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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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드로피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가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_p.102

 

언제나 너야. 널 만나기 전에도 너였어. 자연스레 전이된 마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틀렸어. 이건 아주 온전하고 새롭고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너야.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거야. 한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채 말하지 못했거 물론 경민은 그럼에도 모두 알아들었다. _p.197

 

BOOK. 《지구에서 한아뿐》 중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하지 않아 부모님에게는 골칫덩이지만, '환생'이라는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며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있는 오래된 옷들을 새롭게 리폼 디자이너 한아.


새롭고 자유분방한 것보다는 제자리에서 익숙한 것을 소중히 하는 한아에게는 자유분방하고 모험심 강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어느날 경민은 캐나다의 유성우를 보러 간다고 훌쩍 떠났고, 때마침 그곳이 운석이 떨어져 소동이 일어난 탓에 한아는 걱정한다. 경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가 달라졌다고 느낀 한아는 두려움을 느낀다.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2만 광년 너머에서 한아를 짝사랑했다는 이 외계인은 우주를 건너 한아에게로 왔다. 입에서 초록빛을 내품는 외계인.


"경민이 한아를 사랑하면, 그 별 전체가 한아를 사랑한다고 했다. 한아 역시 어째선지 우주를 건너오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떠한 별 전체로부터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마음이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되는 힘인 것 같다. 세상이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들은 지니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소신으로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사랑하고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한아의 모습은 나에게도 우주를 건너고 싶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지구에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 도무지 이 세상에 사랑스러운 게 없어보이는 날에는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수많은 확률 중 '너'여야 한다는 것은 우주 너머를 품는다는 것, 수십 억 인류 중 '너'여야 한다는 것은 우주를 건너는 용기라는 것. 스물 다섯의 정세랑이 바라본 세상은 이렇게나 사랑스러웠을까.


망할. 외계인이면 어때.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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