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방문객 오늘의 젊은 작가 22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번역 중인 작품은 니클라스 슐츠의 『수줍음』이란 소설인데, 독일인임에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두 청년에 관한 얘기야. 당시에 유대인만 수용소로 끌려간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았어.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인간들도 모두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었지. 가령, 정신질환자나 장애인, 집시,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등등. 인종주의를 내세운 그들에게 열등한 인간은 모두 죽어 마땅한 버러지일 뿐이었으니까. 『수줍음』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남다른 작품이야. 나치의 학살 이퀄 유대인이라는 소재의 공식을 비켜갔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BOOK. 《두 방문객》 중에서

 


3년 전 여름, 독일에 간다던 아들은 강릉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왜 아들은 그날, 독일이 아닌 강릉으로 간 걸까. 아이들의 레인지로버 조수석에 타고 있던 그 아가씨는 아들과 무슨 관계였을까. 8월 어느날, 아들의 생일과 3주기를 맞아 대신 아들 노릇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 두 방문객, 세현과 그 약혼자 수연.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에서 상운과의 추억을 늘어놓으며 함께 생일 케이크에 초를 켠다. 화장실과 방의 위치부터 아들 상운의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어째서인지 세현과 수연 이 둘은 아들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모던하지만 숨은 공간이 많은 저택의 구조부터 마당의 큰 수영장, 아직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들의 방까지 여전히 아들의 흔적이 가득한 저택에서 각자 자신의 슬픔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친구가 나에게 터놓는 치부나 비밀에 대해, 그 순간 느껴지는 진심과 감정에 대해 공감할 때마다 나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전에는 쉽게 내뱉던 '충분히 이해해'라는 말을 자주 목 뒤로 삼킨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담당 편집자에게 물었다. '재밌어요?' 뻔한 질문같지만, 편집자들 대부분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해준다. 편집자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재밌어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책을 아무리 읽어도 사랑의 ㅅ도 안보이는 미스테리처럼 느껴졌다. 이 책의 묘미는 책의 거의 끝부분까지 유지되는 궁금증이다. 상운은 왜 죽었지? 함께 죽은 여자는 누구지? 저 두 사람은 정체가 뭐지? 편집자가 말한 사랑은 대체 어딨지?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말처럼 선입견이 많은 단어는 없을지 모른다. 사회가 정의내린 모양의 '사랑'이 있는가하면 모성이라는 이름의, 우정이라는 이름의,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도 모양은 다르지만 '사랑'이다. 이 작품의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모양의 '사랑'을 지녔고, 함께 보내는 시간동안 그 '사랑'의 모양이 계속 변해간다. 자신의 슬픔에 갇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목도하며. 어쩌면 사랑은 우리의 경험으로 짐작하는 것보다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양을 지녔을지 모른다.

 

누구나 마음 안에 어두운 방이 있다. 그곳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치부나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종종 상운처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 슬픔을 빌미로 배려받고, 이해받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해받을 수 없을거란 생각도 한다. 그 갈림길에서 늘 망설인다. 상운의 비밀이, 혹은 내 비밀이 보편적으로 보았을 때 '뭐 그렇게 비밀스러운 일도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고통도 보편화될 수 없기에.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야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의 우주를 껴안는 일과 같지만, 설령 누군가가 내 우주를 다 안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우리는 이제 같은 비밀을 가졌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지?" (p.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