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2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2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 '범죄덕후'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잔인한, 불편한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면 스트레스 받지 않냐는, 아침부터 왜 그런 소식을 듣고 있냐는 이야기도 줄곧 들어왔다. 물론 스트레스 받는다. 출퇴근길이나 혼자 산책하거나 카페에 머무는 시간에 팟빵 '크라임'(배상훈 프로파일러)이나 유튜브 '김복준의 사건의뢰',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을 듣는다. (모든 에피소드를 빠짐없이!) 각각 프로파일러, 강력반 형사, 범죄심리학자의 방송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대한 견해나 분석이 각기 다르기도 한데, 언제나 사건의 잔혹함에, 피해자의 고통에, 형편없는 형량에 분개하면서도 억울한 누군가가 잊히고 또다시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16개월의 정인이가 췌장 절단과 장간마이 파열될 정도의 폭력에 의해 사망하였고,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기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징역 35년으로 감형되었는지. 왜 수많은 여자들이 공포에 떨며 연락처를 바꾸고, 이사를 하고,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스토킹에 시달리다 결국 살해다(가족이 몰살 당하거나)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중국인이 흉기를 휘두를 때 도망친 경찰에게 왜 총기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가 아니라, 왜 몸으로 막아서지 않았냐는 비난이 무겁게 느껴지는 현실적인 처지에 대해서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초에 출간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한국에서 폭행을 당한 끝에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지만, 남편이 아내를 죽일 경우 말다툼을 하다가 혹은 홧김에 살해했기 때문에 우발적 범행으로 대부분 감형되는 사례들과 결혼의 의무는 18세부터인데 섹스의 권리는 13세부터라는 현재 법 제도의 모순에 의해 미성년자 성착취가 처벌되지 못했던 사례들, 그리고 우리가 가볍게 사용하는 언어들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성매매', '리벤지 포르노', '데이트 폭력', '야동'과 같은 단어는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는 단어들로 바뀌었고, 작년에 의제 강간 연령은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되었으며, 스토킹 신고만으로는 현장에서 연행조차 할 수 없었지만 지난달부터 스토킹 처벌 법이 시행되었다. 그만큼 범죄가 잔혹해지고 그 심각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고 믿는다.


많은 것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함께 돌아보아야 할 사회의 문제는 많다. 이번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2』에는 아동 학대, 기업 범죄, 혐오 범죄에 대한 이야기와 신화처럼 부풀어진 사이코패스/ 잔혹했던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면서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처럼 서로의 시선이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의 올바른 역할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공감한다.


최근 이수정 교수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는 것을 안다. 솔직히 나도 염려되는 마음으로 기사를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지식과 연구 결과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많은 관심이 있기에 어느 정당에 속해있건 자신이 반드시 내야 할 목소리와 누군가는 반드시 바꿔야 할 구조적 변화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아직은 믿는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실종됐다.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대립구조는 어느 세대에나 늘 있었던 일이지만, '어른'의 자리에는 '꼰대'라는 멸칭만 남아있고, 그들의 조언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잔소리로 치부된다. 기성세대도 나름대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지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미권에서는 기성세대의 잔소리와 참견에 "알았으니 그만하라"는 뜻으로 '오케이 부머'라는 말이 쓰인다. 나는 종종 '기준'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란, 따르고 어울리며 본받을만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최근에 배우 윤여정이 인터뷰를 보며 여러모로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말해도 얄밉지 않을 텐데, "육십이 돼도 인생을 몰라요. 나 67살이 처음이야.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스카 상 수상 이후 “최고란 말이 참 싫다. 최고가 아닌 최중(最中)이 돼 같이 살면 안 되냐"라며 1등을 강요하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삶에 대한 겸손함, 그리고 위트 있는 태도를 모두 닮고 싶어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만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좋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기준은 사라지고, 모든 게 자기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에 귀가 솔직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더 훌륭하게, 더 아름답게, 더 품위 있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p.45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은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시대정신이 된 오늘날' 기사도라는 전통적 개념을 복원하여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갖고자 노력하며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사회의 기준이 되는 많은 것들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무언가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서는 열린 마음, 유머, 겸손, 권위, 친절, 솔직함, 신중함 등 27가지를 기준으로 소개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꼭 취하고 싶은 성숙한 태도는 친절과 겸손 그리고 관용이었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내 주장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지 않는 것, 먼저 상대방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독자적이고 존엄을 갖춘 인간으로 지각하는 것, 설령 원한과 모순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일단 상대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훈련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p.397


