안내인이 너무 훌륭해서 지금은 우리가 그 집 첫딸 학비를 대 주고 있다니까요." 자신이 아프리카에 얼마나 자선을 하고 있으며, 이페멜루가 더럽고 가난한 아프리카를 떠나 미국에 온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해 떠들어댄다.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뚜렷하게 존재하는 계층의 사다리, 이페멜루는 한 개인이 아니라 '흑인', '여성', '외국인'이라는 틀로 판단 당한다. 우리는 결코 한 개인을 개인으로 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의 대표작처럼 알려진 『82년생 김지영』도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도 무언가 유난스럽게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늘상 겪어오고 있어 부당한 줄도 몰랐던 지점들을 '문학'을 통해 보게함으로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게 한다. 그리고 조금 더디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시대의 문학 작품들을 읽어보면 분명 변화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또 반드시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들이 필요하고, 또 때로는 힘을 모으로 법과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늘 본질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별과 인종, 나이, 직업 그 무엇과도 관계없이 함께 공존해야하고, 그 누구도 슬프게 할 권리가 없으며 공동체에서 약한 부분은 함께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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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 기본적인 송가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38
파블로 네루다 지음, 김현균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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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다.” ─ 파블로 네루다


그저 나도 숨 쉬고 너도 숨 쉰다는

단순한 이유로 나 행복하게,

네 무릎을 만진다는

이유로, 그건 마치 하늘의

푸른 살갗과 그 싱그러움을

만지는 것만 같아서,

나 행복하게 내버려 다오.


―「행복한 날을 기리는 노래(Oda al dia feliz)」에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속의 장면 중 하나인데, 네루다는 1969년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있는 동안 우체부 마리오에게 부탁하여 녹음된 소리를 듣는 장면이다. 


지금부터는 원하시던 소리들입니다.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 (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레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 (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호텔 책상에 앉아서 이 '소리'에 귀기울이며 생각에 잠겨있는 네루다의 모습을 상상했다. 격동과 파란의 칠레 현대사 앞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겠다는 시인의 바람은 번번이 좌절되지만, '시'는 삶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나누어먹는 빵과 같다'고 말하던 그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는 올해 출간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시집이 당시 지역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시라는 점에서였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라는 마리오의 질문처럼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시로 썼다. 옷과 토마토, 양파 등의 소박한 일상 사물에서부터 기쁨과 슬픔, 질투와 평온 등의 감정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시에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가 가족들과 빵을 먹는 식탁 위에서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뉴스'면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시'로 노래하고, 자신의 시선은 늘 민중의 삶을 향했던 것, 그래서 지금도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그의 시를 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살아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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