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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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실종됐다.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대립구조는 어느 세대에나 늘 있었던 일이지만, '어른'의 자리에는 '꼰대'라는 멸칭만 남아있고, 그들의 조언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잔소리로 치부된다. 기성세대도 나름대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지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미권에서는 기성세대의 잔소리와 참견에 "알았으니 그만하라"는 뜻으로 '오케이 부머'라는 말이 쓰인다. 나는 종종 '기준'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란, 따르고 어울리며 본받을만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최근에 배우 윤여정이 인터뷰를 보며 여러모로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말해도 얄밉지 않을 텐데, "육십이 돼도 인생을 몰라요. 나 67살이 처음이야.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오스카 상 수상 이후 “최고란 말이 참 싫다. 최고가 아닌 최중(最中)이 돼 같이 살면 안 되냐"라며 1등을 강요하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삶에 대한 겸손함, 그리고 위트 있는 태도를 모두 닮고 싶어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만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좋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기준은 사라지고, 모든 게 자기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에 귀가 솔직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더 훌륭하게, 더 아름답게, 더 품위 있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p.45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은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시대정신이 된 오늘날' 기사도라는 전통적 개념을 복원하여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갖고자 노력하며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사회의 기준이 되는 많은 것들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무언가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서는 열린 마음, 유머, 겸손, 권위, 친절, 솔직함, 신중함 등 27가지를 기준으로 소개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꼭 취하고 싶은 성숙한 태도는 친절과 겸손 그리고 관용이었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내 주장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지 않는 것, 먼저 상대방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독자적이고 존엄을 갖춘 인간으로 지각하는 것, 설령 원한과 모순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일단 상대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훈련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p.397


점점 혼자 지내는 게 너무도 편하다. 삶이란 누군가와 부딪히고 소통하면서 겪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갈등이 불편하고 싸우는 게 싫어 미리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타인이라는 지옥을 견딜 용기도, 나 또한 타인에게 지옥일 수 있다는 성찰도 없다. 그러면서 가장 잃어버린 태도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나는 우리 사회에 어른이 실종되고, 친절이 사라지고, 모두가 모두에게 지옥을 선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자녀와 청년 세대를 향하여, 젊은 세대도 부모와 기성세대를 향하여 '독자적이고 존엄을 갖춘 인간으로 자각'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배운다면,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처를 감수한다는 것은 굳이 늘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꺼이 상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를테면 거부당할지언정 ‘너를 사랑해’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부를 받아들일 용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인정할 용기야말로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른다." _p.382


성장하면서 배웠던 '용기'라는 단어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는 행위였다. 그런데 성숙한 사람으로서 꼭 가져야 할 용기는 자신의 약점, 상처받기 쉬운 모습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인 것 같다. 지금 사랑받고 있는 '어른'의 모델들은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부끄러웠던 자신의 과거를 통해 배운 것들을 조언해 준다.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고, 때로는 교만해서 많은 사람들을 잃기도 했던 경험들을 자양 삼아 다음 세대는 자랄 수 있으니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어른이 없다고 조롱하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느냐이다. 개인심리학의 아버지 알프레트 아들러는 '해낼 때까지 그런 척하기' 방식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장시간에 걸쳐 진실된 사람인 양 행동하고 거짓말을 피하고 무임승차를 삼간다면 이것이 습관이 되면서 진짜로 그런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소소한 결정들이 우리의 성격을 만들어 가니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한 번쯤은 이 작가가 제시하는 27가지 태도를 '그런 척'하며 체득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근사한 어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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