점점 혼자 지내는 게 너무도 편하다. 삶이란 누군가와 부딪히고 소통하면서 겪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갈등이 불편하고 싸우는 게 싫어 미리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딜 용기도, 나 또한 타인에게 지옥일 수 있다는 성찰도 없다. 그러면서 가장 잃어버린 태도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나는 우리 사회에 어른이 실종되고, 친절이 사라지고, 모두가 모두에게 지옥을 선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자녀와 청년 세대를 향하여, 젊은 세대도 부모와 기성세대를 향하여 '독자적이고 존엄을 갖춘 인간으로 자각'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배운다면,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처를 감수한다는 것은 굳이 늘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꺼이 상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를테면 거부당할지언정 ‘너를 사랑해’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부를 받아들일 용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인정할 용기야말로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른다." _p.382


성장하면서 배웠던 '용기'라는 단어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는 행위였다. 그런데 성숙한 사람으로서 꼭 가져야 할 용기는 자신의 약점, 상처받기 쉬운 모습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인 것 같다. 지금 사랑받고 있는 '어른'의 모델들은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통해 배운 것들을 조언해 준다.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고, 때로는 교만해서 많은 사람들을 잃기도 했던 경험들을 자양 삼아 다음 세대는 자랄 수 있으니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어른이 없다고 조롱하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느냐이다. 개인심리학의 아버지 알프레트 아들러는 '해낼 때까지 그런 척하기' 방식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장시간에 걸쳐 진실된 사람인 양 행동하고 거짓말을 피하고 무임승차를 삼간다면 이것이 습관이 되면서 진짜로 그런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소소한 결정들이 우리의 성격을 만들어 가니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이 작가가 제시하는 27가지 태도를 '그런 척'하며 체득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근사한 어른이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펠리시아는 영국 도시 한복판에서 아이의 아버지를 찾고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보수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와 오빠들, 백 세에 가까운 증조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뒤로하고 떠나온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조니와 재회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조니가 일한다고 말했던 공장을 찾아 산업 단지를 하염없이 거닐며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지만 조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일에는 다 처음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노상의 잠자리에 자리 잡는다. 한동안은 실종으로 처리되지만 나중에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밑바닥 인생, 이제 그들은 그렇게 불린다." _p.306


그러던 중 힐디치라는 중년 남성이 펠리시아의 처지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힐디치는 조니를 찾기 위해 자신의 차에 펠리시아를 태우고 먼 거리의 산업 단지를 함께 방문해 주고, 조니가 근무할지 모르는 군부대를 수소문하며 그녀를 돕는다. 조심성이 많은 펠리시아는 겁을 먹고 경계하지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갈 곳마저 없게 되어 거리를 헤매게 되자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돈을 빌리고자 힐디치에게 다시 도움을 구한다.



『펠리시아의 여정』을 쓴 윌리엄 트레버는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연히 일어난 일들에 의해 인생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펠리시아와 힐디치 역시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합의된 관계였지만 혼전임신마저 여성에게 오롯이 사회적 낙인이 찍혀 비난을 받고 낙태마저 불법이던 보수적인 아일랜드에서 펠리시아는 조니를 다시 만나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인생은 임신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었고, 또 거리에서 힐디치를 만나 예측하지 못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피로감 섞인 동정 한 조각이 거리의 사람을 향해 던져지고, 눈길은 서둘러 다른 데로 옮겨간다. 자선단체와 보호소가, 자비와 경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어디에나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르는 운명이 존재할 것이다. 그녀는 두 손을 뒤집어 다른 쪽도 햇볕을 쬐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얼굴의 반대편도 따뜻하게 한다." _p.321



1994년 초, 영국에서 열두 명 이상의 젊은 여성을 고문하고 살해해 자기 집 지하실과 정원에 묻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붙잡혔다. 범인은 이 집의 주인 프레드와 로즈마리 웨스트 부부로 밝혀졌는데, 이웃들은 이들을 무척 친절하고 가정적인 사람들로 기억했다. 통념에 따르면, 연쇄살인범은 일상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살인 후에도 욕망이 충족되지 않기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힐디치 역시 지극히 평범해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중년 남성이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지 못하며 성장하여 자신의 삶이 망가져버린 인물이다.



