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범죄덕후'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잔인한, 불편한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면 스트레스 받지 않냐는, 아침부터 왜 그런 소식을 듣고 있냐는 이야기도 줄곧 들어왔다. 물론 스트레스 받는다. 출퇴근길이나 혼자 산책하거나 카페에 머무는 시간에 팟빵 '크라임'(배상훈 프로파일러)이나 유튜브 '김복준의 사건의뢰',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을 듣는다. (모든 에피소드를 빠짐없이!) 각각 프로파일러, 강력반 형사, 범죄심리학자의 방송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대한 견해나 분석이 각기 다르기도 한데, 언제나 사건의 잔혹함에, 피해자의 고통에, 형편없는 형량에 분개하면서도 억울한 누군가가 잊히고 또다시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16개월의 정인이가 췌장 절단과 장간마이 파열될 정도의 폭력에 의해 사망하였고,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기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징역 35년으로 감형되었는지. 왜 수많은 여자들이 공포에 떨며 연락처를 바꾸고, 이사를 하고,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스토킹에 시달리다 결국 살해다(가족이 몰살 당하거나)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중국인이 흉기를 휘두를 때 도망친 경찰에게 왜 총기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가 아니라, 왜 몸으로 막아서지 않았냐는 비난이 무겁게 느껴지는 현실적인 처지에 대해서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초에 출간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한국에서 폭행을 당한 끝에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지만, 남편이 아내를 죽일 경우 말다툼을 하다가 혹은 홧김에 살해했기 때문에 우발적 범행으로 대부분 감형되는 사례들과 결혼의 의무는 18세부터인데 섹스의 권리는 13세부터라는 현재 법 제도의 모순에 의해 미성년자 성착취가 처벌되지 못했던 사례들, 그리고 우리가 가볍게 사용하는 언어들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성매매', '리벤지 포르노', '데이트 폭력', '야동'과 같은 단어는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는 단어들로 바뀌었고, 작년에 의제 강간 연령은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되었으며, 스토킹 신고만으로는 현장에서 연행조차 할 수 없었지만 지난달부터 스토킹 처벌 법이 시행되었다. 그만큼 범죄가 잔혹해지고 그 심각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고 믿는다.
많은 것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함께 돌아보아야 할 사회의 문제는 많다. 이번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2』에는 아동 학대, 기업 범죄, 혐오 범죄에 대한 이야기와 신화처럼 부풀어진 사이코패스/ 잔혹했던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면서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처럼 서로의 시선이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의 올바른 역할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공감한다.
최근 이수정 교수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는 것을 안다. 솔직히 나도 염려되는 마음으로 기사를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지식과 연구 결과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많은 관심이 있기에 어느 정당에 속해있건 자신이 반드시 내야 할 목소리와 누군가는 반드시 바꿔야 할 구조적 변화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아직은 믿는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기를.