"그녀는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고, 목적 없는 여정에서도 더이상 의미를 찾지 않으며, 시간과 사람이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서도 어떤 규칙을 찾지 않는다. 혼자서, 더이상은 아이도 소녀도 아닌 것을 감사한 일이라 굳게 믿으며, 그녀는 이거리에서 저 거리로 돌아다닌다." _p.320



인간의 선함과 악함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트레버는 작품을 쓰고 인간의 삶을 탐구하면서도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희망과 위안의 부스러기라도 찾아 헤맬 뿐이라고 여겼다.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작은 것에 만족하고자 하고, 스스로 자조하며 위로하며 작은 행복에 기꺼이 만족하려는 노력 또한 우리의 선함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삶의 모든 길들이 자그마한 위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름에 의미가 있겠지만, 메인 홍보 문구가
<이토록 재밌는 살인이라니>는 왠지 불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부터 그 자리에 의자를 두기로 했다 - 집에 가고 싶지만 집에 있기 싫은 나를 위한 공간심리 수업
윤주희 지음, 박상희 감수 / 필름(Feelm)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올렸던 리뷰 중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던 콘텐츠는 '내 책상'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올리고 섭섭했던 것은, 친구들(인친들)의 반응이었달까. 쏟아지는 출간 책들과 비좁은 수납공간 탓에 내 책상이 다소 지저분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나름대로 정리한 후에 찍은 사진이었는데 대부분 before 사진인 줄 알더라는??



사실 나는 '추억이 담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몇 년 전, 태국 여행을 하는 중에 치앙마이에서 캐리어의 바퀴 하나가 부서진 적이 있다. 기울어진 캐리어는 아무리 힘주어 끌어도 빙그르 돌며 걸음을 멈추게 했다. 동행한 친구는 자신의 캐리어와 내 배낭에 짐을 나누어 담고 캐리어를 버리자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 캐리어는 바퀴가 빠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 아니라, 나에게는 첫 여행지였던 유럽 여행부터 나의 모든 여행을 동행한 가방이었으니까. 어떻게 이 먼 타국에 널 버리고 가니?



삶은 정리의 연속이다. 싫증이 나서 더 이상 입기 싫어진 옷을 정리하는 물리적 행위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생애 우연히 만나는 기쁘고 슬픈 일 역시 정리하고 비우기를 되풀이하면서 계속 삶을 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을 정리하는 일은 어쩌면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기 위해 매번 반복해야 하는 불가피한 일이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마음과 생각을 마주하고 비우고 정리하는 일을 몇 번이나 해왔을까? (p.33)



이 책이 나에게 특별했던 것은, 공간을 정리하는 행위를 그저 노동이 아닌 마음을 돌보는 일로 바라보게 한 점이다. 나는 공간을 잘 정돈하고 가꾸는 것을 개인의 성향과 습관의 차이라고 여겼는데, 그래서 내가 물건들을 잘 분류하거나 정리하지 못하는 것을 게으른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쉬는 시간은 동일하더라도, 마음이 분주하고 지쳐있는 시기에는 내 작은 원룸을 정돈하는 것조차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며칠씩 설거지가 쌓이고 옷은 벗어놓은 상태 그대로 놓여있는 방 안. 작가는 '공간을 정리하는 것이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말이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처럼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수선하게 물건을 흩어놓더라도 필요로 하는 물품들이 다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기준대로 정리되어야 안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평소에는 주변을 잘 정돈했는데, 최근 들어 정돈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받는 위로의 말이나 외부적 요인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그렇게 타인이 만들어준 감정치유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결국 감정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가장 잘 알아주고 풀어주고 치유해야 하는 일이다. (p.126)



지금 당신의 방은 어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몸을 일으켜 내 방을 둘러보았다. (......할말하않??)



완벽하진 않지만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정리하고,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모아두었으나 한 번도 쓰지 않은 잡동사니들을 버렸다. 그리고 수납할 수 있는 수납장을 하나 구입했다. 이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개운함? 뭐랄까, 정리라는 행위를 통해 마음이 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